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해석과 이해(구조와 에세이)/책 해석과 이해(철학,사상)

[정의의 한계] '마이클 샌델' '롤스'의 '연고 없는 자아'를 비판하다! 공동체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정의의 모든 논쟁!

by 유미 와 비안 2025. 10. 10.

공동체주의 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정의의 한계』

존 롤스의 『정의론』이 전제하는 '연고 없는 자아'라는 인간관을 비판하며, 왜 정의가 공동체의 '좋은 삶'에 대한 논의와 분리될 수 없는지 논증한다.

 

'정의의 한계' : 마이클 샌델, 롤스의 가면 뒤에 숨겨진 자아를 폭로하다
"칸트적 자유주의(롤스의 이론)가 상상하는 자아는, 그 어떤 목적에도 얽매이지 않고 거리를 둘 수 있는 '연고 없는 자아'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연고적 자아'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자 출세작인 『정의의 한계(Liberalism and the Limits of Justice)』를 통해 이처럼 선언합니다. 이 책은 그의 후속작인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대중을 위한 친절한 입문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20세기 정치철학의 거인 존 롤스의 『정의론』이라는 거대한 성채를, 그 가장 깊숙한 철학적 토대부터 해체하려는 한 편의 치밀하고도 강력한 지적 공격입니다. 샌델의 핵심적인 비판은, 롤스의 '정의' 이론이 결국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연고 없는 자아'¹라는 유령과 같은 인간관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공동체주의'²라는 새로운 철학적 흐름의 시작을 알린, 현대 정치철학의 가장 중요한 논쟁을 담고 있는 필독 고전입니다.

 

정의의 한계 / 마이클 샌델 - 공동체주의, 공동선

 

 

『 정의의 한계 』

 

이 책은 롤스 정의론의 핵심 논리를 따라가며, 그 논리가 전제하고 있는 인간관(자아론)이 어떻게 잘못되었고, 그로 인해 어떤 한계를 갖게 되는지를 4개의 장에 걸쳐 집요하게 파헤칩니다.


• 서론 & 1장 자유주의와 정의의 근원성 & 정의와 도덕의 주체:

샌델은 먼저 자신이 비판하려는 대상을 명확히 합니다. 그것은 바로 '좋음(the Good)'보다 '옳음(the Right)'이 우선한다고 주장하는 '의무론적 자유주의'³이며, 존 롤스는 그 최고의 대표자입니다.
롤스 이론의 핵심은 '무지의 베일' 뒤에서 이루어지는 합리적 선택입니다. 샌델은 이 선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선택을 하는 '자아'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묻습니다. 그 자아는 자신의 가치관, 공동체, 역사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마치 선반 위의 물건을 고르듯 자신의 인생 목표를 '선택'할 수 있는, 완벽하게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여야 합니다. 샌델은 이처럼 자신의 정체성과 목적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추상적인 자아를 '연고 없는 자아(unencumbered self)'¹라고 부르며, 이것이 롤스 이론의 가장 근본적인 아킬레스건이라고 지적합니다.


• 2장 소유, 공적, 분배의 정의:

샌델은 롤스의 이러한 독특한 자아론이 어떻게 그의 '차등의 원칙'으로 이어지는지 분석합니다. 롤스는 우리가 가진 재능이나 능력이 우연한 '자연적 복권'의 결과일 뿐, 우리가 도덕적으로 그것을 '소유'하거나 그 결과물을 '누릴 자격(moral desert)'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우리의 재능은 '나'라는 존재의 본질이 아니라, 내가 우연히 가진 '소유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동체는 이 '공동의 자산'을 최소 수혜자를 위해 재분배할 권리가 있습니다.
샌델은 이 주장이 우리의 상식적인 도덕 직관(노력과 재능에 따라 보상받을 자격이 있다는)과 충돌하며, 개인의 정체성을 너무나 빈약하게 만든다고 비판합니다.


• 3장~4장 계약 이론과 정당화 & 정의와 선:

롤스에게 '정의'는 우리가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는지, 어떤 '좋은 삶(the Good)'을 추구하는지와 무관하게, 중립적인 '옳음(the Right)'의 원칙으로서 가장 우선적인 가치를 가집니다. 하지만 샌델은 이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연고 없는 자아'들로 구성된 사회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는 '도구적 공동체'이거나, 혹은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는 '정서적 공동체'일 수는 있어도, 공동의 정체성과 목적을 공유하는 진정한 의미의 '구성적 공동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자아)를 정의하는 것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가치와 역사(좋음)인데, 롤스는 이 둘을 분리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 결론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

결론적으로 샌델은, '옳음'이 '좋음'에 우선한다는 롤스적 자유주의의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연고 없는 자아'가 될 수 없으며,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이야기와 분리될 수 없는 '연고적 자아(encumbered self)'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의는 결코 공동체의 '좋은 삶'에 대한 논의로부터 중립적일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논의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의의 한계'입니다.

 

 

주석 (용어 해설)


¹ 연고 없는 자아(Unencumbered Self) vs. 연고적 자아(Encumbered Self): 샌델의 핵심 개념. '연고 없는 자아'는 자신의 가치, 목적, 공동체를 모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보는, 자유롭지만 고립된 자아상(롤스의 인간관). 반면, '연고적 자아'는 자신이 태어난 가족, 공동체, 국가의 역사와 전통에 의해 정체성의 일부가 이미 '구성되어' 있으며, 그로부터 비롯된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고 보는 자아상(샌델의 인간관).
²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유주의에 반대하여, 개인의 정체성이 공동체 속에서 형성되며, 따라서 공동체의 전통, 가치, 그리고 '공동선'이 정의를 논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철학. 샌델, 찰스 테일러, 마이클 월저 등이 대표적이다.
³ 의무론적 자유주의(Deontological Liberalism): 결과(행복, 효용)보다 행위의 동기나 보편적 원리, 즉 '옳음(the Right)'을 우선시하는 칸트의 윤리학(의무론)에 기반한 자유주의. 샌델은 롤스의 정의론을 그 대표적인 예로 본다.

 

『 정의의 한계 』구조적 해석


• 정치철학적 관점:   

이 책은 1980년대 영미 정치철학계를 뒤흔든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의 포문을 연 기념비적인 저작입니다. 샌델은 롤스로 대표되는 자유주의가 개인을 공동체로부터 고립된 추상적인 존재로 상정함으로써, 정치의 핵심인 공동체적 연대와 시민적 덕성의 가치를 파괴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는 정의의 논의가 '중립적인 권리'의 문제를 넘어, '우리는 함께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공동선'의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자아론(철학적 인간학)적 관점: 

이 책은 정치철학서 이전에, '자아란 무엇인가'를 묻는 깊은 형이상학적, 철학적 인간학 텍스트입니다. 샌델의 핵심 논증은 정치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가 전제하는 '인간관'을 겨냥합니다. 그는 롤스의 '연고 없는 자아'가 심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빈곤한 자아상이라고 비판하며,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가 속한 이야기와 역사 속에서 구성된다는 '서사적 자아(narrative self)' 개념을 제시합니다.


• 윤리학적 관점: 

샌델'옳음이 좋음에 우선한다'는 의무론적 윤리학(칸트, 롤스)의 근본 전제에 도전합니다. 그는 어떤 행위가 '옳은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좋은 삶'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정의의 문제를 다시금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덕 윤리(virtue ethics)'와 '목적론'의 장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입니다.


• 심리학적 관점: 

샌델의 '연고적 자아' 개념은 롤스의 '연고 없는 자아'보다 훨씬 더 심리학적으로 현실적인 인간 모델을 제시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심리학의 '사회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즉, 한 개인의 자아 개념은 자신이 속한 집단(가족, 민족, 국가)과의 강한 유대감과 소속감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샌델이 강조하는 '충성의 의무'나 '연대감'은 바로 이러한 집단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강력한 심리적 현실입니다.

 

『 정의의 한계 』거미인간(호모 넥서스)

마이클 샌델의 『정의의 한계』는 '거미인간(호모 넥서스)'에게, 존 롤스가 그린 그물(사회)의 설계도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고 있는지 폭로하는 책입니다. 롤스는 거미들이 그물을 짜기 이전, 즉 어떤 '연결'도 없는 '연고 없는' 상태에서 그물의 규칙을 정한다고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샌델은, 거미는 결코 그물 밖에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거미는 이미 특정 그물(공동체) 안에서, 특정 실(역사, 문화)의 일부로 태어나는 '연고적 존재'입니다. 거미의 정체성은 바로 그가 그물 안에서 맺고 있는 '연결'들의 총합입니다. 따라서 그물의 규칙(정의)을 정하는 것은, 모든 연결을 끊고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속해 있는 이 그물의 역사와 목적('좋음')을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이 그물을 더 좋은 그물로 만들어갈 수 있을지 다른 거미들과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정의의 한계 』비판과 논쟁

샌델의 공동체주의적 비판은 자유주의에 대한 중요한 성찰을 제공했지만, 자유주의 진영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강력한 반론에 직면했습니다.


• 롤스에 대한 오독: 롤스 지지자들은 샌델이 롤스의 '원초적 입장'을 존재론적인 '자아론'으로 오독했다고 비판합니다. '연고 없는 자아'는 인간 본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주장이 아니라, 단지 '정의'에 대해 공정하게 생각하기 위한 '대표의 장치'이자 가상적인 '사고 실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 공동체주의의 위험성 (다수의 횡포): 샌델이 강조하는 '공동선'과 '공동체의 가치'는, 다수가 자신들의 가치(특정 종교, 특정 생활 양식)를 '공동선'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에게 강요하는 '다수의 횡포'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크다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의 가장 큰 우려입니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습니다.


• 도덕적 상대주의: 만약 정의가 각 공동체의 고유한 가치와 전통에 기반한다면, 다른 공동체의 비인간적인 관습(예: 명예 살인, 여성 할례)에 대해 우리는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공동체주의는 보편적인 인권의 기준을 약화시키는 '도덕적 상대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비판입니다.


• 구체적인 대안의 부재: 샌델은 롤스의 자유주의를 해체하는 데는 매우 뛰어나지만, 그의 '공동선 정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와 정책을 통해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함께 읽어야 할 책


『정의론』 (존 롤스 저, 황경식 옮김, 이학사, 2003) 샌델의 비판의 핵심 대상이자, 20세기 정치철학의 가장 위대한 성취입니다. 샌델이 비판한 '연고 없는 자아'와 '옳음의 우선성'이 무엇인지 원전을 통해 직접 확인하며, 샌델의 비판이 과연 타당한지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 자유주의』 (존 롤스 저, 장동진 옮김, 동명사, 2004) 샌델을 포함한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에 대한 존 롤스 자신의 응답입니다. 롤스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여, '정의론'이 형이상학적 인간관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적' 합의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덕의 상실』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저, 이진우 번역, 문예출판사, 2021)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의 대표작입니다. 그는 계몽주의 자유주의가 어떻게 도덕의 공동체적 기반을 파괴하고 현대 사회를 도덕적 혼란에 빠뜨렸는지 진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