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해러웨이의 『종과 종이 만날 때』
총평
도나 해러웨이의 『종과 종이 만날 때』는 결코 편안한 독서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주는 불편함과 지적 현기증은,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안락하게 안주해왔던 '인간 중심의 선형적 세계관'이 깨지는 파열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이 진화의 사다리 맨 꼭대기에 있고, 동물과 자연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자원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역사는 발전하고, 과학은 승리하며, 개인은 독립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형적 문명'의 신화였습니다. 하지만 해러웨이는 우리의 밥상 위 치킨 조각에서, 실험실의 케이지 안에서,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 달리는 잔디밭 위에서 그 믿음이 얼마나 허약하고 폭력적인 것인지를 낱낱이 폭로합니다.
이 책은 '호모 넥서스'가 추구하는 비선형적 세계관의 생물학적, 철학적 뿌리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거미처럼 관계의 줄을 타고 이동하는 존재라면, 그 줄의 반대편에는 반드시 나 아닌 다른 존재 - 때로는 개, 때로는 박테리아, 때로는 기술 - 가 매달려 있습니다. 그 줄이 흔들릴 때 우리도 함께 흔들립니다. 내가 거미줄을 당기면 저쪽의 개가 반응하고, 개의 움직임이 나의 거미줄을 진동시킵니다.
결국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 우리는 이 지구상의 다른 존재들에게 먹힘으로써, 혹은 그들을 먹음으로써, 그리고 그들과 함께 뒹굴고 사랑함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선형적인 성장의 신화가 끝나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털북숭이 타자(Others)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들의 숨결에 나의 리듬을 맞추는 '공존의 기술'일 것입니다. 해러웨이는 바로 그 기술을 배우는 가장 급진적이고도 다정한 안내서를 우리에게 건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초대에 응답하여, 우리만의 '의미의 그물'을 짤 차례입니다.

『종과 종이 만날 때(When Species Meet)』
인류 문명은 오랫동안 '선'의 이미지에 지배당해 왔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화살표로, 역사를 진보의 단선적 궤적으로, 그리고 인간의 생애를 탄생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명확한 서사로 이해해 왔습니다. 이러한 선형성(Linearity)은 호모 사피엔스가 복잡한 자연 세계를 통제하고 예측 가능한 질서를 구축하는 데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며, 이 견고해 보이던 직선의 세계는 균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 팬데믹, 그리고 디지털 네트워크의 초연결성은 더 이상 원인과 결과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 복잡계의 현실을 우리 앞에 들이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명사적 전환점에서,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의 저작 『종과 종이 만날 때(When Species Meet)』는 단순한 동물학이나 윤리학 서적을 넘어선 예언적 텍스트로 다가옵니다. 해러웨이는 인간이 스스로를 만물의 척도이자 유일한 주체로 설정해온 근대 휴머니즘의 오만을 해체하고, '반려종(Companion Species)'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결코 홀로 존재한 적이 없음을 폭로합니다. 그녀가 말하는 반려종은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애완동물(Pet)이 아니라, '함께 빵을 나누며(cum panis)' 서로의 존재를 빚어내는 존재론적 파트너입니다.
해러웨이가 제시하는, 개와 인간이 땀 흘리며 달리는 어질리티 경기장, 실험실의 희생, 그리고 밥상 위에서의 책임은 호모 넥서스가 실천해야 할 '감지'와 '연결'의 구체적인 현장입니다.
해러웨이의 논의는 추상적인 철학에서 시작하여 구체적인 땀 냄새가 나는 훈련장을 거쳐, 다시 기술과 윤리가 결합된 거시적인 생태계로 확장됩니다. 각 장은 독립적인 에세이의 성격을 띠면서도, '얽힘(Entanglement)'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주제로 수렴됩니다.
1부: 우리는 결코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 (We Have Never Been Human)
1부는 근대성이 만들어낸 '인간'이라는 범주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폭로하는 작업입니다. 여기서 해러웨이는 인간이 박테리아, 동물, 기술과 분리된 순수한 존재라는 믿음을 공격합니다.
1장 종과 종이 만날 때: 서문
해러웨이는 "우리는 결코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는 브뤼노 라투르의 명제를 생물학적으로 확장합니다. 인간의 몸 자체가 이미 수조 개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로 이루어진 다종 공동체입니다.
• 반려종의 존재론: 그녀는 '반려종'을 단순히 곁에 있는 동물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이는 역사적, 생물학적, 기술적으로 얽혀 서로를 형성하는 모든 존재를 일컫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누구와 함께 형성되고 있는가?"로 대체됩니다. 이는 호모 넥서스 문건에서 제시하는 "관계 중심 사고: 객체에서 연결로"의 철학적 기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접촉지대(Contact Zone): 서로 다른 종이 만나는 지점은 평화롭기만 한 에덴동산이 아닙니다. 그곳은 권력과 사랑, 착취와 존중이 뒤섞인 난장(mess)입니다. 해러웨이는 이 복잡성을 피하지 말고 그 안 머무르며(Staying with the trouble) 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합니다.
2장 가치를 띤 개와 살아있는 자본
이 장은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물이 어떻게 가치를 생산하는지를 분석합니다.
• 생명 자본(Biocapital): 현대 사회에서 개는 펫 푸드, 수의학, 훈련 시장 등 거대 산업의 소비자이자, 인간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감정 노동자입니다. 또한 유전공학에서는 그들의 생체 정보 자체가 자본화됩니다. 해러웨이는 개를 수동적인 상품으로 보는 시각을 거부하고, 그들 역시 관계 속에서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능동적인 행위자(Actor)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호모 넥서스가 비판하는 '소유 중심 경제'와 '선형적 성장'의 모델이 생명체에게 적용될 때 발생하는 모순을 드러냅니다.
3장 고통 나누기: 실험실 동물과 인간의 도구적 관계
가장 윤리적으로 난해하고 무거운 장입니다. 해러웨이는 과학 연구를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을 다룹니다.
• 도구적 사용의 불가피성: 그녀는 실험 동물 사용을 전면 반대하는 단순한 입장을 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결코 무고하지 않다"는 선언과 함께, 인간의 생존과 지식이 다른 종의 희생 위에 서 있음을 인정합니다.
• 비선형적 책임: 중요한 것은 동물을 '물건'처럼 쓰고 버리는 '도구적 이성'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인지하고 공유하는 '고통 나누기(Sharing Suffering)'입니다. 실험실의 연구자가 쥐를 안락사시킬 때, 그것은 기계적인 처리가 아니라 관계적 책임이 수반된 의식이어야 합니다. 이는 호모 넥서스의 윤리인 '관계의 책임'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책임은 법적 면죄부가 아니라, 연결된 존재의 고통에 응답할 능력(Response-ability)입니다.
4장 검증된 삶: 순혈종 개 세계의 사랑과 지식의 실천들
해러웨이는 자신의 반려견 '카이엔'과의 삶을 통해 순혈종 개 번식 문화를 탐구합니다.
• 우생학적 욕망과 사랑의 모순: 순혈종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우생학적 욕망(순수성, 통제, 예측 가능성)과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브리더들은 동시에 개에 대한 깊은 지식과 사랑을 가지고 건강한 개체를 위해 헌신합니다. 이 모순 속에서 해러웨이는 유전적 다양성을 해치지 않는 '책임 있는 번식'을 고민합니다. 이는 호모 넥서스 에서 비판하는 '표준화'와 '통제'의 욕망이 생명에게 투영된 사례입니다.
5장 잡종견을 복제하고, 호랑이를 구출하기
생명공학 기술, 특히 복제 기술과 멸종 위기 종 보존 문제를 다룹니다.
• 복제와 유일성: 사랑하는 개를 복제하려는 '미시플리시티 프로젝트' 등을 비판하며, 복제된 개체는 결코 원본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존재는 유전자 정보(DNA)라는 선형적 코드만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환경, 시간, 우연, 관계가 빚어낸 비선형적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복제 욕망은 '예측 가능성'에 대한 병적인 집착입니다.
2부: 스포츠 기자 딸의 노트 (Notes of a Sports Writer's Daughter)
2부는 해러웨이가 직접 뛰어든 '어질리티(Agility, 장애물 달리기)'라는 스포츠의 현장을 다룹니다. 여기서는 이론보다 몸과 몸의 부딪힘이 중요합니다.
6장 유능한 신체와 반려종
• 언어 너머의 소통: 어질리티 경기장에서 인간 핸들러와 개는 언어로 소통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시선, 어깨의 기울기, 달리는 속도를 통해 대화합니다. 이것은 호모 넥서스가 강조하는 '멀티모달 커뮤니케이션'의 완벽한 예시입니다. 텍스트가 아닌 감각과 맥락으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 유능함(Competence): 해러웨이는 개를 보호받아야 할 아기로 취급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개는 자신의 신체를 통제하고, 과제를 수행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유능한 주체'입니다.
7장 우정으로 맺어진 종
• 비대칭적 우정: 인간과 개는 평등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문을 열어주고, 밥을 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의 비대칭 속에서도 진정한 우정과 존중이 가능합니다. 이는 주종 관계가 아닌,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파트너로서의 결합입니다.
8장 접촉지대에서의 훈련: 어질리티 스포츠에서 권력, 놀이, 그리고 발명
• 놀이로서의 훈련: 훈련은 억압적인 훈육이 아니라,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고 조율하는 '놀이'여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개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발명'해냅니다. 이는 호모 넥서스의 '실험적 사고'와 '학습 조직'의 원리가 두 종 사이에서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3부: 얽힌 종과 종 (Entangled Species)
3부는 개의 세계를 넘어 더 넓은 기술, 생태, 윤리의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9장 크리터캠: 자연문화 속의 겹눈
• 기술적 시선: 동물에게 부착하여 그들의 시점으로 세상을 보는 '크리터캠'을 분석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동물의 시선을 획득한다고 믿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의 기술적 욕망이 투영된 시선입니다. 그러나 이 기술은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 '자연문화(Natureculture)'의 얽힘을 보여주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10장 치킨
• 기술적 생명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동물인 닭의 역사를 추적합니다. 닭은 인간의 식탁을 위해 유전적으로 개량되고 공장식으로 생산되는 '살아있는 기계'가 되었습니다. 해러웨이는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효율성이 생명을 어떻게 선형적 생산 라인의 부품으로 전락시켰는지 고발합니다.
11장 테크노문화에서 반려종 되기
• 사이보그 반려종: 현대 사회의 동물은 마이크로칩, GPS, 첨단 의료 기술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기술은 자연을 파괴하는 적이 아니라, 종과 종을 연결하고 새로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입니다.
12장 마지막 식사: 영양가 있는 소화불량
• 소화불량의 윤리: 우리는 다른 생명을 먹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해러웨이는 채식주의를 유일한 대안으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먹고 먹히는 관계의 필연성을 인정하되, 그 죽음에 대해 알고 책임지며 감사하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이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것이 바로 '영양가 있는 소화불량'입니다. 이는 호모 넥서스의 '공존'과 '진정성'의 윤리가 식탁 위에서 구현되는 방식입니다.
『종과 종이 만날 때(When Species Meet)』 구조적 해석
해러웨이의 텍스트는 단일한 학문 분과로 가둘 수 없는 융합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철학, 심리학, 그리고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 책의 다층적 의미를 해부합니다.
철학적 해석: 포스트휴머니즘과 관계적 존재론
이 책은 서구 철학의 근간인 데카르트적 이원론(정신/육체, 인간/동물, 문명/자연)을 해체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정수입니다.
• 존재론적 전환 (Ontological Turn): 해러웨이에게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의 매듭'입니다. 이는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를 넘어 '종-간-존재(Inter-species Being)'로 확장된 현상학입니다. "우리는 결코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는 선언은 인간이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라, 미생물부터 기술적 인공물까지 다양한 타자들과의 얽힘 속에서만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인간 예외주의를 비판하며, 모든 존재가 흙(Humus)으로 돌아가는 퇴비(Compost) 공동체의 일원임을 강조합니다.
심리학적 해석: 상호주관성과 정동 이론
심리학적 관점에서, 특히 발달심리학과 관계 심리학의 측면에서 이 책은 비언어적 소통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 상호주관성 (Intersubjectivity): 2부의 어질리티 훈련(pp. 255-308)은 언어가 배제된 상태에서 두 존재가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고 감정을 조율(attunement)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다니엘 스턴이 말한 유아와 양육자 간의 초기 소통과 유사하지만, 종을 초월하여 일어난다는 점에서 심리학의 외연을 확장합니다.
• 정동의 전염 (Affect Contagion): 훈련장에서 느끼는 기쁨, 좌절, 수치심은 개인의 내부 심리가 아니라, 개와 인간 사이의 공기 속에서 생성되고 전염되는 '정동'입니다. 이는 호모 넥서스 문건에서 언급된 '감정 전염'과 '흐름 감지'의 현상학적 사례입니다.
사회학 및 과학기술학(STS) 해석: 다종 민족지
이 책은 사회학적 연구 대상을 인간 너머로 확장하는 '다종 민족지(Multispecies Ethnography)'의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 자연문화 (Natureculture): 해러웨이는 자연과 문화를 분리하는 근대적 분류법을 거부합니다. 개는 늑대의 후손(자연)인 동시에 인간의 육종 기술(문화)의 산물입니다. 2장(pp. 62-89)에서 개가 펫 산업의 자본 축적 과정에 포섭되는 동시에 그 안에서 능동적인 행위자성을 발휘하는 모습은, 자본주의 분석이 비인간 존재까지 포괄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종과 종이 만날 때(When Species Meet)』 거미인간(호모 넥서스)
도나 해러웨이의 사상과 '호모 넥서스' 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이론적 공명(Resonance)을 이룹니다. 두 텍스트는 모두 '직선의 종말'을 선언하고 '그물(Web)의 지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지적 궤적을 그립니다.
| 비교 항목 | 도나 해러웨이 (반려종) | 호모 넥서스 (거미인간) | 교차 해석의 핵심 (Insight) |
| 핵심 메타포 | 실뜨기 (Cat's Cradle): 실을 주고받으며 패턴을 만드는 놀이. 끊임없는 생성과 변화. | 거미줄 (Spider Web): 몸에서 실을 뽑아 세상을 직조하고 진동을 감지하는 구조. | 두 메타포 모두 고정된 구조가 아닌, 행위를 통해 생성되는 비선형적 연결망을 의미함. |
| 세계관 | 자연문화 (Natureculture): 자연과 문화가 뒤엉킨 잡종적 세계. | 복잡계 (Complex System): 원인과 결과가 얽혀있는 예측 불가능한 세계. | 이분법(자연/문명, 주체/객체)의 해체. 순수성은 없으며, 오직 얽힘만이 존재함. |
| 소통 방식 | 몸의 대화: 어질리티에서 언어 없이 나누는 감각적 교류. | 멀티모달 커뮤니케이션: 텍스트를 넘어선 감각, 맥락, 흐름의 소통. | 언어 중심의 로고스(Logos)에서 감각 중심의 파토스(Pathos)로의 전환. 판단이 아닌 '감지'가 중요함. |
| 윤리관 | 함께-되기 (Becoming-with): 파트너 없이는 나도 없다. 고통의 공유. | 상호성 (Interbeing): 존재의 상호 의존성과 관계에 대한 책임. | 개인주의적 윤리의 종말. 윤리는 '나'의 올바름이 아니라 '우리' 관계의 건강성에서 나옴. |
| 리더십/훈련 | 반응과 조율: 개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함께 춤추기. | 흐름 감지: 통제하려 하지 않고 흐름을 읽고 연결하기. | 명령과 통제(Command & Control)의 선형적 리더십 붕괴. 상호적응적이고 유연한 리더십의 부상. |
첫째, 존재론적 일치. 호모 넥서스는 "나는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를 묻습니다. 해러웨이는 이를 "함께-되기(Becoming-with)"로 정의합니다. 내가 거미줄을 짜는 주체라면, 그 거미줄의 반대편에는 반드시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매달려 있으며, 그들의 진동이 나를 만듭니다.
둘째, 감각의 회복. 호모 넥서스는 '판단이 아닌 감지'를 강조합니다. 해러웨이의 어질리티 훈련은 이를 완벽하게 증명합니다. 핸들러는 개에게 이성적인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개의 속도와 에너지를 온몸으로 '감지'하고 그 흐름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는 호모 넥서스가 말하는 '흐름 감각 훈련'의 실전편입니다.
셋째, 윤리의 확장. 호모 넥서스의 윤리인 '관계의 책임'은 해러웨이의 '고통 나누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실험실의 쥐나 식탁 위의 닭을 대할 때, 우리는 그들을 도구로만 보는 선형적 유용성에서 벗어나, 그들의 희생이 나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무겁게 인식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복잡한 생명의 그물망에 대한 엄중한 책임감입니다.
결국 해러웨이의 텍스트는 호모 넥서스가 되어가는 과정, 즉 인간 예외주의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와 타자와의 끈적하고 위험하며 아름다운 얽힘 속으로 뛰어드는 '거미-되기'의 여정을 안내하는 지도라 할 수 있습니다.
『종과 종이 만날 때(When Species Meet)』비평
1 난해함과 엘리트주의적 장벽: 소통의 단절 가능성
• 비판: 해러웨이의 문체는 악명 높을 정도로 난해합니다. 그녀는 은유, 신조어, 과학적 전문 용어, 그리고 아이러니를 뒤섞어 사용합니다. 이는 '연결'과 '공존'을 지향하는 책의 주제와 모순되게도, 고등 교육을 받은 지적 엘리트들만의 배타적인 리그를 형성할 위험이 있습니다.
• 근거: 1장 서문만 보더라도 데리다, 들뢰즈, 푸코 등의 철학적 개념이 충분한 설명 없이 인용됩니다. 또한 생물학적 지식과 페미니즘 이론이 혼재되어 있어 일반 독자는 텍스트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독자가 저자의 의도를 '감지'하기 전에 텍스트의 난해함에 압도당한다면, 진정한 '함께-되기'는 텍스트 차원에서 실패한 것일 수 있습니다.
2 '어질리티'라는 특수성의 일반화 오류
• 비판: 해러웨이는 어질리티 스포츠를 인간과 동물의 이상적인 '접촉지대'이자 '함께-되기'의 모델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어질리티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중산층 이상의 취미 활동이며, 매우 특수한 문화적 배경을 가집니다. 이를 모든 인간-동물 관계의 보편적 윤리 모델로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 근거: 8장에서 묘사되는 훈련 과정은 고도의 규율과 통제가 전제된 활동입니다. 비록 '놀이'의 요소가 있다고는 하나, 결국 인간이 설계한 코스를, 인간의 신호에 따라, 개가 통과해야 하는 구조는 여전히 인간 중심적인 권력 구조(Human Dominance)가 작동하는 현장입니다. 과연 시골의 묶여 사는 개나 도시의 유기견, 혹은 하루하루 생존이 급급한 노동 계급의 반려동물에게도 이러한 고차원적인 '파트너십'이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3 기술 낙관주의와 생물학적 결정론의 줄타기
• 비판: 해러웨이는 '크리터캠'이나 유전공학 기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열어주는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을 긍정합니다. 때로는 기술이 가진 파괴적 본성이나 자본주의적 착취 구조를 '새로운 관계 맺기'라는 미명 하에 너무 미학적으로 포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근거: 5장의 복제견 논의나 11장의 테크노문화 논의에서, 그녀는 기술 자본주의가 생명을 상품화하는 폭력성을 지적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 기술적 조건 안에서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이는 구조적 변혁보다는 개인적, 미시적 차원의 대응에 머무르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2장에서 동물을 '자본'으로 분석할 때, 자본주의의 냉혹한 착취 구조를 '가치 생산의 주체'로 재해석하는 것은 자칫 자본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오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함께 읽어야 할 책
• 『트러블과 함께하기: 자듸가 아이를 낳을 때』 도나 J. 해러웨이 : 『종과 종이 만날 때』 이후 해러웨이의 사상이 어떻게 '쑬루세(Chthulucene)'라는 더 거대한 지구적 생태 담론으로 확장되었는지 보여줍니다. '반려종' 개념이 지구 전체의 '퇴비 공동체'로 진화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동물의 감정은 말보다 솔직하다』 (원제: The Emotional Lives of Animals) 마크 베코프 : 해러웨이가 철학적으로 접근했다면, 동물행동학자 베코프는 과학적 관찰을 통해 동물의 감정, 도덕성, 공감 능력을 증명합니다. 해러웨이의 '상호주관성' 주장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 인간이 자연을 분류하고 질서를 부여하려는 선형적 시도가 어떻게 실패하는지, 그리고 혼돈 속에서 어떻게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되는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에세이입니다. 호모 넥서스의 '경계 해체' 및 해러웨이의 분류학 비판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 적자생존(경쟁)이 아니라 '친화력(Friendliness)'과 협력이 진화의 핵심 동력임을 밝힙니다. 해러웨이의 '우정으로 맺어진 종' 개념을 진화인류학적으로 지지하며, 호모 넥서스의 '공존의 윤리'1를 과학적으로 입증합니다.
'책 해석과 이해(구조와 에세이) > 책 해석과 이해(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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