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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해석과 이해(구조와 에세이)/책 해석과 이해(경제,전략)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대니 로드릭' 새로운 경제성장과 세계화의 길

by 유미 와 비안 2025. 10. 26.

하버드대 석학 '대니 로드릭'의 명저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One Economics, Many Recipes: Globalization, Institutions, and Economic/Rodrik, Dani

'성장 진단 프레임워크'부터 '세계화의 정치적 삼자택일'까지,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모색하는 로드릭의 통찰

 

총평: 21세기 자본주의를 위한 새로운 나침반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길을 잃은 21세기 자본주의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은 책이다. 대니 로드릭은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경제학의 오만함을 버리고, 각 국가가 처한 고유한 맥락 속에서 스스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겸손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성장 진단' 프레임워크는 복잡한 현실 앞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정책 결정자들에게 실용적인 도구를 제공하며, '산업정책'에 대한 재해석은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준다. 특히 '세계화의 정치적 삼자택일'이라는 통찰은 세계화, 국가, 민주주의 사이의 근본적인 긴장을 명쾌하게 드러내며, 우리가 왜 지금과 같은 정치·경제적 갈등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물론 그의 주장이 모든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답은 아니다. 산업정책의 현실적 위험이나 민주주의와 성장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드릭의 가장 큰 공헌은 경제 문제를 기술적 해법의 영역에서 정치적·제도적 맥락의 영역으로 되돌려 놓았다는 점에 있다. 그는 경제성장이란 결국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민주적 질문과 분리될 수 없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맹목적인 세계화 옹호론과 감정적인 반세계화론의 이분법을 넘어, 더 스마트하고, 더 공정하며, 더 민주적인 세계화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지적인 로드맵을 제시한다.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 대니 로드릭 - 더 스마트한 세계화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경제학의 새로운 역할 - 청사진이 아닌 진단


대니 로드릭은 경제학자의 역할에 대한 겸손하고 실용적인 재정의를 요구하며 책의 서두를 연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이 개발도상국에 일률적으로 강요해 온 정책 패키지, 즉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는 "하나의 정답이 모든 곳에 통한다"는 식의 접근법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로드릭에 따르면, 경제학자는 보편적 진리를 설파하는 예언가가 아니라, 각 국가가 처한 고유한 상황과 문제를 진단하는 '진단의(diagnostician)'가 되어야 한다. 이는 경제 원칙을 적용함에 있어 실용주의, 실험정신,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의 특수성을 존중하는 '현지 지식(local knowledge)'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철학이다.

 

 

1부. 경제성장, 왜 어떤 나라는 성공하고 어떤 나라는 실패하는가?


(1장) 정통적 방법의 실패와 성공의 이단성


1부의 시작에서 로드릭은 시장 자유화만이 성장의 유일한 길이라는 통념을 해체한다. 그는 중국, 대한민국, 대만 등 경제 기적을 이룬 국가들이 실제로는 정통 경제학의 교과서를 충실히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들 국가는 시장 인센티브를 활용하면서도 산업정책, 자본 통제, 수출 보조금 등 비정통적(heterodox) 정책을 적극적으로 혼합하여 사용했다.

 

성공한 국가들은 거시경제 안정, 재산권 보호, 시장 지향 경제와 같은 상위 원칙(higher-order principles)을 공유하지만, 이러한 원칙들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는 국가별로 매우 다양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획일적인 정책 처방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며, 각국의 역사적·정치적 맥락에 맞는 맞춤형 해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대목이다.


(2장) 성장의 병목 찾기: '성장 진단(Growth Diagnostics)' 프레임워크


로드릭은 이 장에서 자신의 가장 독창적인 방법론적 기여인 '성장 진단' 프레임워크를 소개한다. 수십 가지 개혁 과제를 나열하는 대신, 정책 입안자들은 특정 시점에서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결정적인 단 하나의 장애물, 즉 '구속적 제약조건(binding constraint)'을 찾아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프레임워크는 의사 결정 나무(decision tree) 구조로 설계되었다. 진단은 "민간 투자가 부진한 이유가 낮은 기대수익 때문인가, 아니면 높은 자금 조달 비용 때문인가?"와 같은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후 가지를 뻗어 나가며 근본 원인이 열악한 인프라, 정부 실패(부패, 높은 세금), 시장 실패(정보 외부효과), 혹은 금융 시스템의 문제인지를 체계적으로 진단한다.


볼리비아 사례는 이 방법론의 실제 적용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수많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정체된 볼리비아의 구속적 제약조건은 교육이나 인프라 부족이 아니었다. 진단 결과, 진짜 문제는 정치적·거시경제적 불안정성에서 비롯된 "미래 기대수익에 대한 완고한 불확실성"이었다. 이는 가장 눈에 띄는 문제가 항상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닐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3장) 실용적인 성장 전략


진단 프레임워크를 바탕으로, 로드릭은 3단계의 실용적 성장 전략을 제시한다. 

첫째, 문제 진단을 통해 구속적 제약조건을 식별한다. 

둘째, 정책 설계 단계에서는 해당 국가의 맥락에 맞는 맞춤형 해결책을 고안한다. 

마지막으로, 개혁의 제도화를 통해 정책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 가능성을 갖도록 만든다.

이는 이론이 아닌 현실에 발 딛고 선 점진적이고 실험적인 개혁 과정을 강조하는 것이다.


2부. 경제성장을 위한 제도, 정답은 없지만 원칙은 있다


(4장) 21세기의 산업정책


로드릭은 주류 경제학계에서 오랫동안 비판받아 온 '산업정책'의 개념을 복원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그는 산업정책을 정부가 '승자를 선택하는(picking winners)' 행위가 아니라, 민간 부문이 스스로의 잠재적 비교 우위를 찾아가는 '자기 발견(self-discovery)'의 과정으로 재정의한다.


개발도상국에서 새로운 산업에 처음으로 뛰어드는 기업가는 성공 시 그 이익을 독점하기 어렵다. 다른 기업들이 즉시 모방하기 때문이다(정보 외부효과). 반면 실패의 위험은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비대칭성 때문에 민간 부문은 잠재력 있는 신산업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보조금이나 금융 지원 등을 통해 이러한 초기 탐색과 실험을 장려하고, 그 과정에서 국가의 숨겨진 경쟁력을 발견하도록 돕는 전략적 협력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민간의 이해관계에 포획되지 않으면서도 긴밀히 협력하는 '내재된 자율성(embedded autonomy)'이 필수적이다.


(5장-6장) 양질의 제도와 참여 민주주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양질의 제도가 필수적이지만, 로드릭은 '최고의' 제도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서로 다른 형태의 제도가 동일한 경제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역설하며, 선진국의 제도를 맹목적으로 이식하는 '청사진 접근법'을 경계한다.


여기서 로드릭은 매우 중요한 주장을 펼친다. 장기적으로 좋은 경제 제도를 만들어내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메타 제도(meta-institution)'는 바로 참여적 정치체제, 즉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민주적 절차는 정책 실패 시 경로를 수정할 기회를 제공하고, 외부 충격에 대한 사회적 안정성을 높이며, 성장의 과실을 보다 공평하게 분배하는 경향이 있다. 이 모든 요소가 양질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다.


3부. 세계화, 그 모순을 벗겨라


(7장) 세계화의 정치적 삼자택일(Trilemma)


책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이 장에서 로드릭은 그의 가장 유명한 이론인 '정치적 삼자택일'을 제시한다.

그는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 국가주권(national sovereignty), 그리고 민주주의(democratic politics)라는 세 가지 목표는 서로 양립할 수 없으며, 우리는 이 중 두 가지만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 경제의 정치적 삼자택일

선택 (Chosen Pair) 포기 (Sacrificed Element) 결과 (Resulting Model) 설명 (Description)
국가주권 + 민주주의 초세계화 브레턴우즈 체제 (Bretton Woods Compromise) 2차 대전 이후 모델. 국가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자국의 경제 정책(복지, 규제 등)을 결정할 자율성을 가짐. 이를 위해 자본 이동 등 국제 경제 통합은 제한됨.
국가주권 + 초세계화 민주주의 황금 구속복 (Golden Straitjacket) 19세기 금본위제 또는 신자유주의 모델. 국가는 세계 시장의 요구(낮은 세금, 규제 완화)에 정책을 맞춰야 하므로, 민주적 절차를 통해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할 정책 공간이 축소됨.
초세계화 + 민주주의 국가주권 글로벌 거버넌스 (Global Governance / Federalism) 이상적 미래 모델. EU와 같은 초국가적 정치 기구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세계 경제 규칙을 제정. 개별 국가의 주권은 상당 부분 이양됨.




이 틀을 통해 로드릭은 현재 세계가 직면한 딜레마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초세계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각국의 민주주의와 주권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이다.


(8장-9장) 누구를 위한 세계화인가?


로드릭은 현재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초세계화가 다국적 기업과 국제 금융자본의 이해를 개발도상국의 발전 필요성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무역장벽 철폐만이 능사가 아니며, 때로는 자국의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경제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는 '정책적 자율성(policy space)'을 허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오늘날의 부유한 국가들이 과거 자신들의 발전 과정에서 사용했던 바로 그 전략이기도 하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세계화의 전면적 거부가 아닌, 보다 가볍고 유연한 국제 규범의 틀 안에서 각국이 자율성을 갖는 '더 스마트한 세계화'이다.

 

 

[용어 주석]

 

.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 1980년대 말, 워싱턴 D.C.에 위치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미국 재무부가 남미 등 개발도상국의 경제 위기 해결을 위해 제시했던 정책 합의. 시장 개방, 민영화, 규제 완화, 긴축 재정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 패키지를 핵심으로 한다.
. 구속적 제약조건(Binding Constraint): 특정 시점에서 한 국가의 경제 성장을 가장 강력하게 억제하는 핵심적인 병목 요인. 성장 진단 프레임워크는 이 요인을 찾아내는 데 집중한다. 이 제약이 풀려야 다른 개혁 정책들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정부가 특정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거나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보조금, 금융 지원, 무역 보호 등 시장에 개입하는 모든 정책을 의미한다. '정부가 승자를 고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 자기 발견(Self-Discovery): 산업정책의 목표를 정부가 유망 산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부문이 어떤 산업에 잠재적 경쟁력이 있는지 스스로 '발견'하도록 돕는 과정으로 재정의한 개념. 초기 투자 위험과 정보 외부효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민간 협력을 강조한다.
. 정치적 삼자택일(Political Trilemma): 초세계화(완전한 경제 통합), 국가주권(독자적 정책 결정권), 민주주의(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정치)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완전히 달성할 수는 없으며, 이 중 두 가지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대니 로드릭의 핵심 이론.
.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 1995년 출범한 국제기구로, 국가 간 무역 규범을 정하고 무역 분쟁을 해결하며 자유무역 질서 확대를 목표로 한다.
.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4년 수립된 국제 통화 체제. 미국 달러를 금에 고정시키고 다른 국가들의 통화는 달러에 고정하는 고정환율제와 국가 간 자본 이동 통제를 특징으로 한다. 로드릭은 이 시기에 각국이 국내 정책 자율성을 상당 부분 누렸다고 평가한다.
. 황금 구속복(Golden Straitjacket):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만든 용어. 한 국가가 세계화에 편입되어 경제적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국의 정책(낮은 법인세, 규제 완화, 민영화 등)을 국제 자본의 요구에 맞춰야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을 비유한다. 이는 국내 민주주의적 요구를 억제하는 '구속복'으로 작용한다.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구조적 해석


정치경제학적 해석: 국가와 시장의 관계 재정립


로드릭의 저서는 국가를 시장의 장애물로 간주하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그는 경제적 결과를 형성하는 데 있어 개별 국가의 정치와 제도의 중요성을 다시 전면에 내세운다. 그가 브레턴우즈 시대를 연상시키는 '얕은(shallow)' 세계화를 선호하는 이유는, 시장이 안정되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가적 규제와 사회적 틀 안에 '내재(embedded)'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국가의 민주주의가 국제 금융의 요구에 종속되는 현재의 추세를 역전시켜야 한다는 강력한 정치경제학적 선언이다.


사회학적 해석: 제도의 ‘내재성(Embeddedness)’


로드릭이 '현지 지식'과 맥락 의존적 제도를 강조하는 것은 경제 활동이 사회적 관계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회학의 '내재성' 개념과 깊이 연관된다. 그는 성공적인 제도가 단순히 선진국 모델을 이식하는 '청사진 접근법'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제도는 한 국가의 기존 사회 규범, 정치 문화, 역사적 맥락과 조화를 이룰 때에만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기업 간의 협력적 '발견 과정'으로서 산업정책을 옹호하는 그의 주장은, 지역의 사회적·정보적 네트워크에 깊이 뿌리내린 정책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심리학적 해석: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낳은 불안(Anxiety)


로드릭의 분석은 거시 경제를 넘어 개인의 심리적 차원까지 확장하여 해석될 수 있다. 그가 비판하는 '황금 구속복' 시나리오는 단순히 정치경제적 배치에 그치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심리적 고통을 야기하는 구조다. 신자유주의의 심리적 영향에 대한 연구들은 무한 경쟁의 심화, 사회 안전망의 약화, 그리고 시장 논리가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면서 발생하는 만성적인 불안감, 불안정성, 그리고 무력감을 지적한다.


'황금 구속복' 하에서 국가는 자국민의 복지나 고용 안정보다 국제 자본 유치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이는 노동 유연화, 복지 축소, 규제 완화로 이어지며, 개인은 각자도생의 압박에 내몰린다. 이러한 사회 구조는 "삶의 고통스러운 배경 소음처럼 끊임없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로드릭이 국가의 '정책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초세계화가 가하는 끊임없는 불안 유발 압력에 맞서는 '심리적 완충재'를 마련하자는 제안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각국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자본의 요구보다 사회 통합, 안전망 구축, 국내 규제를 우선시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그의 프레임워크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낳은 집단적 불안을 완화하는 처방전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거미인간(Homo Nexus)


선형적 사고(워싱턴 컨센서스) vs. 비선형적 대안(성장 진단)
'워싱턴 컨센서스'는 이러한 선형적 사고의 전형이다. "개방하고, 민영화하면, 성장할 것이다"라는 단선적이고 보편적인 인과 경로를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청사진'이기 때문이다.


반면, 로드릭의 '성장 진단'은 비선형적 사고의 도구다. 이는 정해진 개혁의 순서를 거부하고, 대신 복잡한 경제 시스템 내에서 특정 병목 현상(구속적 제약조건)을 '감지(sensing)'하는 과정을 제안한다. 그의 의사 결정 나무는 고정된 계획이 아니라, 경제의 '흐름을 읽고' 문제를 진단하는 도구다. 이는 계획을 따르기보다 흐름을 읽는 '거미인간'의 특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상황 의존적 접근법과 맥락 감지 능력
로드릭의 핵심 메시지인 "하나의 경제학, 다양한 처방(One Economics, Many Recipes)"은 경제 원칙(하나의 경제학)이 맥락(다양한 처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거미인간'의 핵심 역량인 '맥락 감각(contextual sense)'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정통 경제학이 보편 법칙을 추구하는 저맥락(low-context)적 경향을 보인다면, 로드릭은 정책의 효과가 제도의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하며 고맥락(high-context)적 접근을 강조한다.


삼자택일 딜레마: 복잡계(Complex System) 모델
'정치적 삼자택일'은 비선형적 시스템 모델의 완벽한 예시다. 이 모델은 "세계화는 좋은가, 나쁜가?"와 같은 단순한 인과관계를 넘어, 세계 경제, 국가, 민주주의라는 세 가지 거대 시스템 간의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드러낸다. 네트워크의 두 지점(node) 간의 연결을 강화하면 필연적으로 세 번째 지점과의 연결이 약화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개별 객체가 아닌 관계의 망(web)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관계 중심 사고'이며, '거미인간'의 핵심적 사유 방식이다.


이러한 분석을 종합하면, 대니 로드릭은 경제학 분야의 지적인 '거미인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가 비판하는 주류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보편적 처방을 내리는 선형적 '호모 사피엔스'의 사유 방식에 머물러 있다면, 로드릭은 성장 진단(제약 감지), 제도적 다양성(맥락 존중), 삼자택일(관계망 분석)과 같은 도구를 통해 경제 문제에 접근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방식을 제안한다. 그는 다른 정책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경제학이 선형적 처방에서 비선형적 진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비판적 검토


산업정책의 현실적 위험: 정부 실패와 정치적 포획(Political Capture)


로드릭의 '자기 발견' 모델은 이론적으로는 우아하지만, 정부 개입의 현실적 위험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 비판가들은 산업정책이 실제로는 정치적 포획에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즉, 정치적으로 강력한 기업들이 공공의 이익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조종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튀니지의 '벤 알리 기업' 사례나 미국의 초음속 여객기 개발, 솔린드라 파산 사례 등은 정부가 '승자'를 예측할 정보가 부족하며, 경제 논리보다 정치적 고려가 우선되는 경우가 많음을 보여준다. 로드릭이 이상적으로 제시하는 '내재된 자율성'은 현실에서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과제다.


성장 진단 프레임워크의 실효성


복잡한 현대 경제에서 성장을 가로막는 단일한 구속적 제약조건을 식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대부분의 경제는 여러 요인이 상호작용하며 복합적인 제약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진단 과정 자체가 분석가의 편견이나 정보의 한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장 진단은 강력한 사고의 틀을 제공하지만, 현실 적용이 이론처럼 깔끔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세계화의 역설에 대한 반론


로드릭은 불평등 심화나 정책 공간 축소와 같은 초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세계화가 가져온 막대한 긍정적 효과를 간과할 위험이 있다. 세계화는 (특히 중국과 인도에서) 수억 명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자유 무역을 통한 수입품 가격 하락은 선진국 저소득층의 실질 구매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세계화의 역사는 단순히 부정적인 결과만으로 요약될 수 없는 복잡한 양면성을 지닌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관계에 대한 논쟁


로드릭은 참여 민주주의가 양질의 성장을 위한 '메타 제도'라고 강하게 주장하지만 , 이 둘의 관계에 대한 경험적 증거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연구에 따라 민주주의와 성장의 관계는 긍정적이라는 결과 , 뚜렷한 관계가 없다는 결과 , 심지어 특정 시기에는 부정적이라는 결과까지 혼재한다. 특히 중국, 싱가포르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의 눈부신 경제 성과는 민주주의가 성장의 전제 조건이라는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례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 비판은 로드릭의 주장을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의 주장은 단순히 "민주주의가 성장률을 높인다"는 단선적인 인과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민주주의 제도가 장기적으로 충격을 관리하고,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며, 성장의 과실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데 더 뛰어나기 때문에, 성장의 질과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고 주장하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로드릭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성장률 수치를 비교하는 것을 넘어, 그가 말하는 '성장의 질'이라는 더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 로드릭과 마찬가지로,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부자 나라들이 개발도상국에 강요하는 "사다리 걷어차기"를 비판한다. 역사적 사례를 통해 오늘날 선진국들이 과거 자신들이 사용했던 보호무역과 산업정책을 개도국에게는 금지하는 위선을 고발한다. 로드릭의 제도적 분석을 보완하는 풍부한 역사적 서사를 제공한다.

• 조지프 스티글리츠, 『세계화와 그 불만』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한 스티글리츠는 IMF와 같은 국제기구가 어떻게 워싱턴 컨센서스를 강요하며, 특히 동아시아 금융위기와 러시아의 체제 전환 과정에서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는지 내부자의 시선으로 고발한다.48 로드릭의 국제 거버넌스 비판에 대한 강력한 실증적 사례를 제공한다.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 로드릭이 세계화와 국가 제도의 '관계'에 집중한다면, 피케티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동학, 즉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앞서는 경향($r>g$)이 어떻게 부의 불평등을 필연적으로 심화시키는지를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로 증명한다. 로드릭이 제기하는 세계화의 분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자본주의 동학을 설명해주어, 두 책을 함께 읽으면 불평등 문제에 대한 거시적이고 다층적인 이해가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