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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해석과 이해(구조와 에세이)/책 해석과 이해(경제,전략)

[그래도 경제학이다] '대니 로드릭' 경제학의 규칙, 그리고 그 너머

by 유미 와 비안 2025. 10. 26.

'대니 로드릭'의 『그래도 경제학이다

경제학 모델의 본질, 강점과 약점을 파헤친다. 경제학 방법론에 대한 심층 요약

 

 

총평


대니 로드릭의 『그래도 경제학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뢰를 잃은 경제학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내놓은 가장 지적이고 정직한 답변 중 하나이다. 이 책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 정책을 다루는 실무자, 그리고 경제학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모델'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겸손하고 현명하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경제학을 '하나의 정답'이 아닌 '다양한 렌즈의 모음'으로 바라보게 하는 그의 관점은, 이념적 독단에 빠지기 쉬운 경제학계에 반드시 필요한 해독제이다.


그러나 로드릭의 비판은 아쉽게도 '실천'의 영역에 머물며,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구조'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그는 경제학의 실패를 개별 경제학자들의 '태도'와 '기예 부족'의 문제로 돌리지만, 왜 특정 모델(주로 시장친화적인 모델)만이 체계적으로 주류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지에 대한 권력 구조적 분석은 회피한다. 그의 처방은 결국 경제학자들의 개인적인 겸손과 성찰을 촉구하는 데 그치며, 경제학 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학문 공동체 자체의 개혁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경제학이다』는 경제학이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내지른 절실하고 용기 있는 외침이다. 하지만 경제학의 진정한 구원은 경제학자들의 겸손한 '기예' 연마를 넘어, 경제학이 오랫동안 외면해온 역사, 정치, 심리와 같은 다른 학문과의 진정한 대화와 융합을 통해, 그리고 '모델 도서관' 자체의 편향성을 성찰하는 더 깊은 자기반성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그 위대하고 험난한 여정의 중요한 첫걸음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경제학이다 / 대니 로드릭 - 경제학 모델의 본질

 

 『그래도 경제학이다

 

서론: 경제학이라는 '우울한 과학'의 자기 변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은 예측 실패라는 원죄로 인해 학문적 권위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경제학자들은 위기를 예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과 안전성에 대한 맹신을 전파하며 위기를 키웠다는 혹독한 비판에 직면했다. 하버드 대학교의 대니 로드릭 교수가 집필한 『그래도 경제학이다』는 바로 이러한 비판의 한복판에서 경제학 내부자가 제시하는 치열한 자기변호이자 성찰의 기록이다.


로드릭은 경제학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거나 섣불리 폐기 처분하는 양극단의 태도를 모두 경계한다. 대신 그는 경제학의 가장 핵심적인 분석 도구인 '모델'의 본질과 올바른 사용법을 제시함으로써 학문의 진정한 가치를 재정립하고자 한다. 그의 핵심 주장은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잘못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적 도구상자와, 그 도구를 사용하는 경제학자라는 직업 집단의 행태를 분리하여 분석하려는 중요한 시도이며,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이 책의 원제인 Economics Rules"경제학이 최고다"라는 의미와 "이것이 경제학의 규칙이다"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는 경제학의 힘을 변호하는 동시에 경제학자들에게 겸손과 엄격함을 요구하는 저자의 프로젝트 전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장 모델의 역할: 경제학자는 우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1장은 경제학의 핵심 도구인 '모델'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를 바로잡는 데서 시작한다. 많은 비판가들은 경제 모델이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로드릭은 바로 그 '단순화'와 '비현실성'이 모델의 약점이 아닌 강점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모델을 지도나 이솝 우화에 비유한다. 실제 지형과 1:1로 동일한 지도가 쓸모없듯이, 모델 역시 복잡한 현실 세계에서 특정 인과 관계의 메커니즘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다른 교란 요인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해야만 그 가치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마치 실험실에서 통제된 조건 하에 특정 변수의 효과를 관찰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모델의 가치는 모든 가정이 현실적인지에 달려있지 않다. 핵심은 어떤 가정이 모델의 결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가정(critical assumption)'¹인지를 식별하고, 그 결정적 가정이 우리가 분석하려는 특정 맥락과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에 있다.


2장 경제모델 만들기의 과학: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발전하는 학문


로드릭은 경제학이 물리학과 같은 자연과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과학'의 지위를 획득한다고 주장한다. 물리학이 뉴턴의 법칙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대체하는 것처럼 더 나은 이론이 낡은 이론을 대체하는 '수직적' 발전을 추구한다면, 경제학의 지식은 새로운 모델이 기존에 설명되지 않던 새로운 측면을 밝혀내며 '수평적으로' 확장되고 축적된다.


이 관점에서 경제학은 단 하나의 보편타당한 이론 체계가 아니라,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 적용 가능한 수많은 모델들의 '도서관' 또는 '모음집'과 같다. 

예를 들어,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표되는 완전경쟁시장 모델은 시장의 효율성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지만현실의 많은 시장은 독과점이나 정보 비대칭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불완전경쟁시장 모델이 완전경쟁시장 모델을 폐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두 모델 모두 각각의 적합한 맥락 속에서 현실을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로 공존하게 된다. 이처럼 다양한 모델들을 포용하는 것이야말로 경제학의 진정한 강점이라는 것이 로드릭의 핵심 논지다.


3장 모델의 선택: 과학이 아닌 기예(Craft)의 영역


모델의 다양성이 경제학의 강점이라면, 특정 문제에 직면했을 때 수많은 모델 중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하는 능력이야말로 경제학자의 핵심 역량이 된다. 그러나 로드릭은 이 중요한 과정이 명확한 과학적 규칙보다는 경험과 직관을 통해 연마되는 '기예(craft)'의 영역에 가깝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경제학 박사과정은 학생들에게 정교한 수학적 모델들을 구축하는 방법은 가르치지만, 현실의 복잡한 맥락 속에서 어떤 모델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훈련은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로드릭은 올바른 모델 선택을 위해 몇 가지 검증 기준을 제시한다.

첫째, 모델의 '결정적 가정'이 분석하려는 현실과 부합하는가?

둘째, 모델이 상정하는 인과 메커니즘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가?

셋째, 모델이 예측하는 결과가 현실 데이터와 일치하는가?.


하지만 이 과정은 로드릭의 주장 전체에서 가장 비판에 취약한 지점이기도 하다. 모델 선택이 객관적 규칙이 아닌 주관적 '기예'에 의존한다면, 경제학자의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편향이 개입될 여지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로드릭은 이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숙련된 경제학자의 진단 능력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4장 모델과 이론: 거대 이론의 유혹


경제학의 역사는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거대 이론(grand theory)'의 유혹에 빠졌다가 실패를 맛본 사례들로 가득하다. 로드릭은 특히 거시경제학 분야에서 지배적이었던 '신고전학파'의 접근을 대표적인 예로 든다.

이들은 미시적 기초에 기반한 단 하나의 합리적 기대 모델로 모든 거시경제 현상을 설명하려 했지만, 결국 현실의 복잡성을 담아내지 못했다.
로드릭은 사회 세계의 본질적인 복잡성 때문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단 하나의 이론을 찾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단언한다. 경제학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특정 맥락에서 부분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다양한 모델들을 축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한 번에 하나의 원인을 이해하려는" 겸손한 목표를 가져야 하며, 거대 이론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5장 경제학이 틀릴 때: 하나의 모델을 유일한 모델로 착각하다


경제학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하고 치명적인 실수는 바로 '하나의 모델(a model)'을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유일한 모델(the model)'로 착각하는 것이다. 로드릭은 이 오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워싱턴 컨센서스'²와 '2008년 금융위기'를 제시한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실패는 경제학자들이 개발도상국의 다양한 역사적·제도적 맥락을 무시한 채, '효율적 시장' 모델에 기반한 시장 자유화 정책을 일률적으로 강요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그들의 '모델 도서관'에는 '시장 실패'나 '차선 이론(second-best policies)'과 같은 대안적 모델들이 존재했지만, 이데올로기적 편향으로 인해 이를 외면했다. 금융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주류 거시경제학자들은 '효율적 시장 가설'³에 대한 맹신에 빠져 금융 시장의 시스템적 위험을 간과했다. 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모델들이 이미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류 학계의 유행과 관성에 밀려 무시당했던 것이다.


6장 경제학과 그 비판가들: 진짜 야만인은 누구인가?


마지막 장에서 로드릭은 경제학 외부의 비판가들과 내부의 경제학자들 모두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많은 외부 비판들이 경제학의 본질, 즉 '모델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그는 문제의 핵심이 경제학자들 자신에게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특히 그는 경제학자 사회에 만연한 "야만인은 한쪽에만 있다(barbarians are only on one side)"는 편견을 비판한다. 이는

. 시장에 대한 규제나 개입을 주장하는 측은 지대추구나 로비에 혈안이 된 '야만인'으로 폄하하는 반면,

. 시장 자유화를 주장하는 측은 설령 그 주장이 틀렸더라도 선한 의도를 가졌다고 믿는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로드릭은 경제학의 근본적인 결함이 학문 자체의 도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도구를 사용하는 경제학자들의 심리적, 사회학적, 정치적 편향에 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해결책은 경제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자들이 모델의 다양성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각 맥락에 맞는 최적의 모델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기예'를 끊임없이 연마하는 것이다.

 

 

[용어 주석]

 

¹ 결정적 가정 (Critical Assumption): 모델의 결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가정을 말한다. 이 가정을 현실에 더 가깝게 수정했을 때 모델의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면, 그것은 결정적 가정이다. 반면, 수정을 해도 결과에 큰 차이가 없다면 비결정적 가정이다.
² 워싱턴 컨센서스 (Washington Consensus): 1980년대 말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들이 개발도상국에 권고했던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 패키지. 규제 완화, 민영화, 무역 자유화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³ 효율적 시장 가설 (Efficient Market Hypothesis): 자산 가격이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이론. 이 가설에 따르면 누구도 지속적으로 시장 평균 수익률을 초과하는 수익을 얻을 수 없다.
⁴ 호모 이코노미쿠스 (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이익(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언제나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한다고 가정하는 인간상.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다.
⁵ 인지 휴리스틱 (Cognitive Heuristic): 인간이 복잡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모든 정보를 분석하여 최적의 답을 찾기보다, 경험에 기반한 직관이나 어림짐작(주먹구구식 방법)을 통해 신속하게 판단을 내리는 경향을 말한다.
⁶ 인지 편향 (Cognitive Bias): 인지 휴리스틱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체계적인 판단의 오류. 인간이 비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패턴을 의미한다.
⁷ 전망 이론 (Prospect Theory):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제시한 이론으로, 사람들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객관적인 확률보다 주관적인 가치(이득과 손실)에 따라 판단하며, 특히 손실을 이득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게 느낀다고 본다.
⁸ 손실 회피 (Loss Aversion): 이득을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같은 크기의 손실을 입었을 때 느끼는 고통을 훨씬 더 크게 느끼는 심리적 경향.

 

 

 『그래도 경제학이다』학문별 구조적 해석


로드릭의 분석은 경제학 방법론에 대한 정교한 내부 성찰을 보여주지만, 심리학, 특히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논의는 모델들 '사이의 선택' 문제에 집중할 뿐, 모델들 '내부의 근본 가정'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주류 신고전학파 경제학 모델의 거의 대부분은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⁴라는 가정 위에 세워져 있다.

이는 인간이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계산하고 행동하는 존재라는 가정이다. 그러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아모스 트버스키가 개척하고 리처드 탈러 등이 발전시킨 행동경제학은 수많은 실험을 통해 인간이 합리적이기보다는 체계적으로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존재임을 입증했다. 인간의 뇌는 복잡한 문제 앞에서 모든 정보를 분석하기보다 '인지 휴리스틱(어림짐작)'⁵이라는 정신적 지름길을 사용하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인지 편향'⁶에 빠지기 쉽다.


로드릭은 행동경제학을 그저 자신의 '모델 도서관'에 추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유용한 모델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행동경제학이 경제학에 던진 혁명적 함의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단순히 새로운 모델 하나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주류 경제학 모델 라이브러리의 대다수를 떠받치고 있는 '합리성'이라는 근본 가정 자체에 대한 메타 비판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카너먼의 '전망 이론'⁷은 인간이 이득을 얻는 기쁨보다 동일한 크기의 손실에서 오는 고통을 훨씬 더 크게 느끼는 '손실 회피'⁸ 성향을 보인다는 것을 밝혔다. 이는 합리적 선택 모델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체계적인 비합리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발견은 '효율적 시장 가설'과 같은 주류 모델의 기반 자체를 흔든다. 시장 참여자들이 합리적이지 않다면, 시장 가격이 어떻게 모든 정보를 효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로드릭이 강조하는 '올바른 맥락에 올바른 모델을 선택하는 기예'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맥락'이란 단순히 국가나 시대를 의미하는 것을 넘어, 의사결정의 주체인 '인간의 심리적 현실'까지 포함해야 한다. 완벽한 합리성을 가정하는 모델은, 합리적인 '이콘(Econ)'이 아닌 비합리적인 '인간(Human)'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모델일 수 있다. 이는 로드릭의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들이 단지 특정 상황에 부적합한 것을 넘어, 그 내용 자체가 인간 현실과 맞지 않게 근본적으로 잘못 쓰여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래도 경제학이다거미인간(호모 넥서스)



'거미인간'의 시선에서 볼 때, 경제 모델은 '선형적 사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경제 모델은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 세계(비선형 시스템)를 '원인-결과'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인과관계(선형 구조)로 환원하여 분석하고 예측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로드릭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하나의 모델을 유일한 모델로 착각하는 오류'는, 단 하나의 직선으로 세상 만물을 설명하려는 극단적 선형성의 오만함을 지적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드릭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다양한 모델의 도서관'은 중요한 진일보이다. 이는 단일한 선형성에서 벗어나, 여러 개의 각기 다른 선형적 설명을 구비해두고 상황에 맞게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자는 '다중 선형성(multi-linearity)'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중요한 시도이다.


그러나 '거미인간'의 진정한 비선형적 사고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 로드릭의 경제학자는 여러 지도(도로 지도, 지하철 노선도, 도보 지도) 중 현재 여정에 가장 적합한 지도 하나를 '선택'하는 여행자와 같다. 

. 거미인간'은 이 모든 지도를 증강현실 앱을 통해 현실 세계에 중첩시켜, 각각의 경로가 실시간으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동시에 파악하는 여행자와 같다. 

즉, '거미인간'은 여러 모델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 현상을 수많은 인과관계의 실들이 복잡하게 얽힌 '거미줄(web)'로 인식한다. 그리고 여러 모델(다양한 인과관계의 실)이 동시에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전체 시스템의 '진동'과 '흐름'을 만들어내는지를 '감지(sensing)'하려 노력한다.


로드릭이 강조하는 '모델 선택의 기예' 바로 이러한 '감지' 능력의 초기적이고 미숙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경제학자가 특정 맥락을 '감지'하여 올바른 모델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거미인간'은 궁극적으로 개별 모델의 '선택'을 넘어, 복수의 모델들을 중첩하고 연결하여 복잡계 시스템 자체의 동학을 이해하려는 통합적 사유로 나아가야 한다. 로드릭의 책은 선형적 사고의 한계를 인정하고 비선형적 세계로 나아가는 중요한 과도기적 지혜를 담고 있지만, 진정한 '거미인간'의 시선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셈이다.

 

 

 

 『그래도 경제학이다』비평


대니 로드릭의 『그래도 경제학이다』는 주류 경제학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과 성찰을 담은 역작이지만, 그의 논리에는 몇 가지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그의 비판은 경제학자들이 모델을 '사용하는 방식'에 집중될 뿐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구조' 자체의 문제점까지 파고들지는 못한다.


첫째, 학문과 실천가의 인위적 분리라는 허상이다. 

로드릭은 경제학의 '모델 도서관' 자체는 풍부하고 중립적이지만, 편향된 경제학자들이 특정 책(예: 효율적 시장 모델)만 꺼내 읽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논리다. 어떤 모델이 '주류'로 인정받고, 어떤 모델이 명문대학 박사과정에서 집중적으로 교육되며, 어떤 모델을 사용한 논문이 최고의 경제학 학술지에 게재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경제학자라는 전문가 집단이다. 즉, 경제학자들의 집단적 편향이 '도서관'의 서가 구성과 추천 도서 목록 자체를 왜곡한다. 도서관은 결코 가치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며, 특정 이데올로기(주로 신자유주의)를 반영하는 모델들이 더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실패의 원인을 단순히 도서관 이용자의 잘못된 선택으로만 돌리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것이다.


둘째, '맥락'의 범위에 대한 소극적 태도이다. 

로드릭은 '맥락'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지만, 그가 말하는 맥락은 주로 특정 국가의 시장 조건이나 제도적 환경 등 경제적 변수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장하준과 같은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경제 현상을 결정하는 더 근본적인 '맥락'은 역사, 정치권력, 문화, 이데올로기 등 비경제적 요인들이다. 예를 들어, 장하준은 『사다리 걷어차기』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통해 오늘날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강요하는 자유무역 모델이, 정작 자신들이 성장하던 시기에는 결코 사용하지 않았던 정책임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폭로한다.

이는 자유무역 모델의 적합성이 단순히 경제적 '맥락'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사회의 '정치권력'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주류 경제학 모델들은 이러한 거시적이고 비경제적인 맥락을 외생변수로 취급하거나 무시하는데, 이는 모델 자체의 근본적인 한계이지 단순히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셋째, 구조적 문제에 대한 분석 부재이다. 

로드릭은 경제학자들이 '효율적 시장' 모델을 맹신하는 경향이 왜 체계적으로 반복되는지에 대해, 오만함이나 유행과 같은 심리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왜 유독 '시장에 우호적인' 모델들이 계속해서 주류의 지위를 차지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분석은 제시하지 않는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특정 권력, 예를 들어 금융자본이나 거대 기업이해관계에 봉사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경제 현상을 계급투쟁과 자본의 운동 법칙이라는 구조 속에서 분석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나,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정치권력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장하준의 정치경제학적 비판과 뚜렷이 대비되는 지점이다.


결론적으로, 로드릭이 제시하는 '기예(craft)'라는 개념은 매우 모호하며, 결국 경제학을 과학의 영역에서 주관적 판단의 영역으로 후퇴시키는 위험을 내포한다. '기예'에 대한 객관적 검증 기준이 없다면, 어떤 경제학자의 모델 선택이 다른 경제학자의 선택보다 우월하다고 판단할 근거는 무엇인가? 이는 결국 "더 유명하고 권위 있는 경제학자의 직관이 더 옳다"는 식의 권위주의로 귀결될 수 있으며, 학문적 논쟁을 개인의 '감식안' 문제로 환원시켜 버릴 위험이 있다.

 

 

함께 읽어야 할 책


.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 부키 2023  - 로드릭이 간과하는 역사적 맥락과 정치권력의 문제를 통해 주류 경제학 모델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날카롭게 비판. 

.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장하준/부키 2023  -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23가지 통념을 구체적 근거를 통해 반박하며, 로드릭의 모델들이 기반한 전제 자체를 흔든다.

.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 김영사 2012  - 경제 모델의 근간인 '합리적 인간' 가정이 왜 틀렸는지를 인지심리학의 관점에서 증명. 로드릭의 논의를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넛지 (파이널 에디션) /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 / 리더스북 2022  - 인간의 비합리성을 인정하고, 이를 정책 설계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보여줌. 로드릭의 '모델 선택'을 넘어선 '선택 설계'의 관점을 제공. 

.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 로버트 스키델스키 안타레스 2021 - 경제학의 잘못된 가설과 방법론적 허점을 역사적 관점에서 비판하며, 경제학이 삶의 '도구'로 기능해야 함을 역설. 로드릭의 내부 비판을 외부에서 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