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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해석과 이해(구조와 에세이)/책 해석과 이해(철학,사상)

[니코마코스 윤리학 - 5권] '아리스토텔레스' 정의란 무엇인가? 분배적 정의, 조정적 정의, 그리고 공정성

by 유미 와 비안 2025. 10. 15.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제5권. 

서양 정의론의 출발점인 이 책은, '정의'를 '분배적 정의'와 '조정적 정의'로 나누고, 법을 넘어서는 '공정성'의 중요성을 통해 진정한 정의의 의미를 탐색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 : 아리스토텔레스, 정의는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것이다
"정의는 다른 미덕들과 달리,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완전한 미덕이다."
제1권부터 제4권까지 개인의 내면적 훌륭함(성품의 미덕)을 탐구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제5권 "정의"에서 마침내 시선을 개인에서 공동체로 돌립니다. 제5권은 '정의(dikaiosynē)'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이 개인의 미덕을 넘어 '완전한 미덕'이자, 정치 공동체(폴리스)를 지탱하는 핵심 원리가 되는지를 탐구하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복잡한 부분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다시 그 하위 유형들을 수학적인 '비례'의 원리를 통해 명쾌하게 분석합니다. 이는 2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법철학, 정치철학, 그리고 경제학에서 '정의'를 논할 때 여전히 출발점이 되는 위대한 통찰입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 아리스토텔레스 - 제5권 : 정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5권

 

제5권은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정의'의 여러 의미를 구분하고(1-2장), 그 핵심인 '부분적 정의'의 두 유형을 상세히 분석하며(3-5장), 마지막으로 정의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수정되는지 그 복잡한 측면들(6-11장)을 탐구합니다.


• 1장~2장 정의란 무엇인가 (일반적 정의와 부분적 정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먼저 '정의'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고 설명합니다.
1. 일반적 정의: '법을 준수하는 것' 또는 '공정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다른 모든 미덕(용기, 절제 등)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실천하는 '완전한 미덕'입니다.
2. 부분적 정의: '탐욕스럽지 않음', 즉 각자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주는 것입니다. 이는 부, 명예, 안전 등 공동체가 분배할 수 있는 것들에 관련됩니다. 제5권의 나머지 부분은 바로 이 '부분적 정의'를 집중적으로 분석합니다.
그는 이 '부분적 정의'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고 말합니다. 바로 '분배적 정의'와 '조정적(시정적) 정의'입니다.


• 3장~5장 부분적 정의의 두 유형 (분배와 조정):


이 부분은 제5권의 핵심으로, 정의의 두 유형을 수학적 비례를 통해 분석합니다.
ⓐ 3장 분배적 정의¹: 이는 공동체가 명예나 재화와 같은 '공적인 것'을 각 구성원에게 나누어 줄 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기하학적 비례'입니다. 즉, 각 사람이 가진 '가치(merit)'에 비례하여 그의 몫을 분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민주정에서는 모든 시민이 '자유인'이라는 가치가 동등하다고 보아 1/n로 분배하고, 과두정에서는 '부'의 크기에 따라, 귀족정에서는 '탁월함'에 따라 분배합니다. 중요한 것은 '같은 사람은 같게, 다른 사람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입니다.


ⓑ 4장 조정적(시정적) 정의²: 이는 사람들 사이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바로잡을 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산술적 비례'입니다. '조정적 정의'는 분배적 정의와 달리, 관련된 사람이 어떤 '가치'를 가진 사람인지(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등)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손해의 크기만을 보고, 가해자가 부당하게 얻은 이익을 빼앗아 피해자가 잃어버린 것을 정확히 복원함으로써, 양쪽을 산술적으로 동등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는 다시 '자발적 거래'(매매, 임대 등)와 '비자발적 거래'(절도, 폭행, 살인 등)로 나뉩니다.


ⓒ5장 교환에서의 정의 (응보): 그는 상업적 교환에서의 정의는 기하학적 비례도, 산술적 비례도 아닌, '비례적인 응보(reciprocity)'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건축가와 구두장이는 서로 다른 가치의 생산물을 교환해야 하는데, 이때 '화폐'가 등장하여 서로 다른 것들을 비교 가능하게 만들고 공정한 교환을 매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 6장~11장 정의의 현실적 적용과 한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제 정의가 현실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탐구합니다.


ⓐ 6장~7장 정치적 정의와 자연법: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정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 사이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는 이 정치적 정의가, 어디에서나 동일한 효력을 갖는 '자연적 정의'(자연법)와, 각 공동체의 합의에 따라 달라지는 '법적 정의'(실정법)로 구성된다고 봅니다.


ⓑ 8장~9장 책임의 문제: 3권의 논의를 이어받아, 불의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자발적'이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 10장 공정성(Equity)³: 그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통찰 중 하나를 제시합니다.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법률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합니다. '공정성'이란, 이처럼 법률의 보편적인 규칙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불의한 결과를 낳을 때, 법의 정신에 따라 그 규칙을 유연하게 수정하고 시정하는 지혜입니다. 이는 '법대로' 하는 것이 항상 정의롭지는 않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 11장 자기 자신에 대한 불의: 마지막으로 그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불의를 저지를 수 있는가?"(예: 자살)와 같은 철학적 딜레마들을 탐구하며 정의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합니다.

 

 

주석 (용어 해설)


¹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 공동체의 자원(부, 명예, 권력 등)을 각 구성원의 '가치(merit)'에 따라 비례적으로 나누는 원리. '각자에게 그의 마땅한 몫을' 주는 것이다.
² 조정적 정의(Corrective Justice): 개인들 간의 거래(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에서 발생하는 손해와 이익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원래의 평등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 원리. 현대의 민사법(손해배상)과 형사법(처벌)의 기초가 된다.
³ 공정성(Equity, epieikeia): 법률의 보편성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낳을 수 있는 불의를 시정하는, 법을 넘어서는 더 높은 차원의 정의. 법의 문언이 아니라 그 정신을 따르는 지혜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5권 - 구조적 해석


• 법철학 및 법학 원론적 관점: 

제5권은 서양 법철학의 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분배적 정의'와 '조정적 정의'의 구분은 오늘날의 '공법'과 '사법'의 구분을 예견한 것이며, '조정적 정의'는 민법(계약)과 형법(불법행위)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합니다. 특히, 보편적인 법률의 한계를 지적하고 '공정성'³을 통해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10장의 논의는, 법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 법관의 재량과 구체적 타당성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고전적인 논증입니다.


• 정치철학적 관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은 그의 정치철학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가 '분배적 정의'의 기준이 되는 '가치(merit)'가 정치 체제(민주정, 과두정, 귀족정)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 것은, 정의의 개념 특정 정치 공동체의 가치관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좋음(the good)'에 대한 합의가 '옳음(the right)'에 우선한다고 보는, 이후 마이클 샌델과 같은 공동체주의 정치철학의 원형이 됩니다.


• 경제학적 관점: 

5장에서 '화폐'가 서로 다른 재화의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라고 분석한 부분은, 화폐 이론의 초기 형태를 보여줍니다. 그는 화폐가 교환의 편의를 위해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임을 통찰했습니다. 또한, 그의 정의론 전체는 현대 후생경제학이 다루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공정한 분배'라는 두 가지 핵심 주제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 심리학적 관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추상적인 원리로만 보지 않고, 인간의 심리와 깊이 연결합니다. "정의는 타인의 좋음에 관련된 것"이라는 그의 통찰은, 정의가 본질적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심리적 성향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불의를 당했을 때 느끼는 '분노'와 같은 감정이 '조정적 정의'의 심리적 기초가 됨을 암시합니다. 이는 도덕적 판단이 이성뿐만 아니라 감정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현대 도덕 심리학의 발견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5권 - 거미인간(호모 넥서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은 '거미인간(호모 넥서스)'에게, 건강한 그물(폴리스)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관계의 규칙', 즉 '정의'에 대해 설명합니다. 거미인간은 이 책을 통해, 정의가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함을 봅니다. '분배적 정의'는, 그물이 얻은 영양분(공동체의 자원)을 각 거미의 가치와 기여도에 따라 '비례적으로' 나누어주는 규칙입니다. 반면, '조정적 정의'는 한 거미가 다른 거미의 실을 부당하게 침범하거나 끊었을 때(불의), 그 손상을 정확히 복구하여 그물 전체의 '산술적' 균형을 되찾는 규칙입니다. 그리고 '공정성'은, 이 일반적인 규칙들이 예측하지 못한 특수한 상황에서 오히려 그물을 손상시킬 때, 그물의 정신에 따라 규칙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거미인간의 최고 지혜입니다. 이 책은 '거미인간'에게, 정의란 결국 그물의 모든 '연결'들이 올바른 비례와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궁극의 조율 원리임을 가르쳐줍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5권 - 비판과 논쟁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은 서양 사상의 초석이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몇 가지 근본적인 비판에 직면합니다.


• 현상 유지적이고 보수적인 성격: 그의 '분배적 정의'는 각자의 '가치(merit)'에 따라 분배하는 것을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그 '가치'의 기준 자체가 기존의 사회적 위계(귀족, 부자, 자유민)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그의 정의론은 결국 현존하는 불평등한 사회 질서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로 기능할 수 있다는 비판입니다. 그는 '가치의 기준 자체는 정의로운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 노예제와 여성 배제의 문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정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명시적으로 말합니다. 이는 그의 정의론이 당시 아테네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였던 노예와 여성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그의 정의는 결코 '보편적'이지 않으며,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특수적' 정의에 불과하다는 근본적인 비판입니다.


'자연법' 개념의 모호성: 그는 '자연적 정의'가 어디에서나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고 말하지만,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는 '자연'의 이름으로 특정 시대의 편견(예: 남성의 지배)을 영원한 진리처럼 정당화할 위험을 내포합니다.


• 개인의 권리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 그의 정의론은 공동체 안에서의 '올바른 역할'과 '마땅한 몫'을 강조하지만, 공동체의 결정에 맞서 개인이 주장할 수 있는 양도 불가능한 '기본권'이라는 개념은 희박합니다. 이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개인을 희생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함께 읽어야 할 책


『정의론』 (존 롤스 저, 황경식 옮김, 이학사, 2003)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2,300년, '정의'의 문제를 다시 철학의 중심으로 가져온 20세기의 고전입니다. 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정의가 '가치(merit)'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의 베일' 뒤에서 모든 개인의 '평등한 자유'를 최우선으로 보장하고 '최소 수혜자'를 배려하는 원리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저, 김명철 옮김, 와이즈베리, 2014) 바로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관을 현대적으로 부활시켜, 롤스의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공동선'의 정치를 옹호하는 책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최고의 안내서입니다.

『국가』 (플라톤 저, 박종현 역주, 서광사, 2005)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플라톤이 생각한 '정의'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책입니다. 플라톤은 정의를 개인의 영혼과 국가의 각 부분이 자신의 올바른 위치에서 조화를 이루는 상태로 보았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정의론을 비교하며 읽는 것은 서양 철학의 근원을 이해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