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해러웨이'의 『트러블과 함께하기』
해러웨이에게 '트러블'은 명확한 원인을 제거하면 해결되는 '문제(Problem)'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지구 전체에 뒤얽힌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상태'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그는 '문제 해결'이라는 인간중심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이 '트러블과 함께 머물기(Staying with)'를 제안합니다.
총평 - 쑬루세를 향한 '응답-능력'의 요구
도나 해러웨이의 『트러블과 함께하기』는 절망적인 생태 위기의 시대에, '기술 유토피아적 희망'과 '냉소적 절망'이라는 양극단의 안일한 함정에 빠지지 않고 "진실로 현재에 임하는" 제3의 길을 고통스럽게 모색하는 역작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낡은 질문을 '우리는 무엇과 함께-되어가고 있는가?'라는 관계론적 질문으로 전환시킨 데 있습니다. 해러웨이는 우리에게 명쾌한 해결책이나 쉬운 위로를 건네지 않습니다. 대신 '실뜨기'의 실을 건네며, 이 상처 입은 세계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친척을 만들고', '퇴비 더미'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공-산'할 것을 요구합니다.
물론, 그녀의 글쓰기는 난해하고 그녀의 제안은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독서 과정 자체가 하나의 '트러블'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은 지식이나 완벽한 이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이 '트러블' 속에서 다른 존재들의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고, 그들의 고통과 부름에 구체적으로 '응답-할-수-있는-능력(response-ability)'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책은 21세기의 '이론서'라기보다는, 쑬루세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존재(혹은 '거미인간')를 위한 '감각 훈련서'이자 '실천 매뉴얼'입니다.

『트러블과 함께하기』
'트러블'을 직시하는 새로운 사유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트러블과 함께하기(Staying with the Trouble)』는 단순히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를 다루는 또 하나의 환경 보고서가 아닙니다. 이 책은 현시대를 지배하는 절망적 종말론과 근거 없는 기술적 낙관론 모두를 거부하며, 우리가 이미 그 안에 빠져있는 이 '곤란함(Trouble)'을 회피하지 말고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자는 절박한 철학적 '선언'입니다.
해러웨이에게 '트러블'은 명확한 원인을 제거하면 해결되는 '문제(Problem)'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지구 전체에 뒤얽힌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상태'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그는 '문제 해결'이라는 인간중심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이 '트러블과 함께 머물기(Staying with)'를 제안합니다.
'함께 머문다'는 것은 체념이나 포기가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지금 여기, 이 상처 입은 지구 위에서 다른 존재들의 고통에 '응답-할-수-있는-능력(response-ability)'을 기르는 적극적인 실천입니다. 이 책은 그 실천을 위한 사유의 도구로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Make Kin Not Babies)!"라는 도발적인 슬로건을 던집니다. 이는 단순한 인구 조절 구호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관계 맺음을 통해 이 재앙적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가자는, 가장 급진적인 윤리적 요구입니다.
1장. 반려종과 실뜨기하기
1장은 이 책 전체의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해러웨이는 먼저 '반려종(Companion Species)'이라는 개념을 확장합니다. 이는 단순히 인간이 소유하는 '반려동물'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며 서로의 존재를 구성하고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모든 파트너를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개와 비둘기뿐만 아니라 , 심지어 해러웨이가 자신의 개 카이엔에게 먹이는 요실금 치료제(DES) 같은 약물 분자까지 포함됩니다. 이들은 모두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함께-되어가는(becoming-with)' 과정 속에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의 복잡성을 사유하는 방식으로 해러웨이는 '실뜨기(String Figures)' 놀이를 제안합니다. 실뜨기는 혼자 할 수 없으며, 한 사람이 만든 패턴을 다른 파트너가 이어받아 새로운 패턴으로 변형시키는 놀이입니다. 이는 지식이나 이야기가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여러 존재(인간/비인간) 간의 '촉수적 연결' 을 통해 끊임없이 변형되고 생성되는 과정임을 상징합니다.
해러웨이는 'SF'라는 약자를 중의적으로 사용합니다. SF는 '실뜨기(String Figures)'인 동시에, '과학 소설(Science Fiction)', '사변적 우화(Speculative Fabulation)', '사변적 페미니즘(Speculative Feminism)'을 의미합니다. 이는 '트러블'의 시대에, 기존의 낡은 서사에서 벗어나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하기(Storytelling)'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핵심 방법론입니다.
2장. 촉수 사유: 인류세, 자본세, 쑬루세
2장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어떻게 명명해야 하는지 질문하며, 해러웨이의 핵심 사상인 '쑬루세'를 제안합니다.
• 인류세(Anthropocene) 비판: 해러웨이는 '인류세'라는 용어가 재앙의 원인을 '인류(Anthropos)'라는 단일하고 거대한 주체에게 돌린다고 비판합니다. 이는 실제 파괴를 주도한 특정 인간 집단(서구, 남성, 자본가)의 책임을 모든 인류에게 전가하며, 여전히 인간을 유일한 행위자로 상정하는 '오만한 남근숭배적 이야기'이자 인간중심주의의 함정이라고 지적합니다.
• 자본세(Capitalocene)와 플랜테이션세(Plantationocene): 해러웨이는 재앙의 원인이 '인류' 종 전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임을 명확히 하는 '자본세'라는 용어에 일부 동의합니다. 더 나아가, 노예제와 단일경작 플랜테이션 농업이 어떻게 인간과 비인간을 '자원'으로 착취하고 현재의 생태 위기를 초래했는지 고발하는 '플랜테이션세'를 언급하며 원인을 더 구체화합니다.
• 쑬루세(Cthulucene) 제안: 해러웨이는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대안적 시대로 '쑬루세'를 제안합니다. 이는 공포 소설 속 '크툴루'와는 무관하며, '땅 속의(Chthonic)' 존재들을 의미합니다. 쑬루세는 인간 중심의 수직적 시각에서 벗어나, 땅 속에서부터 복잡하게 얽혀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들(거미, 곰팡이, 미생물, 문어 등)의 '촉수적 연결(Tentacular connections)' 과 '함께-만들기' 에 주목하는 시대입니다. '촉수 사유(Tentacular Thinking)'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분석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얽혀 들어가며 '감지'하는 비선형적 사유 방식입니다.
3장. 공-산(Sympoiesis): 공생발생과 트러블과 함께하기라는 활기찬 예술
3장은 쑬루세의 존재론적 원리를 설명합니다. 해러웨이는 기존 생물학 및 시스템 이론의 핵심 개념인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 즉 자가-생산(self-making) 을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오토포이에시스는 시스템이 스스로 경계를 짓고 홀로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개념입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해러웨이는 '심포이에시스(Sympoiesis)', 즉 '공-산(共-産)' 또는 '함께-만들기(making-with)' 를 제시합니다. "어떤 것도 스스로를 만들지 않는다(Nothing makes itself)" 는 선언처럼,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들과의 복잡한 얽힘과 공생 속에서 '함께'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산호초는 조류나 박테리아와의 공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 인간 역시 수많은 미생물과의 공생(홀로비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트러블과 함께하기'란 바로 이러한 '공-산'의 과정을 받아들이고, 이미 상처 입고 망가진 세계 속에서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든 '함께-만들어-가는' 실천적이고 창의적인 '활기찬 예술(Lively Art)' 그 자체입니다.
4장. 친척 만들기: 인류세, 자본세, 플랜테이션세, 쑬루세 (Making Kin)
4장은 쑬루세 시대의 윤리적 실천을 제시합니다. 이 장의 핵심 구호는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Make Kin Not Babies)!"입니다.
이 구호는 인구 폭발 문제에 대한 대안적 구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친척(Kin)'은 더 이상 혈연, 가계, 유전적 생식에 기반한 인간만의 폐쇄적인 범주가 아닙니다.
'친척 만들기'는 인간과 비인간(동물, 식물, 미생물, 심지어 기계와 DES 분자까지) 사이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응답-능력'과 '책임'의 관계를 설정하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된 '플랜테이션세'가 만들어낸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관계(인간을 노예로, 자연을 자원으로)를 끊어내고, 복수종(multi-species)이 함께 번성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망을 구축하려는 시도입니다.
5장. 카밀 이야기: 퇴비의 아이들
마지막 5장은 'SF(사변적 우화)' 방법론을 직접 실천한 해러웨이의 단편 소설입니다. 이 이야기는 '트러블'이 만연한 21세기 중반 이후, 멸종의 폐허 속에서 살아가는 '퇴비 공동체'의 다섯 세대에 걸친 기록입니다.
• 퇴비주의(Compostism): 해러웨이는 '포스트휴먼(Post-human)' 대신 '퇴비(Compost)'가 될 것을 제안합니다. '퇴비'가 된다는 것은 "맨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기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망가진 세계, 즉 '폐허(ruins)' 속에 살고 있으며, 죽은 자들(과거의 유산, 멸종된 종)과 산 자들(인간, 비인간)이 뒤섞여 썩어가는 '퇴비 더미' 속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가야 함을 상징합니다.
• 카밀 이야기: 주인공 '카밀'은 인간의 유전자뿐만 아니라, 멸종 위기에 처한 '제왕나비'의 유전자를 받아들여 나비와 공생하도록 태어난 아이입니다. 이는 '친척 만들기'와 '공생발생'이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 테크노사이언스를 통한 생물학적·기술적 '공생발생적 결합'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해러웨이의 사변적 상상력의 극치입니다.
(용어)
• 쑬루세 (Chthulucene): 인류세와 자본세의 대안으로 해러웨이가 제안하는 시대 구분. 그리스어 '크토닉(Chthonic, 땅 속의)'에서 유래.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거미, 곰팡이, 미생물 등 땅 속에서부터 복잡하게 얽혀 살아가는 '촉수적' 존재들의 관계망에 주목하는 시대.
• 촉수 사유 (Tentacular Thinking):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이 아닌, 촉수를 뻗어 주변을 '감지'하고 '연결'하며 얽혀 들어가는 비선형적이고 관계적인 사유 방식.
• 공-산 / 심포이에시스 (Sympoiesis): '함께-만들기(making-with)'. "어떤 것도 스스로를 만들지 않는다"는 명제하에, 모든 존재가 다른 존재들과의 복잡한 얽힘과 공생 속에서 '함께' 생성된다는 개념.
• 오토포이에시스 (Autopoiesis): '자가-생산(self-making)'. 심포이에시스의 반대 개념으로, 자신만의 경계를 설정하고 스스로를 유지하며 독립적으로 생성되는 시스템을 의미.
• 친척 만들기 (Making Kin):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는 구호. 혈연, 종, 계보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동물, 식물, 기계 등) 사이에 새로운 돌봄과 책임의 관계를 맺는 윤리적, 정치적 실천.
• 퇴비주의 (Compostism): '포스트휴머니즘' 대신 해러웨이가 제안하는 용어. 우리는 '맨 처음' 시작할 수 없으며, 이미 죽은 자들과 산 자들, 인간과 비인간이 뒤섞인 '폐허'이자 '퇴비 더미' 속에서 살아가야 함을 인정하는 태도.
• 반려종 (Companion Species): 인간과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변화시키는 존재들. 단순한 '반려동물'을 넘어 '종' 단위로, 나아가 약물 분자까지 확장되는 '함께-되기'의 파트너.
• 실뜨기 (String Figures, SF): 혼자 할 수 없는 놀이. 패턴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상징. 해러웨이는 이를 사변적 우화(SF), 사변적 페미니즘(SF) 등과 연결하며, '트러블'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법론으로 사용.
• 응답-능력 (Response-ability): '책임(responsibility)'을 넘어, 곤란한 상황과 타자의 부름에 구체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 '트러블과 함께하기' 위한 핵심 역량.
『트러블과 함께하기』구조적 해석
철학 및 과학기술학(STS)적 분석: '자연문화(Natureculture)'와 인식론의 전복
해러웨이 사상의 근간에는 '자연(Nature)'과 '문화(Culture)'라는 서구 철학의 이분법을 근본적으로 해체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그는 '자연문화(Natureculture)'라는 용어를 통해, 자연은 인간의 문화적 개입과 분리되어 저 너머에 존재하는 순수한 대상이 아니며, 문화 역시 자연적 기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1장에서 해러웨이는 자신의 반려견 카이엔에게 먹이는 요실금 치료제(DES)를 분석합니다. 이 DES라는 분자는 개의 병든 몸(자연)을 치료하는 동시에, 제약 산업의 산물(테크노사이언스)이며, 개를 돌보는 실천(문화)의 매개체입니다. 여기서 자연과 문화는 분리 불가능하게 얽혀 '자연문화'를 이룹니다.
이는 과학 지식이 객관적 실재를 수동적으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권력 관계와 논쟁 속에서 능동적으로 '구성'된다는 과학기술학(STS)의 핵심 명제("과학은 논쟁할 만한 텍스트이고, 권력의 장이다")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생태학적 분석: '공생발생(Sympoiesis)'과 종의 경계 해체
전통적인 다윈주의 생태학이 '경쟁'과 '개체'를 중심으로 종의 진화를 설명했다면, 해러웨이는 '공생(Symbiosis)'과 '공진화'를 핵심 원리로 제시합니다. 그녀가 '오토포이에시스(자가-생산)'를 비판하고 '심포이에시스(함께-만들기)'를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생태학적 관점의 전환을 보여줍니다.
모든 생명체는 사실 '홀로비옴(Holobiome)', 즉 자신과 공생하는 수많은 미생물(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등)의 집합체입니다. '나'라는 개체는 이미 그 자체로 '우리'라는 공생적 집합체입니다. 이는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내부공생설'(서로 다른 세포가 공생하며 진핵세포가 되었다는 이론)을 철학적으로 급진화한 것입니다. '트러블'의 시대에 생존은 개체의 경쟁력이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존재들과 '공-산'의 관계를 맺고 복잡한 그물을 형성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심리학적 해석: '친척 만들기'에 나타난 돌봄의 윤리와 확장된 애착 관계
해러웨이의 도발적인 구호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는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학의 근간이 된 '혈연 기반 가족(Oedipal family)' 서사와 재생산 중심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이는 캐럴 길리건(Carol Gilligan)이나 조앤 트론토(Joan Tronto) 등이 발전시킨 페미니즘 '돌봄의 윤리(Ethic of Care)'와 깊이 연결됩니다. 돌봄의 윤리는 추상적인 정의(Justice)나 보편적 법칙이 아니라, 구체적인 '관계'와 '상호의존성' 을 윤리의 중심으로 삼습니다.
해러웨이는 이 '돌봄'의 대상을 전통적인 심리학이 주목했던 '어머니-자식' 관계에서 급진적으로 확장합니다. '자식(Babies)' 중심의 돌봄 모델은 인간중심주의와 생식주의를 강화할 뿐입니다. '친척(Kin) 만들기'는 돌봄의 대상을 '반려종'과 지구의 모든 '크리터(critters)' 로 확장하는 '복수종(multi-species) 애착' 모델을 제안합니다.
이는 심리학적 '자아'의 경계를 인간 너머로 확장시키는 '포스트휴먼 심리학'의 토대가 됩니다. 1장의 DES 사례는 이러한 확장된 심리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나의 개에게 DES를 주는 일은... (중략) 유방암이 있는 여성들의 웰빙에 대해 더 책임감을 느끼게 만든다" 는 고백은, 개(반려종)에 대한 '돌봄'이 DES(분자)를 매개로 다른 인간(여성)에 대한 '책임(응답-능력)'으로 비선형적으로 확장되는 심리적 과정을 보여줍니다.
『트러블과 함께하기』거미인간(Homo Nexus)
『거미인간(Homo Nexus)』은 인류의 사고방식이 '선형적 사고(Homo Sapiens)'에서 '비선형적·관계 중심적 사고(Homo Nexus)'로 전환되고 있음을 역설합니다. 이 '거미인간'의 프레임워크는 도나 해러웨이가 『트러블과 함께하기』에서 제시하는 복잡한 사유들을 놀랍도록 명료하게 조명하는 분석 도구입니다.
첫째, '거미인간' 이론이 비판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선형적 사고' 는 해러웨이가 비판하는 '인류세' 서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거미인간' 이론에 따르면, 선형적 사고는 세상을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설명하고, '시작-중간-끝'이 있는 서사로 구조화하며, '계획과 통제'를 문명의 핵심 동력으로 삼습니다. 해러웨이가 비판하는 '인류세' 담론은 바로 이 선형적 사고의 정점에 있습니다. '인간(Anthropos)'이라는 단일한 행위자가 '원인'이 되어 '지구 파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거대 서사이기 때문입니다. '거미인간' 이론이 지적하는 '선형적 문명의 불안'과 '균열'은, 해러웨이가 '트러블(Trouble)'이라고 부르는, 더 이상 선형적 '문제 해결'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재의 복잡한 생태 위기와 정확히 상응합니다.
둘째, '거미인간(Homo Nexus)'의 '비선형(관계 중심) 사유' 는 해러웨이의 '쑬루세' 및 '촉수 사유'의 핵심입니다. '거미인간'은 선형성의 대안으로 '관계와 연결'로 사유하며,'객체에서 연결로' 사고의 중심을 전환합니다. 이는 해러웨이의 '쑬루세(Chthulucene)' 개념과 완벽하게 공명합니다. '쑬루세'는 인간 중심의 수직적 위계가 아닌, 땅 속 존재들의 '촉수적(tentacular)' 이고 수평적인 '연결망(web)' 을 사유의 중심으로 삼습니다. '거미인간'이 '객체'가 아닌 '연결'을 보듯, 해러웨이는 '개체(Autopoiesis)'가 아닌 '관계(Sympoiesis)' 를 통해 세계가 '함께-만들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셋째, '거미인간'의 핵심 은유인 '거미줄 직조(Web-weaving)'는 해러웨이의 핵심 방법론인 '실뜨기(String Figures)'와 동일한 비선형적 실천을 가리킵니다. '거미인간'은 "수많은 관계의 중심에서 거미줄처럼 실을 뻗어 나가고... 그 망을 재구성하고, 유연하게 반응하는 존재" 입니다. 해러웨이의 '실뜨기' 역시 고정된 패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인간/비인간)와 '실'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망'과 '이야기(SF)'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거미인간'의 '실'이 "지식이고, 감정이며, 연결이고, 시간 그 자체" 이듯, 해러웨이의 '실' 또한 '친척(Kin)' 이라는 새로운 관계, '응답-능력(Response-ability)' 이라는 윤리적 연결, '사변적 우화(SF)' 라는 시간을 직조하는 실입니다.
마지막으로, '거미인간'의 실천 방식인 "판단이 아닌 감지"와 "지식이 아닌 흐름 읽기"는 해러웨이가 '트러블과 함께하기' 위해 요구하는 핵심 태도입니다. 해러웨이의 '촉수 사유'는 판단하고 분석하기 전에, 먼저 세계의 '진동'을 '감지'합니다. 해러웨이가 '희망도 절망도 아닌... 감각에, 알아차리는 일에... 맞추어져 있" 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거미인간'이 '합리와 명확함의 피로' 에서 벗어나 '감지'와 '맥락'을 회복하려는 시도와 정확히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도나 해러웨이가 그리는 '트러블과 함께하는 존재'는 '거미인간(Homo Nexus)'의 가장 급진적이고 철학적인 현현(顯現)입니다. '호모 넥서스'가 인간 문명 내부의 인식론적 전환을 제안한다면, 해러웨이는 그 전환을 인간의 경계를 넘어 지구의 모든 '크리터(critters)' 로 확장시키는 '쑬루세'의 사상가입니다.
『트러블과 함께하기』비평
도나 해러웨이의 사상은 급진적이고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비판적 논쟁의 대상이 됩니다.
논쟁 1: '인류세' 용어 비판의 정치적 함의 (책임의 분산 문제)
해러웨이는 '인류세'라는 용어가 인류 전체를 단일한 범죄자로 호명함으로써, 실제 '트러블'을 일으킨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과 서구 제국주의의 책임을 은폐한다고 비판합니다. 이는 타당한 지적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적 검증은, 해러웨이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쑬루세' 역시 정치적 실천의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비록 그 안에 문제가 있을지라도, '인류'에게 공동의 책임을 부여하고 즉각적인 정치적 행동을 촉구하는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반면 '쑬루세'는 '땅 속 존재'와 '촉수'라는 시적이고 추상적인 은유를 사용함으로써,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할 '인간 행위자'의 책임을 오히려 분산시키거나 탈정치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아무도 구체적인 책임이 없다'는 말로 오용될 수 있습니다.
논쟁 2: '친척 만들기'의 실현 가능성과 모호성 (추상적 구호로서의 한계)
해러웨이의 핵심 구호인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는 혈연을 넘어선 새로운 복수종(multi-species) 돌봄과 책임의 관계를 만들자는 강력한 윤리적 촉구입니다.
하지만 이 구호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에 있어서 상당한 모호성을 가집니다. 한 비평가의 지적처럼, '친족(Kin)'이라는 단어는 "강도 높은 연결의 감각"을 전제하는데, 내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박테리아나 길거리의 비둘기와 어떻게 현실적인 '친족'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그 윤리적 책임의 구체적인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합니다. 자칫하면 '친척 만들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는 정치적 실천 대신, '모든 것을 친척처럼 느끼자'는 개인의 심리적 태도 변화로 환원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논쟁 3: 지식인의 '난해한 글쓰기'가 갖는 소통의 장벽
해러웨이는 의도적으로 은유, 상징, 신조어(쑬루세, 심포이에시스, 홀로비옴 등)를 사용하며, 여러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산만한 글쓰기'를 구사합니다. 이는 고정된 사유의 틀을 깨기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스타일은 심각한 '소통의 트러블'을 야기합니다. 많은 독자들이 "그녀의 산문은 너무 화려해서(flowery) 요점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호소합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를 "단어 게임(word games)"이라 칭하며, 그녀의 초기 저작이 가졌던 '엄격함(rigorous)'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해러웨이가 '트러블'이라는 절박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중적이고 집단적인 실천을 요구한다면, 이러한 난해한 글쓰기 스타일은 오히려 소수의 지식인을 제외한 대중과의 연결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함께 읽어야 할 책
. 인류세 책 / 줄리아 애드니 토머스, 마크 윌리엄스, 얀 잘라시에비치 / 해러웨이가 비판하는 '인류세' 개념을 지질학, 역사학, 정치학 등 '다면적 시선' 으로 집대성한 책. 2024년 3월 '인류세' 공식 인정 무산 최신 현황 까지 반영되어, 해러웨이의 비판점과 현재의 과학적 논의를 비교 검토하기 위한 필수 참고서.
.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 (지음) / 해러웨이의 '에코페미니즘'과 '친척 만들기'가 한국의 구체적인 현실 에서 어떻게 실천 되는지 보여주는 책. 해러웨이의 다소 추상적인 '돌봄'과 '공생'의 윤리 9를 한국형 에코페미니스트 15인의 생생한 목소리 로 구체화하여 읽을 수 있음.
. AI와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박휴용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 해러웨이가 『사이보그 선언』에서 시작한 '포스트휴머니즘' 논의를 21세기 'AI 시대'로 가져와 비판적으로 검토. 해러웨이의 '퇴비주의' 가 '포스트휴먼'과 거리를 두지만, 이 책은 AI와 인간의 공생, 기술 윤리 를 다루며 해러웨이의 '기계-유기체' 공생 문제를 현대적으로 재조명함.
. 인간 없는 세상 (개정판) 앨런 와이즈먼 / '인간이 사라진 후 지구가 어떻게 회복되는가' 를 탐사한 르포. 이 책은 해러웨이가 가장 경계하는 '인간 배제적' 생태주의, 즉 '트러블'을 외면하고 인간의 절멸을 상상하는 '구원 판타지' 의 전형을 보여줌. 해러웨이가 왜 '함께하기'와 '퇴비'를 강조하는지 그 이유를 가장 극명하게 대비시켜주는 필독 비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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