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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해석과 이해(구조와 에세이)/책 해석과 이해(인문학)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도나 해러웨이' - 사이보그 선언에서 관계적 존재론까지

by 유미 와 비안 2025. 11. 23.

'도나 해러웨이'의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근대 과학이 발명한 자연과 젠더의 허구를 파헤치고, 선형적 사고가 지배하던 문명의 종말을 고합니다. 사이보그가 경계를 허물었다면, 호모 넥서스는 그 위에서 새로운 의미의 거미줄을 짭니다. 불안과 혼돈의 시대, 당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비선형적 미래를 직조할 구체적인 실천법과 윤리를 제시합니다.

 

총평


도나 해러웨이의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거미인간(호모 넥서스)」 담론은 선형적 근대 문명의 황혼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새로운 새벽을 예고합니다. 해러웨이가 20세기 후반, 냉전과 가부장제, 기술과학의 폭주 속에서 '사이보그'라는 균열의 씨앗을 심었다면, 21세기의 호모 넥서스는 그 씨앗이 디지털 네트워크라는 토양 위에서 자라난 거대한 숲과 같습니다.


이 두 텍스트는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순수성의 환상을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순수한 자연도, 완벽한 기계도, 독립된 개인도 아닙니다. 우리는 기술과 결합된 사이보그이며, 타인과 환경에 얽혀 있는 거미줄의 일부입니다. 해러웨이 통찰대로 "자연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호모 넥서스의 과제는 그 만들어지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착취와 지배가 아닌 '공존'과 '돌봄'의 그물을 짜는 것입니다.


선형적 사고가 주는 안락한 통제감은 사라졌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예측 불가능한 혼돈과 불안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이 불안은 마비가 아니라,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신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정해진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가 아니라, 허공에 몸을 던져 실을 내고 길을 만드는 거미입니다.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흐름을 느끼십시오. 완벽해지려 하지 말고 연결되십시오. 그리고 당신만의 실로, 당신만의 의미 있는 그물을 짜십시오. 그것이 비선형의 파도 속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그리고 자연의 일부로서 존엄하게 살아남는 길이며, 해러웨이와 호모 넥서스가 우리에게 건네는 초대장입니다.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도나 해러웨이 - 새로운 연결의 미학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서론: 경계 위에서 다시 쓰는 인간의 정의와 비선형적 전환


인류 문명은 오랫동안 하나의 거대한 '선(Line)'을 따라 진화해 왔습니다. 시간을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직선으로 이해하고, 역사를 진보의 연대기로 기록하며, 삶을 원인과 결과가 명확히 이어지는 인과율의 사슬로 파악해 온 이 '선형적 사고(Linear Thinking)'는 근대 문명의 뼈대를 이루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 선 위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자연을 통제하며, 예측 가능한 질서를 구축함으로써 지구상의 지배적인 종으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 견고해 보였던 이 직선의 세계는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습니다. 디지털 네트워크의 폭발적인 확장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무너뜨렸고, 복잡계(Complex System)의 예측 불가능성은 선형적 통제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익숙했던 직선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무수히 얽히고설킨 관계의 망(Web) 속으로 던져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명사적 전환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텍스트를 교차하며 새로운 인간형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20세기 후반, 과학기술과 페미니즘의 접점에서 근대적 이분법을 타파하며 '사이보그(Cyborg)'라는 혁명적 주체를 선언했던 도나 J. 해러웨이(Donna J. Haraway)의 역작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Simians, Cyborgs, and Women)』입니다. 다른 하나는 2025년 현재, 비선형적 복잡성 속에서 관계와 연결을 통해 의미를 직조하는 새로운 인간형을 주창하는 「거미인간(호모 넥서스 Homo Nexus)」 담론입니다. 약 40년의 시차를 둔 이 두 텍스트는 놀랍도록 정교한 공명(Resonance)을 일으키며, 고정된 본질과 경계를 넘어선 '관계적 존재론'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힙니다.

 

 

자연의 재발명과 서사의 정치학


해러웨이의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는 1978년부터 1989년 사이에 집필된 에세이들의 모음집으로, 단순한 과학사 기술이 아니라 '자연(Nature)'이 어떻게 정치적,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를 폭로하는 인식론적 투쟁의 기록입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며, 각 부분은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해체하고 기술과학 시대의 새로운 주체를 모색하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1부. 생산과 재생산 체계로서의 자연: 지배의 알리바이를 해체하다


1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생물학, 특히 영장류학(Primatology)이 어떻게 인간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정당화했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칩니다.


• 1장. 동물사회학과 정체(政體)의 자연경제:


해러웨이는 1950-60년대 동물사회학이 동물 집단을 설명할 때 사용한 용어들—'지배', '위계', '경쟁', '투자', '비용-편익'—이 사실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언어를 생물학에 투사한 것임을 밝혀냅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원숭이와 유인원 사회를 관찰하면서, 수컷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한 위계질서와 암컷의 수동적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해러웨이는 이것이 객관적 사실의 발견이 아니라, 냉전 시대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질서를 자연계에 덮어씌운 '정치적 생리학'임을 폭로합니다. 즉, 인간의 사회적 지배 구조를 자연의 법칙인 양 설명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에 면죄부를 주려 했던 것입니다.


• 2장. 과거는 논쟁 지대다:


이 장에서 해러웨이는 '인간 본성'을 규명하려는 영장류 연구가 과거를 재구성하는 방식에 주목합니다. 과학자들은 화석과 뼈 조각을 통해 '태초의 인간'을 그려내려 했지만, 그 그림에는 언제나 당대의 젠더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었습니다사냥하는 남성(Man the Hunter) 도구를 발명하고 문명을 이끌었다는 서사는, 채집하고 양육하는 여성의 역할을 주변화했습니다. 해러웨이는 "과거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다시 쓰이는 논쟁 지대"라고 주장하며, 과학적 지식의 객관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 3장. 생물학적 기업:


해러웨이는 현대 생물학이 '인간공학'에서 '사회생물학'으로 이행하면서, 생명체를 최적화해야 할 자본주의적 '기업'처럼 다루게 되었다고 비판합니다. 사회생물학은 유전자를 이기적인 투자자로, 신체를 투자의 대상으로 묘사하며, 생명 활동의 모든 것을 경제적 효율성의 논리로 환원시킵니다. 여기서 성(sex)과 정신(mind)은 자본 축적을 위한 전략적 자원이 되며, 이는 생명공학 산업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결탁합니다.


2부. 경합하는 독법들: 서사로서의 과학


2부는 과학이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특정한 관점을 가진 '이야기(Storytelling)'임을 강조합니다. 해러웨이는 과학 텍스트를 문학 텍스트처럼 독해하며, 그 안에 숨겨진 은유와 서사 구조를 드러냅니다.


• 4장.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과학 교과서나 대중 매체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태초에 유전자가 있었다"는 식의 서사는 기독교 창조 신화의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는 복잡하고 우연적인 생명 현상을 단일한 주체(유전자/신/남성)의 의지로 설명하려는 시도로, 물질의 역동성을 무시하고 정보를 통제하는 가부장적 권위를 강화합니다.


• 5장. 영장류의 본성을 둘러싼 경합:


이 장은 제인 구달, 다이앤 포시 등 여성 영장류학자들의 등장이 기존의 남성 중심적 영장류학에 어떤 균열을 냈는지 보여줍니다. 이들은 영장류 사회에서 암컷의 능동적인 역할, 복잡한 사회적 관계, 협력과 돌봄의 중요성을 발견해냈습니다. 이는 단순히 '여성의 관점'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 '영장류의 본성'이라는 단일한 진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관찰자의 위치(성별, 경험)에 따라 자연은 전혀 다르게 구성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 6장. 부치 에메체타 읽기:


해러웨이는 나이지리아 작가 부치 에메체타의 텍스트를 분석하며, 서구 백인 페미니즘이 범하는 보편주의의 오류를 지적합니다. '여성'이라는 범주는 단일하지 않으며, 인종, 계급, 식민지의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여성의 경험은 파편화되고 다양화됩니다. 따라서 단일한 '여성 해방'의 서사를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3부. 부적절한/부적절해진 타자를 위한 차이의 정치학: 사이보그의 탄생


3부는 이 책의 핵심이자 결론으로, 이분법적 경계가 무너진 기술과학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주체와 정치를 제안합니다.


• 7장. 마르크스주의 사전에서 젠더:


'젠더(Gender)'라는 용어의 정치학을 추적합니다. 해러웨이는 젠더가 생물학적 성(sex) 위에 사회적 의미가 덧씌워진 것이라는 기존의 도식을 거부합니다. 대신 성과 젠더의 구분 자체가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장치임을 밝히며, 노동, 욕망, 언어가 얽힌 복잡한 기호 체계로서 젠더를 재정의합니다.


• 8장. 사이보그 선언문:


해러웨이 사상의 정수입니다. 그녀는 20세기 후반의 기술과학이 인간과 동물, 유기체와 기계, 물리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의 경계를 완전히 붕괴시켰음을 선언합니다. 사이보그(Cyborg)는 이 붕괴된 경계 위에서 태어난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이자, 허구와 사회적 현실의 피조물입니다. 사이보그는 '기원(origin)'을 가지지 않기에 순수성이나 에덴동산으로의 회귀를 꿈꾸지 않습니다. 해러웨이는 기술을 악마화하거나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에코-페미니즘의 주장을 거부하고, 기술과 결합된 불순한 존재로서의 사이보그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단일한 언어를 교란하고 전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 9장. 상황적 지식:


전통적 과학이 주장하는 '객관성'을 '신(God)의 속임수'라고 비판합니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무(無)의 관점'은 불가능합니다. 해러웨이는 대신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s)'을 제안합니다. 진정한 객관성은 자신의 위치(신체적, 역사적, 정치적 위치)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 '부분적인 시각'을 책임지는 것에서 나옵니다. 오직 부분적인 관점만이 합리적인 객관성을 담보하며, 이러한 부분들이 서로 연결될 때 더 풍부한 지식의 그물이 형성됩니다.


• 10장. 포스트모던 몸의 생명정치:


면역학 담론을 분석하며, 현대 의학에서 면역계가 '나(Self)'와 '타자(Non-self)'를 구별하고 방어하는 군사적 시스템으로 묘사되는 것을 비판합니다. 해러웨이는 면역계가 단순히 외부의 적을 막는 벽이 아니라, 내부와 외부가 끊임없이 소통하고 타협하며 경계가 허물어지는 네트워크 시스템임을 밝힙니다. 이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주체가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반투과적 존재임을 시사합니다.

 

 

 

(용어)


• 사이보그(Cyborg): 사이버네틱 유기체(Cybernetic Organism)의 약자. 기계와 유기체의 결합체를 의미한다. 해러웨이에게 이는 인간/동물, 기계/유기체, 남성/여성의 이분법적 경계를 허무는 정치적이고 존재론적인 메타포다.
•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s): 모든 지식은 특정한 위치(신체, 역사, 문화)에서 생산된다는 해러웨이의 개념.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신의 시점'을 거부하고,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책임지는 부분적 시각이 참된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본다.
• 선형적 사고(Linear Thinking): 시간, 인과, 논리를 순차적인 직선(A→B→C)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 예측 가능성, 통제, 효율성을 중시하며 근대 산업 문명의 기반이 되었다.1
• 비선형적 사고(Non-linear Thinking): 원인과 결과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작은 변화가 예측 불가능한 거대한 결과를 낳는(나비 효과) 복잡계적 사고방식. 네트워크, 연결, 흐름, 창발성을 중시한다.
• 호모 넥서스(Homo Nexus): '연결된 인간'을 뜻하는 신조어.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 비선형적 사고를 바탕으로 관계와 의미의 그물을 스스로 직조하는 새로운 인간형. '거미인간'으로 비유된다.
• 공진화(Co-evolution): 서로 다른 두 종이나 시스템이 상호작용하며 서로의 진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 경쟁이 아닌 상호 의존적 발전을 설명할 때 쓰인다.
• 고맥락 문화(High-context Culture): 말이나 글의 직접적인 표현보다 상황, 분위기, 관계 등 비언어적 맥락에 의존하여 소통하는 문화(예: 한국, 일본). 호모 넥서스의 '감지' 능력과 연결된다.
•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 언어가 인간의 사고방식과 세상을 인식하는 틀을 결정한다는 언어학적 가설. 선형적 언어 구조가 선형적 사고를 만들었음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구조적 해석


해러웨이의 텍스트와의 '호모 넥서스(거미인간)' 담론은 약 40년의 시차를 두고 있지만, 선형적 사고의 한계를 지적하고 관계 중심의 새로운 존재론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강력하게 연결됩니다.


인식론적 해석: 선형성에서 그물망(Web)으로


해러웨이가 비판한 근대 과학의 인식론은 철저히 '선형적(Linear)'이었습니다.  선형적 사고는 시간, 인과, 논리를 순차적으로 배열하여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A가 원인이 되어 B라는 결과가 나온다"는 인과율과,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직선적 시간관에 기초합니다.
• 선형성의 기원과 한계: 호모넥서스는 선형적 사고가 언어(주어-동사-목적어의 순차적 배열)와 도구(순차적 공정), 그리고 문자(연대기적 기록)를 통해 강화되었음을 지적합니다. 해러웨이 역시 영장류학이 동물의 행동을 '투자 대비 이익'이라는 선형적 경제 논리로 환원시켰음을 비판합니다.
• 상황적 지식과 맥락적 사고: 해러웨이의 대안인 '상황적 지식'은 호모넥서스의 '맥락(Context) 읽기'와 일맥상통합니다. 호모 넥서스는 정보를 선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놓인 맥락과 배경을 '감지'합니다. 해러웨이가 "모든 지식은 특정한 위치에서 생산된다"고 했듯이, 호모 넥서스는 고맥락 문화(High-context culture)의 특성을 살려 비언어적 신호와 관계의 흐름을 읽어냅니다. 이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유동적인 지식을 지향합니다.


존재론적 해석: 사이보그와 호모 넥서스


해러웨이의 '사이보그'와 '호모 넥서스'는 모두 고정된 본질을 거부하는 존재입니다.


• 잡종성과 다중 정체성: 사이보그는 기계와 유기체, 자연과 문화의 잡종입니다. 이는 순수한 본질(예: '여성성', '인간성')을 거부합니다.  호모 넥서스 역시 '다중 정체성(Multiple Identities)'을 가집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다양한 페르소나를 연기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자아를 재구성하는 호모 넥서스는 해러웨이가 말한 "통일된 정체성보다는 친화성(affinity)을 통한 연대"를 실천하는 주체입니다.
• 경계의 해체: 해러웨이가 8장 '사이보그 선언문'에서 인간/동물, 기계/유기체의 경계 붕괴를 선언했다면 호모넥서스는 디지털 네트워크가 시간, 공간, 인과율, 위계의 경계를 무력화시켰음을 보여줍니다. 호모 넥서스는 이 무너진 경계 위에서 거미줄을 짜듯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존재입니다.


심리학적 해석: 불안의 근원과 치유


호모넥서스는 선형적 문명이 인간 내면에 심어놓은 '불안'을 심도 있게 분석합니다. 이를 해러웨이의 관점과 결합하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합니다.


• 억압된 것의 귀환:  프로이트는 문명이 본능을 억압함으로써 유지된다고 보았습니다. 해러웨이의 관점에서 보면, 근대 이성 중심주의는 '자연', '여성', '동물'적인 것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억압했습니다. 호모 넥서스의 시대에 이 억압된 비선형성(감정, 직관, 혼돈)이 디지털 네트워크를 타고 귀환하면서 집단적인 불안과 혼란이 발생합니다.
• 융의 전체성과 통합: 칼 융은 그림자(Shadow)를 통합하여 전체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호모 넥서스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모순적이고 다층적인 자아들(사이보그적 잡종성)을 긍정하고 통합함으로써 심리적 유연성을 획득합니다.
• 아들러와 목적론적 재구성:  아들러 심리학을 인용하면 인간이 과거의 원인(선형적 인과)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의 목적을 위해 현재를 재구성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해러웨이가 과거의 기원 신화(에덴동산)를 거부하고, 미래를 위한 정치적 허구로서 사이보그를 제안한 것과 궤를 같이합니다.


사회학적 해석: 권력의 재편


• 위계에서 네트워크로: 해러웨이는 영장류학이 수컷 우두머리 중심의 위계 질서를 자연화했다고 비판했습니다(1장, 5장). 이는 호모넥서스에서 설명하는 "중앙집중적 권력 구조"의 전형입니다. 호모 넥서스 사회는 이러한 위계를 타파하고 '탈중앙화된 네트워크'로 권력을 재편합니다. 블록체인, DAO(탈중앙화 자율조직), 티엘 조직(Teal Organization) 등은 권력이 고정된 위치가 아니라 연결과 흐름 속에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거미인간(호모 넥서스)


호모 넥서스(Homo Nexus), 즉 '거미인간'은 선형적 사고의 한계에 직면한 인류가 디지털 네트워크와 복잡계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한 새로운 인간형입니다. 도나 해러웨이가 기계와 유기체의 결합인 '사이보그'를 통해 경계의 해체를 선언했다면, 호모 넥서스는 그 해체된 경계 위에서 스스로 '의미의 그물'을 짜는 능동적 주체입니다.


호모 넥서스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닙니다:
1. 판단보다 감지(Sensing): 논리적 분석 이전에 상황의 미묘한 진동과 맥락을 직관적으로 읽어낸다.
2. 설명보다 연결(Connecting): 파편화된 정보를 인과율로 설명하려 하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와 아이디어를 연결하여 새로운 패턴을 창출한다.
3. 통제보다 흐름(Flow): 완벽한 계획으로 미래를 통제하려 하지 않고, 변화하는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구조를 만든다.
4. 소유보다 접속과 공진화: 자원을 독점하기보다 공유하며, 경쟁 대신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진화(Co-evolution)한다.
결국 호모 넥서스는 해러웨이의 사이보그가 21세기의 초연결 사회에서 구체적인 생활 양식과 윤리를 갖춘 형태로, 고정된 본질에 갇히지 않고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재직조(Reweaving)하는 존재입니다.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비평


디지털 격차와 구조적 불평등의 은폐


• 비판: 호모 넥서스와 사이보그는 고도로 발달된 기술 인프라와 네트워크 접근성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연결'과 '접속'은 전 지구적으로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는 여전히 존재하며, 연결되지 못한 자들은 호모 넥서스의 진화에서 배제될 위험이 큽니다.
• 근거: 해러웨이 또한 1980년대 텍스트(8장)에서 '여성들의 통합 회로' 속에서 착취당하는 제3세계 여성 노동자들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사이보그나 호모 넥서스가 낙관적인 해방의 메타포로만 소비될 때, 플랫폼 노동자나 알고리즘에 종속된 하위 계층의 현실적인 고통은 '유연성'이나 '비선형적 노동'이라는 미명 하에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탈중앙화'가 기술적 엘리트나 초기 선점자에게 또 다른 형태의 권력을 집중시킬 가능성(알고리즘 권력) 또한 경계해야 합니다.


상대주의의 함정과 진실의 위기


• 비판: 선형적 진리와 객관성을 거부하고 '상황적 지식'과 '맥락'을 강조하는 태도는, 자칫 극단적인 상대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  "진실이 갈가리 찢긴"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에, '모든 것은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는 주장은 가짜 뉴스나 혐오 발언까지도 하나의 '맥락적 진실'로 옹호하는 데 악용될 수 있습니다.
• 근거: 해러웨이는 이러한 상대주의를 경계하며 "책임질 수 있는 지식"을 강조했지만, 호모 넥서스가 짜는 '의미의 그물'이 보편적인 인권이나 정의와 충돌할 때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적 토대는 여전히 모호할 수 있습니다.  '진정성'과 '공존'을 윤리로 제시하지만, 이는 개인의 도덕적 각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제도적 해결책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 환원주의의 위험성


• 비판: 인간의 사회적 활동을 거미, 개미, 숲과 같은 자연의 메타포로 설명하는 것은 강력하지만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자연에는 공생(Symbiosis)뿐만 아니라 잔혹한 포식과 기생, 도태도 존재합니다.
• 근거:  자연의 '공진화'와 '생태계'를 이상적인 사회 모델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현상을 생물학적 본능이나 자연의 섭리로만 설명하려 할 때, 인간 사회 특유의 정치적 역동성과 윤리적 선택의 중요성이 간과될 수 있는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해러웨이가 영장류학을 비판했던 이유도 바로 인간 사회를 동물 행동학으로 환원시키려 했던 시도 때문이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함께 읽어야 할 책


. 트러블과 함께하기 도나 J. 해러웨이 - 『영장류...』 이후 해러웨이의 최신 사상. 사이보그를 넘어 '반려종'과 '퇴비' 개념을 통해 기후 위기 시대의 공존(공산) 윤리를 심화합니다. 호모 넥서스의 '생태적 사고'를 확장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 / 최유미 - 난해하기로 유명한 해러웨이의 사상을 한국 연구자가 명쾌하게 해설한 입문서. 해러웨이의 핵심 개념들을 한국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 물질의 재구성 / 김환석 - 한국 과학사회학의 권위자가 쓴 책으로, 해러웨이를 포함한 신유물론과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을 다룹니다. 비선형적 연결과 비인간 행위자의 역할을 학술적으로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 맥락의 힘 / 김창남 -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를 분석하며, 호모 넥서스의 핵심 능력인 '감지'와 '맥락 읽기'를 훈련할 수 있는 구체적 가이드를 제공합니다.

. 작은 것이 아름답다 E. F. 슈마허 - 거대 기술과 성장 중심 경제 대신 인간 중심의 기술과 생태적 경제를 주창합니다. 호모 넥서스의 '순환 경제' 관점을 뒷받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