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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해석과 이해(구조와 에세이)/책 해석과 이해(경제,전략)

[역량의 창조] '마사 누스바움'의 존엄의 설계와 진정한 인간다운 삶을 향한 탐구

by 유미 와 비안 2025. 10. 25.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의 창조

진정한 인간다운 삶을 향한 탐구와 존엄의 설계

 

숫자의 빈곤을 넘어서

현대 사회는 발전을 측정하는 데 있어 오랫동안 하나의 지배적인 척도에 의존해왔다. 바로 국내총생산(GDP)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성장 지표이다. 국부의 증가는 곧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동일시되었으며, 경제 성장은 사회 발전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지표의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GDP 수치가 상승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개인의 삶은 불평등과 박탈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다차원적인 가치들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간과되거나 무시되었다.
이러한 숫자의 빈곤, 즉 인간 삶의 복합성과 풍요로움을 담아내지 못하는 기존 발전 담론의 한계에 맞서,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성인 중 한 명인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바로 "각 개인은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발전의 초점을 국가의 부나 자원의 총량과 같은 수단에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영위할 실질적인 자유와 기회라는 목적으로 전환시키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누스바움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아 센(Amartya Sen)과 함께 20여 년에 걸쳐 발전시킨 

'역량 접근법(Capability Approach)'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체계적인 답변이다. 『역량의 창조(Creating Capabilities)』는 이 이론의 정수를 집대성한 저작으로, 사회 정의와 인간 발전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한다. 

 

역량의 창조 / 마사 누스바움 - 숫자의 빈곤을 넘어서

 

역량의 창조


1장: 정의를 갈망하는 한 여성의 목소리


누스바움의 철학은 추상적인 사변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그것은 구체적인 인간의 삶, 특히 가장 취약한 이들의 고통과 열망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책의 1장은 인도 구자라트의 여성 '바산티(Vasanti)'의 이야기로 시작하며, 역량 접근법이 왜 필요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바산티의 삶은 GDP와 같은 거시 경제 지표가 어떻게 개인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은폐하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이다.


인도의 GDP가 성장하는 동안에도 '바산티'와 같은 여성들은 교육받을 기회, 건강을 유지할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선택할 권리를 체계적으로 박탈당한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경제적 자립 능력이 없어 떠나지 못하고, 사회적 관습과 차별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은 국가의 평균 소득이 증가한다고 해서 그 부가 모든 구성원에게 공정하게 분배되거나, 그들의 실질적인 자유가 신장되는 것은 아님을 명백히 보여준다.


누스바움은 '바산티'의 사례를 통해 기존 발전론의 치명적인 결함을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평균'이라는 통계적 허상 뒤에 가려진 개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조건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젠더, 계급, 인종, 장애 등과 같은 사회적 요인들이 자원을 실질적인 삶의 기능으로 전환하는 능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간과한다. 따라서 정한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전체의 부가 아니라, 각 개인이 존엄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핵심 기회들을 실제로 누리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누스바움은 역설한다. 이것이 바로 역량 접근법의 도덕적 출발점이다.


2장: 존엄한 삶의 열 가지 기둥 – 핵심 역량


기존 발전 지표의 문제점을 지적한 누스바움은 자신의 이론적 대안의 핵심, 즉 '10대 핵심 역량(Ten Central Capabilities)' 목록을 제시한다. 

이 목록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다. 이는 특정 문화나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숙고를 통해 '인간다운 삶'의 필수 요소라고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들의 집합으로 제안된다.


누스바움이 제시하는 10대 핵심 역량은 다음과 같다
1. 생명 (Life): 조기에 사망하지 않고, 정상적인 수명까지 살아갈 수 있는 능력.
2. 신체 건강 (Bodily Health): 좋은 건강을 유지하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며, 적절한 주거 공간을 가질 수 있는 능력. 생식의 자유를 포함한다.
3. 신체의 온전성 (Bodily Integrity): 폭력(성폭력, 가정 폭력 등)으로부터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성적 만족과 생식의 문제에서 선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능력.
4. 감각, 상상, 사유 (Senses, Imagination, and Thought): 자신의 감각을 사용하고, 상상하고, 사유하고, 추론할 수 있는 능력. 이는 문해력과 기초 과학 교육을 포함한 적절한 교육을 통해 함양된다.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5. 감정 (Emotions): 타인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는 능력. 공포와 불안에 의해 감정 발달이 저해되지 않아야 한다.
6. 실천이성 (Practical Reason):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형성하고, 자신의 삶의 계획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능력. 양심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한다.
7. 관계 (Affiliation): 타인과 함께, 그리고 타인을 향해 살아갈 수 있는 능력.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가질 수 있고, 다양한 사회적 상호작용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차별 없이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으며 자존감의 사회적 기반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8. 다른 종들 (Other Species): 동물, 식물, 그리고 자연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
9. 놀이 (Play): 웃고, 놀고,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능력.
10. 자신의 환경에 대한 통제 (Control Over One's Environment):
⑴ 정치적 통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선택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능력. 정치 참여권, 언론의 자유가 포함된다.
⑵ 물질적 통제: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가지며, 타인과 동등한 기반 위에서 고용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 능력.

 

이 목록에서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은 '문턱 수준(threshold level)'과 '비대체성(non-fungibility)'이다. 누스바움은 모든 사회가 각 시민에게 이 10가지 역량 모두를 최소한의 '문턱 수준' 이상으로 보장할 헌법적 의무를 진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역량들은 서로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관계를 맺을 자유(7번 역량)를 박탈하는 대신 막대한 부(10번 역량)를 제공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인간의 삶이 다양한 가치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모든 가치가 각각 고유한 중요성을 지닌다는 다원주의적 입장을 반영한다.


3장: 결함 있는 대안 이론들


역량 접근법의 정당성은 그것이 무엇을 제안하는가뿐만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비판하고 대체하는가에서도 드러난다. 3장에서 누스바움은 기존의 주요 발전 및 정의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며 그 한계를 명확히 한다. 이 모든 비판의 기저에는 '전환 요인(conversion factors)'이라는 핵심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전환 요인이란 개인이 주어진 자원(소득, 재화, 권리 등)을 실질적인 삶의 기능으로 전환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 사회적, 환경적 조건들을 의미한다. 기존 이론들은 바로 이 전환 요인의 다양성을 간과함으로써 형식적 평등에 머무르고 실질적 불평등을 외면하는 오류를 범한다.


ⓐ GDP 접근법: 이 접근법은 국가의 총생산량만을 측정할 뿐, 그 부가 어떻게 분배되는지, 그리고 그 부가 사람들의 건강, 교육, 정치 참여와 같은 비경제적 삶의 질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완전히 무시한다. 이는 발전을 인간 삶의 향상이 아닌 단순한 재화 축적으로 환원하는 오류를 범한다.


ⓑ 공리주의 접근법: 사회 전체의 총효용(만족)의 합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리주의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권리나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 

둘째, '적응적 선호(adaptive preference)'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억압받아 온 사람들은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적응하여 작은 것에도 만족할 수 있는데(소위 '행복한 노예' 문제), 공리주의는 이러한 왜곡된 만족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기존의 불의를 영속화할 위험이 있다. 

셋째, 건강, 교육, 자유 등 질적으로 다른 모든 가치를 '효용'이라는 단일한 척도로 환원하여 가치의 다원성을 훼손한다.


ⓒ 자원 중심 접근법 (존 롤스 포함): 존 롤스의 정의론과 같이 소득, 부, 권리와 같은 '기본재(primary goods)'의 공정한 분배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법은 공리주의보다 진일보한 것이지만, 여전히 한계를 갖는다. 이 접근법은 사람들에게 수단(자원)을 동등하게 분배하는 데 집중할 뿐사람들이 그 수단을 가지고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즉 그들의 실질적인 역량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동일한 양의 식량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분배하더라도, 장애인은 그 식량을 소화하고 영양분으로 전환하기 위해 더 많은 추가 자원(의료 서비스 등)을 필요로 할 수 있다. 이처럼 자원 중심 접근법개인의 신체적 조건, 사회적 환경 등 다양한 '전환 요인'의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수단의 평등에만 머무른다는 비판을 받는다.


ⓓ 인권 접근법: 누스바움은 역량 접근법이 인권 담론과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보완하고 구체화하는 동반자 관계에 있다고 본다. 인권이 '무엇을 보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강력한 도덕적 틀을 제공한다면, 역량 접근법은 그 권리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며, 그것이 개인의 삶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기회로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더욱 풍부한 언어로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교육받을 권리'라는 인권 선언은 '감각, 상상, 사유'의 역량을 통해 비판적 사고 능력과 창의성을 함양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 기회의 보장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4장: 정치적 자유주의 안에서 역량 정당화하기


보편적인 10대 핵심 역량 목록을 제시했다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이 목록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로 이어진다. 다양한 가치관과 종교,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특정한 '좋은 삶'의 목록을 강제하는 것은 부당한 간섭이 될 수 있다. 4장에서 누스바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 개념과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라는 아이디어를 창의적으로 원용한다.


누스바움은 10대 핵심 역량 목록이 형이상학적 진리나 특정 종교의 교리에 기반한 '포괄적 독트린comprehensive doctrine)'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 그것은 서로 다른 포괄적 독트린을 가진 합리적인 시민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지지할 수 있는 '정치적 정의관'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은 인간이 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불교인은 모든 생명은 존귀하기 때문에, 그리고 세속적 인본주의자는 이성적 존재의 존엄성 때문에 10대 핵심 역량을 지지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동일한 정치적 원칙(핵심 역량 목록)에 합의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중첩적 합의'이다.


이러한 정당화 방식을 통해 역량 접근법은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다. 

첫째, 국가가 특정 종교나 철학을 강요하는 것을 막고 가치 다원주의를 존중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민의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사회 정의의 원칙을 확립한다. 즉, 역량은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보장해야 할 '기본권(fundamental entitlements)'이자 헌법의 핵심 원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국가는 시민들에게 특정 방식으로 '기능'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문턱 수준 이상으로 '역량'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할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5장: 제국주의 없는 보편주의를 향하여


역량 목록과 같은 보편적인 규범을 제시할 때 항상 따라붙는 비판은 바로 '문화 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의 도전이다. "당신이 제시한 목록은 서구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가치에 불과하며, 이를 다른 문화권에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 제국주의가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5장에서 누스바움은 이 첨예한 비판에 정면으로 맞서며, 자신의 이론이 어떻게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보편적 정의를 추구할 수 있는지를 논증한다.


누스바움의 핵심 논리는 역량 목록이 '두껍고 모호하다(thick and vague)'는 것이다. 목록은 인간다운 삶에 대한 '두꺼운' 가치를 담고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열려 있어 각 사회와 문화가 자신들의 맥락에 맞게 해석하고 구현할 여지를 남겨둔다. 예를 들어, '놀이(Play)'라는 역량은 보편적으로 중요하지만, 그것이 크리켓의 형태를 띨지, 축제의 형태를 띨지는 각 문화가 결정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역량 접근법이 '기능(functioning)'이 아닌 '역량(capability)'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국가는 시민들에게 특정 종교를 믿거나 특정 방식으로 놀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즉, 특정 '기능'을 강제할 수 없다. 그러나 국가는 시민들이 종교를 선택할 자유, 놀이를 즐길 기회, 즉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처럼 선택과 자유를 핵심에 둠으로써, 역량 접근법은 개인과 문화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여성 할례나 명예 살인과 같이 인간의 핵심 역량을 침해하는 억압적인 전통에 대해서는 비판의 근거를 제공한다.

결국 누스바움의 목표는 획일적인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좋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6장, 7장, 8장: 실천, 뿌리, 그리고 현대적 쟁점들


책의 후반부는 역량 접근법의 실천적 적용, 철학적 계보, 그리고 현대 사회 문제에 대한 함의를 다루며 이론을 완성한다.
6장 '국가와 국제정의'에서는 역량 보장의 일차적 책임이 개별 국가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동시에 부유한 국가와 국제기구들이 빈곤한 국가의 역량 개발을 지원해야 할 글로벌한 의무가 있음을 역설하며, 이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7장 '역량 접근법의 철학적 뿌리'에서는 이 이론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 번영(eudaimonia) 개념과 칼 마르크스의 진정한 인간 기능에 대한 통찰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밝힌다. 이를 통해 역량 접근법이 당대의 지배적인 칸트주의나 공리주의와는 다른, 인간의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삶에 주목하는 유구한 철학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8장 '역량과 현대의 여러 쟁점'은 이 이론의 실천적 힘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누스바움은 역량의 틀을 사용하여 젠더 불평등,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돌봄 문제, 교육의 목적, 동물의 권리, 환경 문제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을 통합적인 시각으로 분석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 문제단순히 의료적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사회에 온전히 참여하고 다른 역량들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재구성해야 하는 사회 정의의 문제로 재정의된다. 동물 역시 고유한 종으로서 번성하는 데 필요한 핵심 역량들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이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논의를 확장한다. 이처럼 역량 접근법은 서로 단절된 것처럼 보였던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존엄한 삶을 위한 기회 보장'이라는 일관된 틀 안에서 조망할 수 있는 강력한 분석 도구를 제공한다.

 

 

[용어 해설]


• 역량 접근법 (Capability Approach): 한 사회의 발전 수준이나 정의로움을 평가할 때, 소득이나 자원의 총량이 아니라 '각 개인이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즉, 그들의 실질적 자유)'에 초점을 맞추는 이론적 틀.
• 기능 (Functionings): 개인이 실제로 성취한 '존재의 상태'나 '행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건강한 것', '교육받은 것', '여행하는 것' 등은 기능에 해당한다. 역량이 '기회'라면 기능은 그 기회를 '실현'한 결과이다.
• 전환 요인 (Conversion Factors): 개인이 소유한 자원(예: 돈, 책)을 실제 기능(예: 영양 섭취, 지식 습득)으로 전환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신체 조건, 성별), 사회적(관습, 차별), 환경적(기후, 인프라) 요인들의 총칭.
• GDP 접근법 (GDP Approach): 한 국가의 발전 수준을 측정하는 데 국내총생산(GDP)이나 1인당 GDP와 같은 총량적 경제 지표를 사용하는 방식. 누스바움은 이 접근법이 분배 문제와 삶의 비경제적 측면을 간과한다고 비판한다.
• 공리주의 (Utilitarianism):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도덕과 정치의 최고 원리로 삼는 사상. 행위나 정책의 옳고 그름을 그것이 사회 전체의 총효용(만족, 쾌락)을 얼마나 증진시키는가에 따라 판단한다.
• 사회계약론 (Social Contract Theory): 국가나 사회의 정치적 의무와 권위가 구성원들의 (명시적 또는 암묵적) 합의나 계약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이론. 존 롤스는 이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했다.
• 정치적 자유주의 (Political Liberalism): 다양한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특정 '좋은 삶'의 관념을 강요하지 않고 공정한 협력의 틀을 제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정치 이론. 존 롤스가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 중첩적 합의 (Overlapping Consensus): 서로 다른, 때로는 상충하는 종교적, 철학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에서 동일한 정치적 원칙에 합의하는 상태. 누스바움은 10대 핵심 역량이 이러한 중첩적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문화 상대주의 (Cultural Relativism): 도덕적, 윤리적 기준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각 문화의 고유한 맥락 속에서만 이해되고 평가될 수 있다는 입장. 보편적 인권이나 역량 목록에 대한 주요 비판 논리로 사용된다.
• 자기결정성 이론 (Self-Determination Theory, SDT): 인간의 동기 부여와 심리적 안녕감에 관한 거시 이론. 인간에게는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내재적이고 보편적인 심리적 욕구가 있으며, 이 욕구의 충족이 건강한 성장과 발달에 필수적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