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자유 시장의 허상부터 부의 불평등, 정부의 역할까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숨겨진 진실을 팩트체크와 심층 분석, 그리고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파헤칩니다. 경제학, 심리학, 철학을 넘나드는 보고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1. 시장과 국가: 보이지 않는 손의 진실
Thing 1: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 주장 요약: '자유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 신화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시장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수많은 규제와 규칙 위에서 작동하며, 시장의 '자유' 정도는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다.
- 근거 및 해설: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지만, 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사유재산권 보호, 계약 이행 강제 등 시장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 자체가 정부의 강력한 규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시장에서 무엇을 거래할 수 있고 없는지에 대한 경계는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마약, 인신매매, 공직, 법원의 판결 등은 돈으로 사고팔 수 없도록 엄격히 규제된다. 이러한 규제는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결정에 따라 시대마다, 사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19세기 영국에서는 공장주들이 아동 노동 규제 법안에 대해 아이들의 '일할 자유'를 침해한다며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오늘날 아동 노동 금지는 인권을 위한 당연한 규제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시장의 범위와 규칙은 고정불변의 자연법칙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이다.
결국, 특정 규제에 대해 '시장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주장은 순수한 경제적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그 규제를 통해 보호하려는 가치(예: 환경, 노동자의 권리, 금융 안정)보다 시장에서의 이윤 추구라는 가치를 우선시하는 특정 집단의 정치적 견해 표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장은 객관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그 이면에 작동하는 정치적 논리를 파악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Thing 7: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 주장 요약: 오늘날 선진국들은 과거 자신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사용했던 보호무역과 정부 개입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개발도상국에게는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을 강요하는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위선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 근거 및 해설: 역사적으로 볼 때, 현재 부유한 나라들 중 자유 시장 정책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는 거의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선진국은 경제 발전 초기 단계에서 자국의 미성숙한 산업, 즉 '유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와 보조금 지급 등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정책을 활용했다.
'자유 무역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영국조차 18세기 로버트 월폴 총리 시절, 당시 선진국이었던 네덜란드로부터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펼쳤다. 미국은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유치산업 보호론'을 바탕으로 남북전쟁 이후 약 100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관세 장벽을 유지하며 자국 산업을 육성했다. 독일, 일본, 대만 등 후발 주자들의 성공 신화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의 '한강의 기적'은 정부 주도의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 중화학공업 육성, 외국인 투자 규제 등 시장 논리와는 거리가 먼, 적극적인 정부 개입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올랐던 '보호와 육성'이라는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고, 이제 막 사다리를 오르려는 개발도상국들에게는 맨몸으로 절벽을 오르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의 이면에는 개발도상국들이 자국 산업을 발전시켜 자신들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경제 정책을 평가할 때는 보편적인 이론이 아닌, 각국의 발전 단계와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Thing 12: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 주장 요약: 정부는 시장보다 정보가 부족하여 '유망주(성공할 산업이나 기업)'를 선별할 수 없다는 신자유주의의 주장은 신화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정부가 성공적으로 유망주를 선택하고 육성한 사례는 무수히 많으며, 중요한 것은 '개입 여부'가 아니라 '개입의 질'이다.
- 근거 및 해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의 산업 정책을 '실패할 운명'이라고 폄하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국 정부가 1960~70년대에 제철(포스코), 자동차(현대), 반도체(삼성)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것은 정부가 성공적으로 유망주를 골라낸 대표적인 사례다.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인터넷, GPS, 터치스크린, 심지어 아이폰의 핵심 기술 대부분은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막대한 장기 투자를 통해 개발되었다. 민간 부문은 당장의 수익성이 불확실한 기초 기술이나 장기적인 연구개발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험 자본'의 역할은 정부가 수행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의 선택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민간 기업의 투자 결정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벤처기업이 실패의 쓴잔을 마신다. 핵심은 실패의 가능성 자체가 아니라, 실패를 통해 배우고 정책을 끊임없이 수정하며 성공 확률을 높여가는 과정이다. 정부와 민간 부문이 긴밀히 협력하고, 정책 결정 과정이 투명하게 이루어질 때 '유망주 선택'의 성공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Thing 6, 19, 21 요약
• Thing 6 : 거시 경제 안정은 세계 경제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억제가 거시 경제 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물가 안정을 위한 긴축 정책은 오히려 투자를 위축시키고 성장률을 둔화시켰으며, 규제 완화와 맞물려 금융 불안정성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물가 안정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실물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 Thing 19 : 우리는 여전히 계획 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오직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정부의 경제 개발 계획뿐만 아니라, 월마트나 도요타 같은 거대 기업 내부에서는 시장을 능가하는 정교하고 복잡한 '계획'이 이루어진다. 문제는 계획과 시장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각 영역에서 어떤 메커니즘이 더 효율적인지를 판단하고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 Thing 21 :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강력한 실업 보험, 재교육 프로그램, 의료 보장 등 사회 안전망과 복지 제도를 갖춘 '큰 정부'는 노동자들이 실업이나 산업 구조조정과 같은 경제적 변화에 대한 두려움 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기술 변화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줄여, 결과적으로 경제 전체의 역동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2. 부와 불평등: 누가 파이를 가져가는가
Thing 2: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
- 주장 요약: 기업을 오직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경영해야 한다는 '주주 자본주의' 원칙은 기업의 장기적 생산성을 해치고, 노동자, 하청업체 등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결국 경제 전체에 해로운 결과를 초래한다.
- 근거 및 해설: 주주들은 기업의 법적 소유주일지 모르나, 기업의 여러 이해관계자(노동자, 경영자, 공급업체, 고객, 지역사회 등) 중 기업의 장기적 생존에 가장 관심이 적은 집단일 수 있다. 그들은 언제든 보유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있는 가장 '이동성'이 높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주주들은 장기적인 연구개발 투자나 인재 양성보다는 단기적인 배당금 지급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 부양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영 방식은 필연적으로 단기 성과주의로 이어진다. 이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통한 인건비 절감, R&D 투자 축소, 하청업체에 대한 단가 인하 압력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행위는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이익을 늘리고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숙련도를 떨어뜨리고, 기술 경쟁력을 약화시키며, 협력업체와의 신뢰 관계를 파괴하여 기업의 근본적인 생산성을 갉아먹는다. 2009년 파산한 GM의 사례는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하다가 장기적인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에 실패한 대표적인 경우다. 기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공동체이며, 이들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장기적으로 더 지속 가능하고 효율적이다.
Thing 10: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 주장 요약: 명목 1인당 국민소득만 보면 미국이 세계 최고 부자 나라처럼 보이지만, 각국의 물가 수준을 반영한 구매력, 극심한 소득 불평등, 긴 노동 시간, 취약한 복지 시스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실제 미국인들의 평균적인 생활 수준은 다른 여러 선진국보다 낮다.
- 근거 및 해설: 한 나라의 생활 수준을 평가할 때 가장 흔히 사용되는 1인당 국민소득 지표는 여러 가지 함정을 가지고 있다.
첫째,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보면 미국의 순위는 달라진다. PPP는 각 나라에서 거래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 차이를 반영하여 실제 구매력을 기준으로 소득을 환산한 지표다. 2024년 IMF 전망치에 따르면, PPP 기준 1인당 GDP에서 미국은 89,105달러로 싱가포르,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카타르, 노르웨이, 스위스 등 여러 나라보다 뒤처진다.
둘째, 미국은 선진국 중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다. 높은 평균 소득은 소수 최상위층의 막대한 부에 의해 크게 왜곡되어 있으며, 대다수 국민의 현실적인 삶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한데, 미국의 지니계수는 2022년 기준 0.488로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며, 이는 일부 남미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셋째, 삶의 질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을 보면 미국의 현실은 더욱 명확해진다. 미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연간 평균 노동 시간이 길고, 유급휴가나 병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없어 의료 접근성이 낮고, 총기 범죄율이 높으며, 공공 서비스의 질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Thing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 주장 요약: 부유층에 대한 감세와 규제 완화가 투자를 촉진해 경제 전체를 성장시키고, 그 혜택이 넘쳐흘러 저소득층에게도 돌아간다는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는 이론적으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은 실패한 신화다.
- 근거 및 해설: '낙수 효과'는 맨 위 컵에 물을 부으면 넘쳐서 아래 컵까지 채워진다는 비유에서 유래한 이론으로, 부유층의 부가 증가하면 이들이 소비와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논리다. 이는 1980년대 미국 레이건 행정부와 영국 대처 정부의 감세 정책의 핵심적인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지난 30~40년간의 역사는 낙수 효과가 허구임을 증명한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부유층에 대한 최고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이 대폭 인하되었지만, 그 결과는 투자 증대와 성장률 제고가 아닌, 부의 불평등 심화였다. 부유층은 감세로 얻은 추가 소득을 공장을 짓거나 고용을 늘리는 생산적인 투자에 사용하기보다는,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금융 자산 매입이나 자산 투기에 사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실물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자산 가격 거품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오히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그 반대인 '분수 효과(fountain effect)'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소득의 대부분을 생필품 구매 등 소비에 사용하므로, 이들의 소득을 늘려주는 정책(예: 최저임금 인상, 복지 지출 확대)이 총수요를 직접적으로 진작시켜 생산과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IMF와 OECD 같은 국제기구조차 최근 보고서에서 과도한 불평등이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저해하며, 소득 재분배 정책이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Thing 14 & 20 요약
• Thing 14 :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미국 대기업 CEO들이 받는 천문학적인 보수는 그들의 실제 생산성이나 기업 성과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이는 사실상 자신들이 임명한 이사회를 통해 스스로의 보수를 결정하는 '그들만의 리그'이며, 시장 논리가 아닌 정치적 권력의 문제다. 이러한 과도한 보수는 기업 내 위화감을 조성하고,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게 만들어 기업의 장기적 건강성을 해친다.
• Thing 20 :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형식적인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부유한 부모를 둔 아이와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가 똑같은 교육 시스템에서 경쟁하는 것은 공정한 경주가 아니다. 출발선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기존의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심화시킬 뿐이다. 진정한 공정성을 위해서는 결과의 극심한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개입(예: 양질의 공교육, 상속세 강화, 복지 정책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3. 인간과 경제 시스템: 합리성에 대한 의문
Thing 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 주장 요약: 주류 경제학은 인간을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호모 이코노미쿠스')로 가정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편협한 인간관이다. 이기심만을 전제로 경제 시스템을 설계하면, 사람들의 도덕성, 신뢰, 협력과 같은 다른 중요한 동기들을 파괴하여 오히려 더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인 결과를 낳는다.
- 근거 및 해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종종 개인의 이기심 추구가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로 오용된다. 하지만 인간은 이기심 외에도 신뢰, 정직, 이타심, 공공심, 명예 등 매우 다양한 동기에 의해 행동하는 복잡한 존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시 카메라가 없어도 무인 상점에서 물건값을 지불하고, 직접적인 보상이 없어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다.
만약 모든 사람을 잠재적인 도둑이나 게으름뱅이로 간주하고, 이를 막기 위해 복잡한 감시 시스템과 엄격한 성과급 체계를 도입한다고 상상해보자.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신뢰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고, 점차 규칙의 허점을 이용하거나 최소한의 노력만 하려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이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막대한 감시 비용을 발생시키고, 조직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질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과 같다. 사람들을 이기적이고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규정하고 대하면, 그들은 정말로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따라서 좋은 경제 시스템은 인간의 이기심을 인정하되, 동시에 신뢰와 협력, 공공심과 같은 선한 동기들을 북돋아 주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Thing 16: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 주장 요약: 인간은 전지전능하고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제한된 정보와 인지 능력의 한계 속에서 판단하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가질 뿐이다. 따라서 인간의 판단력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복잡한 현대 경제를 아무런 규제 없이 시장에만 맡기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발상이다.
- 근거 및 해설: 이 주장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이 제시한 '제한된 합리성' 이론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사이먼에 따르면, 현실 세계의 복잡성에 비해 인간의 정보 처리 능력은 매우 제한적이므로, 우리는 모든 대안을 탐색하여 최적의 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수준에서 의사결정을 멈추는 경향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이러한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명백히 보여준 사건이다. 당시 세계 최고의 두뇌로 불리던 금융 전문가들조차 자신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파생금융상품(CDO, CDS 등)의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 결과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이 아무리 '영리'하더라도, 시스템 전체의 복잡성을 완전히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증명한다.
따라서 정부는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의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복잡한 금융 상품의 거래를 제한하고, 소비자들이 상품 정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을 막기 위한 규칙을 마련하는 것은 시장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이 지속 가능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필수적인 역할이다.
Thing 22: 금융 시장은 보다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
금융 혁신이 실물 경제의 생산성 향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금융 부문이 실물 경제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새로운 금융 상품들은 대부분 기존의 위험을 교묘하게 포장하여 이전하는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며, 실물 경제의 생산성 향상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는 금융 불안정성을 높이고, 인재와 자원을 생산적인 제조업 대신 비생산적인 금융 부문으로 쏠리게 만든다. 따라서 금융 시장의 혁신 속도를 늦추고 실물 경제와의 건강한 균형을 맞추기 위한 강력한 규제(예: 금융거래세 도입)가 필요하다.
4. 세계화와 발전: 통념 뒤집어 보기
Thing 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 주장 요약: 우리는 가장 최근에 일어난 기술 변화(인터넷)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고, 과거의 덜 극적인 기술 변화(세탁기 등 가전제품)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최신 편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세탁기는 여성을 고된 가사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능하게 한, 20세기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 진정한 혁명적 기술이다.
- 근거 및 해설: 세탁기가 보급되기 전, 빨래는 엄청난 시간과 체력을 요구하는 고된 노동이었다. 세탁기, 전기 다리미, 진공청소기, 가스레인지, 중앙난방 등 가사 기술의 발전은 가사 노동에 필요한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었다. 이는 여성들이 교육을 받거나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만들어주었고, 결과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성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는 단순히 생활의 편의를 넘어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꾼 거대한 변화였다.
이에 비해 인터넷은 이미 존재하던 통신(전화, 전보)과 정보 전달(신문, 방송)의 속도를 높이고 비용을 낮춘 것이지, 세탁기만큼 사회의 근본적인 역할 구조와 노동 시장 자체를 뒤흔든 것은 아니다. 물론 인터넷의 영향력은 지대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변화의 깊이보다 속도에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 이 도발적인 주장은 우리가 '탈산업화'나 '지식 경제'와 같은 구호에 빠져 제조업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특정 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편협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하기 위한 것이다.
Thing 11: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 주장 요약: 아프리카의 저개발 원인을 불리한 기후, 척박한 지리, 식민주의의 상처, 끊임없는 민족 갈등 등 구조적이고 운명적인 요인으로 돌리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지난 수십 년간 선진국과 국제기구가 강요한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방 정책이 아프리카의 미약한 산업 기반마저 붕괴시킨 것이 저성장의 핵심 원인이다.
- 근거 및 해설: 아프리카의 저개발을 설명하는 통념들은 대부분 설득력이 약하다. 지리적 조건(내륙 국가)이 문제라면, 똑같이 바다가 없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의 경제적 성공은 설명할 수 없다. '자원의 저주'가 문제라면,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부국이 된 미국, 캐나다, 호주의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다민족 구성이 갈등을 유발해 발전을 저해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 역시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이민 국가이며, 이들은 '국민 통합'이라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 문제를 극복했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1960~70년대, 독립한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수입 대체 산업화와 국가 주도 개발 정책을 통해 연평균 1.6%의 1인당 소득 성장률을 기록하며 상당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IMF와 세계은행이 강요한 '구조조정 프로그램' (급진적인 시장 개방, 무역 자유화, 보조금 철폐, 국영기업 민영화)으로 인해, 이제 막 싹트던 제조업 기반이 선진국의 값싼 공산품과의 경쟁에서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그 결과 1980~2000년대 아프리카의 1인당 소득은 매년 평균 0.7%씩 감소하며 '잃어버린 수십 년'을 겪게 되었다.
따라서 아프리카의 문제는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의 결과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과거 선진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국의 현실에 맞게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국가 주도적으로 산업 역량을 키우는 정책을 통해 충분히 발전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Thing 3, 8, 9, 15 요약
• Thing 3 :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개인의 임금은 순전히 개인의 생산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부자 나라의 버스 기사가 가난한 나라의 버스 기사보다 수십 배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국경을 통제하는 '이민 제한'이라는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 덕분이다. 즉, 임금은 상당 부분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 Thing 8 :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초국적 자본이 국적 없이 오직 이윤만을 좇는다는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 대부분의 초국적 기업은 본국 정부의 외교적, 군사적 지원과 보호를 받으며, 핵심적인 의사결정 또한 본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자본은 결코 뿌리 없는 존재가 아니다.
• Thing 9 :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에서 제조업 고용 비중이 줄고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졌다고 해서 제조업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금융, 컨설팅, 디자인, R&D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대부분은 제조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에 의존한다.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면 경쟁력 있는 서비스업도 함께 쇠퇴할 수밖에 없다.
• Thing 15 :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누구나 길거리 노점상, 일용직 노동자 등 '1인 기업가'가 되어야만 한다. 문제는 개인의 기업가 정신 부족이 아니라, 이러한 개인들의 노력을 성공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안정적인 전력 공급, 도로망, 금융 시스템, 법치 등)와 집단적 역량의 부재다.
5. 지식과 교육, 그리고 정책: 무엇이 성장을 이끄는가
Thing 17: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 주장 요약: 교육 수준 향상이 곧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인적 자본론'의 믿음은 과장되었다.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경제 성장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생산적인 산업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며, 산업 발전이 교육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 근거 및 해설: 교육이 개인의 삶과 사회 발전에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교육에 대한 투자가 자동적으로 국가의 부를 증진시킨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스위스는 20세기 초까지도 유럽에서 문맹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였고 대학 진학률도 매우 낮았지만, 강력한 기계 산업과 현장 중심의 도제 교육 시스템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부국이 되었다. 반면,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던 필리핀은 1960년대 이후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졌다.
한국과 대만의 사례 역시 교육열이 경제 성장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들의 경제 성공은 교육 수준 향상 이전에 정부 주도의 성공적인 산업화 정책이 먼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더 높은 기술과 지식을 갖춘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고, 이것이 교육 투자를 더욱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경제 성장에 실패하는 이유는, 고학력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만한 적절한 산업 기반과 양질의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두뇌 유출'이라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교육 정책은 반드시 산업 정책과 긴밀하게 연계되어야 하며, 단순히 교육 수준을 높이는 것보다 국가의 생산 역량을 키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Thing 18 & 23 요약
• Thing 18 :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말은 기업의 이익이 곧 국가 전체의 이익이라는 믿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개별 기업의 이익 추구 행위가 항상 국가 경제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단기 이익을 위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대규모 감원을 단행할 수 있지만, 이는 국내 일자리 감소와 산업 공동화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되, 그것이 국가 경제 전체의 발전과 조화를 이루도록 정부의 조정 역할이 필수적이다.
• Thing 23 : 좋은 경제 정책을 세우는 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
역사적으로 성공적인 경제 정책이 복잡한 경제 이론에 정통한 '좋은 경제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동아시아 경제 기적을 이끈 정책 입안자들은 대부분 경제학자가 아닌 법률가, 엔지니어, 군인 출신 기술 관료였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 실용적인 사고, 그리고 강력한 정치적 의지였다. 경제학은 현실을 설명하는 여러 유용한 도구 중 하나일 뿐이며, 경제학 이론을 맹신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고 정책 실패를 낳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 용어 설명 ]
•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규제 완화, 민영화, 자유 무역 등을 통해 시장의 자유를 극대화해야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경제 사상 및 정책 기조.
• 보호무역주의(Protectionism): 관세 부과, 수입량 제한(쿼터), 보조금 지급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통해 자국의 산업, 특히 아직 경쟁력이 약한 유치산업을 외국과의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무역 정책.
•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감세 등을 통해 이들의 부가 증가하면, 이들이 투자와 소비를 늘리게 되어 그 혜택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게까지 '넘쳐흐른다'는 이론.
• 지니계수(Gini Coefficient):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통계 지수. 0에서 1 사이의 값을 가지며, 0에 가까울수록 완전 평등, 1에 가까울수록 완전 불평등 상태를 의미한다.
•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인간이 의사결정을 할 때 정보의 불완전성, 인지 능력의 한계, 시간 제약 등으로 인해 모든 대안을 검토하여 최적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수준에서 결정을 내린다는 행동경제학 이론.
•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어떤 상황에 대한 잘못된 정의나 예측이 새로운 행동을 유발하고, 그 행동이 결국 처음의 잘못된 예측을 현실로 실현시키는 현상. 예를 들어, 은행이 파산할 것이라는 헛소문이 돌면 사람들이 실제로 돈을 인출하기 시작해 은행이 정말로 파산하게 되는 경우.
•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 시장의 비효율성(시장 실패)을 교정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정보 부족, 관료주의, 이익집단의 로비 등으로 인해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을 낳거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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