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해석과 이해(구조와 에세이)/책 해석과 이해(경제,전략)

[가치의 모든 것] '마리아나 마추카토' 누가 부를 창조하고 누가 착취하는가

by 유미 와 비안 2025. 10. 24.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가치의 모든 것

가치 창조와 착취의 개념부터 금융화, 혁신 경제의 민낯까지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

 

가치 논쟁의 귀환, 왜 지금 다시 '가치'인가?


현대 자본주의는 눈부신 풍요의 이면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 위기, 날로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 그리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굳건하다고 믿었던 시스템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 위기 속에서, 경제학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 다시 공론장으로 소환되고 있다. 바로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무엇이 진정한 '가치'인가?"라는 질문이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교수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그의 저서 『가치의 모든 것』을 통해 이 잊혀진 질문에 정면으로 답한다. 그는 현대 경제학이 '가치'에 대한 논의를 포기함으로써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고 진단한다. 특히 그는 다음과 같은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책의 전체 방향을 설정한다. "가치 창조가치 착취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는 소수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가치 창조자라 부르면서 가치를 착취해 가는 것을 더 용이하게 만들었다.".


'가치' 논쟁의 부활은 단순히 경제학 담론의 회귀가 아니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수십 년간 누적해 온 사회적 불안과 불만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회적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은 더욱 빠르게 증가했고 , 성실한 노동의 가치는 평가절하되는 반면, 생산 활동에 직접 기여하지 않는 금융 자본가나 IT 플랫폼 독점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하는 현상이 만연해졌다. 이러한 현실은 "누가 진정한 부를 만들고, 누가 그 부를 부당하게 가져가는가?"에 대한 대중적 분노와 의문을 증폭시켰다. 마추카토의 책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등장하여, '가치'라는 렌즈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기를 바라는 대중의 지적, 정서적 요구에 부응하며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가치의 모든것 / 마리아나 마추카토 - 가치장조와 착취

 

 

가치의 모든 것

 

1장. 가치 이론의 간략한 역사: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


마추카토"가치가 애당초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고 역설하며, 경제 사상가들이 벌여온 '가치' 논쟁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① 중상주의 (15-18세기): 이 시대 사상가들은 국가의 부가 '교역'을 통해 축적된 '귀금속(금, 은)'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스페인의 사례에서 보듯, 생산 활동 없이 화폐의 양만 늘리는 것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뿐 진정한 부를 창출하지 못했다.
② 중농주의 (18세기 프랑스): 중상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중농주의자들은 부의 진정한 원천이 교역이 아닌 '생산', 특히 '토지'와 '농업'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처음으로 사회 계급을 생산 활동에 기여하는 '생산 계급'(농민)과 그렇지 않은 '불임 계급'(상인, 지주)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를 했다.
③ 고전 경제학 (18-19세기):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카를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고전 경제학자들은 부의 원천을 '노동'으로 규정한 '노동가치설'을 발전시켰다. 가치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투입된 노동 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들 역시 생산적인 노동과 비생산적인 활동(예: 지주가 토지 소유만으로 얻는 '지대')을 구분함으로써, 어떤 경제 활동이 진정으로 사회의 부를 증진시키는지를 규명하고자 했다.


초기 경제학의 '가치' 논쟁은 단순히 부의 원천을 규명하는 것을 넘어, "어떤 경제 활동이 사회에 기여하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내포하고 있었다. 중농주의와 고전 경제학은 '생산적인' 활동과 그렇지 않은 '불로소득'을 구분하려 했는데 , 이는 특정 경제 활동의 '정당성'을 따지는 규범적 판단이었다. 즉, 초기 경제학은 '무엇이 가치 있는가'를 논하며 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려는 성격이 강했다. 이는 훗날 가치 판단에서 벗어나 '과학'을 표방하는 주류 경제학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2장. 가치는 보는 이의 눈에 달려 있다: 한계효용학파의 등장과 '지대'의 실종


19세기 후반, 경제학의 흐름을 뒤바꾼 혁명적 전환이 일어난다. 고전 경제학의 객관적 가치론이 개인의 주관적 판단을 중시하는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된 것이다.
① 한계효용학파(신고전파)의 등장: 이들은 가치가 노동 투입량 같은 객관적 요소가 아니라, 소비자가 상품을 한 단위 더 소비할 때 느끼는 '주관적 만족도(한계효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가 물보다 비싼 이유는 생존에 필수적인 물보다 희소한 다이아몬드가 주는 추가적인 만족감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② '가격 = 가치'의 시대: 이 이론에 따르면,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만나 형성된 '가격'이 곧 그 재화의 '가치'를 반영한다. 이로써 경제학은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서 벗어나,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분석하는 기술적인 학문으로 변모했다.
③ '지대(Rent)' 개념의 실종: 가장 중요한 변화는 고전 경제학에서 '비생산적 불로소득'으로 비판받던 '지대' 개념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지는 모든 소득(임금, 이윤, 지대)이 소비자의 효용을 만족시키는 '가치 있는' 활동의 대가로 간주되었다.


한계효용 이론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학문적 발전이 아니라, '가치 창조'와 '가치 착취'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허물어뜨린 '이데올로기적 전환'이었다. 고전 경제학은 지주나 독점 자본가의 '지대' 소득을 비생산적인 것으로 비판할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계효용 이론은 모든 소득이 시장 가격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러한 '지대' 소득 역시 정당한 '가치'의 일부로 포섭했다. 결과적으로, 생산 활동에 직접 기여하지 않으면서 부를 축적하는 행위(가치 착취)를 비판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경제학 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는 마추카토책 전체에서 비판하는 금융, 제약, IT 독점 기업들의 가치 착취를 정당화하는 핵심적인 이론적 배경이 된다.

 

3장. 국부의 측정: GDP는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


마추카토는 국가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는 대표적 지표인 GDP(국내총생산)가 현대 경제학의 왜곡된 가치관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파헤친다.
① GDP의 정의: GDP는 일정 기간 동안 한 국가 안에서 생산된 모든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 가치'의 합이다. 즉, '가격'이 매겨진 합법적 거래만을 계산에 포함한다.
② GDP의 맹점:
⑴. 비시장 활동의 배제: 가사 노동, 육아, 자원봉사 등 우리 삶에 필수적이지만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중요한 가치 창조 활동은 GDP 통계에서 완전히 누락된다.
⑵. 부정적 외부효과의 포함: 환경오염을 정화하는 데 드는 비용, 교통사고 처리 비용, 범죄 증가로 인한 교도소 건설 비용 등 사회에 해로운 활동조차도 GDP를 증가시킨다. GDP는 '좋은' 지출과 '나쁜' 지출을 구분하지 않는다.
⑶. 정부 부문의 왜곡: 정부의 활동(교육, 국방, 기초 연구 등)은 그 자체로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단지 공무원 임금 등 '비용'으로만 계산된다. 이는 정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가 아니라 '소비'하는 주체라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편견을 그대로 반영한다.


GDP는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라, '무엇이 가치 있는 활동인가'를 규정하는 강력한 사회적 프레임이다. 현재의 GDP 산정 방식은 정부의 지출을 '비용'으로만 처리함으로써, 정부가 가치를 '소비'할 뿐 '창출'하지 않는다는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 교육, 기초 연구, 인프라 구축 등 정부의 활동이 실제로는 민간 부문의 가치 창출에 필수적인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GDP 통계는 이를 '비용'이나 '낭비'로 보이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긴축 재정이나 민영화 같은 정책이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며, 이는 다시 공공 부문의 가치 창출 능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4장-5장. 금융, 거인에서 카지노 자본주의로


마추카토는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금융화(financialization)'를 지목한다. 금융 부문이 어떻게 실물 경제를 지원하는 본연의 역할을 넘어, 그 자체로 거대한 '가치 착취' 산업이 되었는지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① 금융의 팽창과 규제 완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금융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은행, 투자은행, 헤지펀드 등 금융 부문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금융 부문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히 증가했다.
② 실물 경제와의 단절: 금융은 더 이상 기업의 설비 투자나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생산적' 활동에 집중하지 않았다. 대신, 이미 존재하는 자산을 거래하거나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사고파는 '투기적' 활동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마추카토는 이를 실물 경제와 무관하게 돈이 돈을 버는 '카지노 자본주의'라고 명명한다.
③ 가치 착취 메커니즘: 금융 부문은 높은 수수료, 인수합병(M&A) 자문,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한 차익 거래 등을 통해 실물 경제가 창출한 가치를 이전받거나 착취한다. 이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가치를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지대 추구' 행위와 같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러한 카지노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본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금융화는 단순한 경제 현상을 넘어, 사회 전체의 '시간관념'을 단기화시키고 '리스크'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문화적 변화를 초래했다. 금융 시장은 분기별 실적, 초단위 거래 등 극단적인 단기 수익률에 집착한다. 이러한 단기주의 문화가 실물 경제로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장기적인 비전이나 혁신 투자보다 당장의 주가를 올리는 데 급급하게 되었다. 또한, 금융위기에서 보듯 금융 부문은 리스크를 사회 전체에 전가하면서 이익은 사유화하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가 장기적인 안목과 인내심을 잃고, 즉각적인 보상과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하는 '카지노 문화'에 물들게 되었으며, 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6장. 실물 경제를 잠식하는 금융화


금융화의 영향력은 금융 부문에만 머무르지 않고, 제조업을 포함한 비금융 일반 기업들의 경영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 주주가치 극대화(MSV) 이데올로기: 1980년대 이후 "기업의 유일한 목적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경영학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기업이 노동자, 협력업체, 지역 사회 등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이익보다 주주의 단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 자사주 매입의 역습: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명분 아래, 기업들은 벌어들인 이익을 장기적인 연구개발(R&D)설비 투자직원 임금 인상에 재투자하는 대신주가를 단기적으로 부양하기 위한 '자사주 매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이는 기업의 혁신 동력을 약화시키고, 경영진과 주주에게만 부가 집중되어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 '인내 자본'의 후퇴: 장기적 관점에서 혁신을 지원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인내 자본'은 점차 사라지고, 단기 수익을 좇는 투기적 자본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면서 기업들은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를 기피하게 되었다.


'주주가치 극대화'는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을 등한시하는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효율적인 경영 원칙처럼 포장되었다. 하지만 그 실상은 경영진이 자신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했다. 경영자에게 스톡옵션 등 주가와 연동된 보상 체계가 확산되면서, 그들은 기업의 본질적인 성장보다 단기 주가 부양에 더 큰 유인을 갖게 되었다. 자사주 매입은 R&D 투자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주가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결국, 주주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경영진은 자사주 매입을 통해 자신의 보상을 극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기업의 혁신 잠재력과 장기적 경쟁력은 약화된다. 이는 '가치 착취'가 '가치 창조'의 가면을 쓴 대표적인 사례이다.

 

7장. 혁신 경제에서의 가치 착취


마추카토는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혁신 경제'의 화려한 신화 이면에 숨겨진 가치 착취 구조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그녀는 전작 『기업가형 국가』에서 제시했던 논의를 더욱 발전시킨다.
① 혁신의 신화 해체: 스티브 잡스와 같은 소수의 '천재 기업가'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여 혁신을 이끌었다는 통념은 사실과 다르다고 비판한다.
② '기업가형 국가'의 숨겨진 역할: 마추카토는 애플 아이폰의 성공 신화를 예로 든다. 아이폰을 구성하는 핵심 기술들, 즉 인터넷, GPS, 터치스크린, 음성인식 비서(Siri) 등은 모두 미국 정부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등 공공 부문의 장기적이고 막대한 자금 지원을 통해 개발된 기초 기술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즉, 국가는 순히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소극적 조정자가 아니라,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초기 단계의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며 새로운 기술 시장을 창조한 '최초의 기업가'였다는 것이다.
③ 민간 기업의 가치 착취:
⑴ 특허 남용: 민간 기업들은 공공의 투자로 이룩된 기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광범위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경쟁자의 진입을 막고 독점적 이윤(지대)을 추구한다. 이는 혁신을 촉진하기보다 오히려 저해하는 '비생산적인 기업가 정신'이다.
⑵ 과도한 가격 책정: 제약회사들 정부 지원 연구에 크게 의존하여 신약을 개발하고도, 특허권을 이용해 생명을 위협하는 환자들에게 엄청난 가격을 매겨 막대한 이익을 올린다.
⑶ 조세 회피: 애플, 구글과 같은 거대 IT 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거두면서도, 아일랜드 등 조세 회피처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기여인 세금 납부를 최소화한다.


현대 혁신 경제는 '리스크의 사회화'와 '보상의 사유화'라는 근본적인 모순 위에 세워져 있다. 가장 근본적이고 불확실성이 높은 기초 연구(High-Risk)는 주로 공공 부문(정부, 대학)이 담당하며, 실패의 위험은 사회 전체가 부담한다. 반면, 민간 기업(특히 벤처캐피털)은 이러한 기초 연구의 성과가 어느 정도 가시화되어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 즉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단계에 진입하여 이를 제품화한다. 그리고 상업화에 성공할 경우, 그 막대한 보상(이익)은 대부분 해당 민간 기업과 소수의 투자자들에게 사유화된다. 결국 리스크는 집단적으로 부담하고, 보상은 소수가 독점하는 구조가 고착화된다. 이것이 바로 마추카토가 주장하는 혁신 경제에서의 '가치 착취' 핵심 메커니즘이다.

 

8장. 공공 영역에 대한 가치 절하


마추카토는 정부의 역할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축소되고 평가절하되었는지 분석하며, 정부가 다시 '가치 창조자'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① 정부에 대한 신화 비판: '정부는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이며, 민간의 혁신을 저해하는 존재'라는 신자유주의적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앞서 7장에서 보았듯이, 정부는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혁신의 주체였다.
② 공공선택론 비판: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은 공익이 아닌 사적 이익을 추구하므로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공공선택론의 주장을 비판한다. 마추카토는 이러한 논리가 정부 지출 삭감, 민영화, 아웃소싱을 정당화했고, 그 결과 정부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 자체를 상실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③ '기업가형 국가'로의 복귀: 정부는 단순히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소극적 역할을 넘어, 사회가 직면한 거대한 과제(기후 변화, 불평등, 팬데믹 등)를 해결하기 위한 담대한 '사명(Mission)'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적극적으로 창조하고 형성하는 '기업가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부에 대한 부정적 내러티브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으로 작용하여, 실제로 정부의 무능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는 무능하다'는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 유능하고 사명감 있는 인재들이 공공 부문으로 진출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또한, 정부 예산이 지속적으로 삭감되고 핵심 기능이 민간에 아웃소싱되면서, 정부는 자체적으로 문제를 기획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점차 상실하게 된다. 역량이 약화된 정부는 실제로 실수를 저지르거나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고, 이는 다시 '역시 정부는 무능하다'는 기존의 편견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따라서 마추카토의 주장단순히 '큰 정부'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정부가 '유능한 가치 창조자'가 될 수 있도록 자신감과 역량을 재건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처방에 가깝다.

 

9장. 희망의 경제학을 향하여


책의 마지막 장에서 마추카토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며, 가치 착취가 아닌 가치 창조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경제, 즉 '희망의 경제학'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① 결과로서의 시장: 시장은 자연 발생적이거나 신성불가침한 존재가 아니다. 시장은 법, 제도, 규제, 사회적 합의 등 우리가 어떻게 설계하고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지는 '결과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장을 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재설계할 수 있다.
② 사명 지향적 경제(Mission-Oriented Economy): 정부는 사회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담대한 목표(예: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달성, 치매 정복, 디지털 격차 해소 등)를 '사명'으로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공공과 민간의 모든 역량을 한 방향으로 결집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산업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는 마치 1960년대 미국이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아폴로 프로젝트를 통해 수많은 혁신 기술을 창출했던 것과 같다.
③ 공생의 자본주의: 진정한 가치 창조는 특정 주체의 단독 활동이 아닌, 노동자, 기업,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집단적 노력의 산물이다. 따라서 가치 창조 과정에서 발생한 보상 역시 리스크와 기여도에 따라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공정하게 공유되는 '공생의 자본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마추카토가 제안하는 '희망의 경제학'은 경제를 '제로섬 게임'이 아닌, 공동의 목표를 통해 '파이 자체를 키우는 포지티브섬 게임'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이다. 기존 경제학은 한정된 자원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할 것인가(분배)에 대한 경쟁적 관점이 강했다. 반면, 마추카토는 '사명'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경쟁의 방향을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녹색 전환'이라는 사명 아래, 기업들은 서로 더 효율적인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선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시장과 산업이 창출되고(파이가 커짐), 그 결과는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에 기여하게 된다. 이는 경제 활동의 패러다임을 개인의 이익을 위한 '분배 투쟁'에서 공동의 가치를 위한 '협력적 창조'로 전환하려는 근본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용어 해설]


• 가치 창조 (Value Creation) vs 가치 착취 (Value Extraction): 마추카토 이론의 핵심 개념. '가치 창조'는 노동, 기술, 자원 등을 결합하여 사회에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반면, '가치 착취'는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이미 존재하는 가치를 이전시키거나(예: 금융 거래 수수료)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예: 특허 남용) 행위를 뜻한다.
• 지대 (Rent): 생산 활동에 대한 기여 없이, 토지나 자산의 소유 또는 특허, 독점적 지위 등을 통해 얻는 불로소득. 고전 경제학자들은 이를 비생산적인 소득으로 간주하고 비판했다.
• 금융화 (Financialization): 국민 경제 전반에서 금융 시장, 금융 기관, 금융 엘리트들의 규모와 영향력이 실물 경제 부문을 압도할 정도로 비대해지는 현상. 경제의 단기주의와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 주주가치 극대화 (Maximizing Shareholder Value, MSV): 기업 경영의 최우선 목표를 단기적인 주가 상승과 배당 등 주주의 이익 증대에 두어야 한다는 경영 철학. 1980년대 이후 널리 퍼졌다.
• 기업가형 국가 (The Entrepreneurial State): 정부가 단순히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소극적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높은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기초 연구 등에 장기 투자함으로써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창출하는 적극적이고 기업가적인 주체라는 마추카토의 핵심 이론.
• 공공선택론 (Public Choice Theory):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경제학의 방법론(합리적 선택, 효용 극대화)으로 분석하는 이론. 정치인과 관료 역시 공익이 아닌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가정하며, 이로 인한 '정부 실패'의 가능성을 경고한다.
• 공정한 세상 가설 (Just-world Hypothesis): 세상은 근본적으로 공정하며, 따라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행동에 마땅한 결과를 얻는다고 믿으려는 인지 편향. 이 믿음은 사회적 불평등이나 피해자의 고통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 기본적 귀인 오류 (Fundamental Attribution Error): 다른 사람의 행동을 설명할 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적 요인의 영향은 과소평가하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 등 내적 요인의 영향은 과대평가하는 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