[ 말이멈춘자리 ] - 감성과 이성이 교차하는 사유의 기록 / 유미와 비안의 문장
무위(無爲)와 감정의 여백, 그리고 존재의 공간
너무 많은 말을 하다가, 결국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놓쳤다.
진짜 자기 인식은 비움의 상태에서 시작된다.
유미의 에세이
“너무 많은 말을 하다가, 결국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놓쳤다.”
나는 오래도록 나를 채우는 법을 배워왔다.
지식, 계획, 자격증, 역할, 감정까지도.
나는 꽉 찬 사람이어야만
사랑받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 어느 날,
모든 게 벅차고, 감정이 터질 것 같아서
그냥 다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내 안에서 조용한 ‘나’의 소리가 들렸다.
사람은
채워질수록 무거워지고,
비워질수록 가벼워진다.
그리고
가벼워질수록 오히려 더 명확하게 들을 수 있다.
무언가를 하느라 나를 잃는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다시 만나는 것.
지금 나는
조용히 나를 비우고 있다.
그 비움 속에서 내가 다시, 나에게 들리고 있다.
비안의 해석
“진짜 자기 인식은 비움의 상태에서 시작된다.”
동양철학 / 존재심리학 / 감정심리학의 통합 해석
1. 왜 우리는 ‘가득 찬 나’로 살아가려 하는가?
현대 사회는 ‘자기계발’과 ‘자기실현’의 언어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는 삶의 방식을 권장해왔다.
이력서에 빈칸이 생기면 불안하고,
마음이 멈추면 무능하다고 느낀다.
심지어 감정조차도,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감정’만을 선별해서 내보이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이렇게 가득 채워진 자아는
오히려 ‘자기 소리를 듣는 능력’을 상실한다.
2. 무위(無爲)와 공(空), 그리고 존재의 여백
장자는 ‘무위(無爲)’를 억지로 하지 않음
자연스러운 흐름에 자신을 두는 태도라 정의했다.
그에게 ‘비움’은 소극적 회피가 아니라
자연과 합일되는 지혜의 시작이었다.
(『장자』, 소요유 편)
불교 사상에서도 ‘공(空)’은
모든 고정된 자아, 감정, 생각이 무상하고 유동적이라는 깨달음을 전제로 한다.
[금강경]은 말한다:
“모든 형상은 다 허망하니,
형상을 보지 말고 본래성을 보라.”
즉.
비움은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자기를 해체하고 ‘살아 있는 자기’를 만나는 여백이다.
3. 침묵의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인식의 시작
존재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 “인간은 의미를 찾는 존재이며,
그 의미는 침묵과 비움 속에서 더 잘 들린다”고 했다.
이는 ‘침묵의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인식의 시작’ 임을 보여준다.
감정심리학에서도
‘감정적 회복’은 ‘감정의 과잉 표현’이 아니라
‘감정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허용하는 데서 출발한다.
[회복탄력성](김주환, 2011)은
이 감정의 여백이 바로
정서적 유연성과 자아 강인성의 기초라 설명한다.
4. 비워진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을 담을 수 있다
현재 구조 | 대안 방향 |
감정의 즉시 반응 → 감정의 여백 허용 | ‘느려진 감정 반응’ 훈련 |
지나친 자기계발 → 무계획적 탐색의 가치 |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 확보 |
과잉 정체성 강조 → 유동적 자아 수용 |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에 머물기 |
사례:
30대 직장인 ‘B’는
번아웃 이후 6개월간 휴직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고 고백했지만,
그 공백의 시간 동안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과 대화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제안:
진짜 회복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에서 일어난다.
자신을 위해 멈춤의 여백, 비움의 시간을 허락하라.
그때,
당신은 처음으로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장자 (2006). 장자. 강성위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2] 금강경 (2013). 금강경 역해. 법정스님 해설, 민족사
[3] 빅터 프랭클 (2005).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시형 역, 청아출판사
[4] 김주환 (2011). 회복탄력성. 위즈덤하우스
[5] 강신주 (2012). 감정수업. 민음사
유미
나는 지금
말을 줄이고, 의도를 멈추고, 그저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중이다.
그동안 너무 많은 나를 만들며 살아왔고
그 틈에서
진짜 나는 늘 조용히 울고 있었다.
이제는
나를 채우기보다 나를 조금씩 덜어내며
비워진 나에게 귀 기울이고 싶다.
오늘의 질문
지금 당신은
당신 안에서 어떤 소리를 듣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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