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식' 교수가 해설하는 존 롤스의 『정의론』
'무지의 베일'과 '정의의 두 원칙'이라는 핵심 개념을 통해, 자유주의적 평등 사회의 철학적 토대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최고의 입문서.
'존 롤스 정의론' : 황경식, 무엇이 정의로운 사회인가에 대한 가장 위대한 질문
"만약 당신이 어떤 사회의 규칙을 정해야 하는데, 당신이 그 사회에서 부자로 태어날지 가난한 자로 태어날지, 남성일지 여성일지, 건강할지 아닐지 전혀 모르는 '무지의 베일' 뒤에 있다면, 당신은 어떤 규칙을 선택하겠는가?"
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바로 이 강력한 사고 실험을 통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내세운 공리주의가 지배하던 철학계에 거대한 지각 변동을 일으켰습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황경식 명예교수의 책 『존 롤스 정의론』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롤스의 원전 『정의론』의 핵심 사상을 가장 명확하고 깊이 있게 해설하는 최고의 안내서입니다. 이 책은 롤스가 어떻게 '공정으로서의 정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정의의 두 원칙'을 통해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는지, 그리고 그의 사상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 존 롤스 정의론 』
이 책은 왜 지금 정의가 중요한지 그 배경을 설명하고, 롤스 정의론의 핵심 개념인 '공정으로서의 정의'와 '정의의 두 원칙'을 상세히 해부하며, 마지막으로 롤스 이후의 논쟁과 실천적 함의를 조망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1장~2장 왜 ‘정의’인가? 최소 수혜자 배려
황경식 교수는 먼저 롤스가 왜 '정의'를 다시금 철학의 중심으로 가져왔는지 그 배경을 설명합니다. 당시 서구 사회를 지배하던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권리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롤스는 이에 맞서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1덕목"이라고 선언합니다. 아무리 효율적이고 부유한 사회라도, 그것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개선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회의 정의로움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 사회에서 가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최소 수혜자(the least advantaged)'의 처지가 어떠한가에 달려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이론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 3장 공정으로서의 정의와 정의의 두 원칙
이 책의 심장부로, 롤스 정의론의 핵심적인 두 개념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1. 공정으로서의 정의 (Justice as Fairness):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의 원칙을 어떻게 도출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라는 가상적인 상황을 설정합니다. 이곳에서 합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가리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을 쓰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재능, 재산, 성별, 인종, 종교, 가치관 등 모든 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자신이 사회의 최하층으로 태어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모든 사람의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고 사회적 약자를 최대한 배려하는 원칙에 합의할 것이라고 롤스는 논증합니다.
2. 정의의 두 원칙: 이 원초적 입장에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정의의 원칙에 합의하게 됩니다.
제1원칙 (평등한 자유의 원칙):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사한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기본적 자유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사상, 양심, 언론, 선거의 자유 등)
제2원칙 (차등과 기회균등의 원칙):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 차등의 원칙(the difference principle): 그 불평등이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
-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fair equality of opportunity): 그 불평등의 계기가 되는 직위와 직책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롤스는 이 두 원칙 사이에 '축차적 서열'이 있어, 어떤 경우에도 제1원칙(자유)이 제2원칙(평등) 보다 우선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사회 전체의 부를 늘리기 위해 개인의 기본적 자유를 희생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 4장~5장 깊이 읽기와 반향:
황경식 교수는 롤스의 이론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반성적 평형', '정치적 정의관'과 같은 보충 개념들을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롤스의 『정의론』 출간 이후 벌어진 거대한 철학적 논쟁, 즉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로버트 노직)의 비판과, 공동체의 전통과 가치를 강조하는 공동체주의(마이클 샌델)의 비판을 소개하며, 롤스 이론의 현대적 의미와 실천적 과제를 조망하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 존 롤스 정의론 』구조적 해석
이 책은 정치철학 해설서이지만, 그 내용은 윤리학, 법학, 경제학, 심리학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 정치철학적 관점:
롤스의 『정의론』은 홉스, 로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 저작입니다. 그는 공리주의를 비판하고, 자유주의적 가치(개인의 자유)와 사회주의적 가치(결과의 평등)를 '자유주의적 평등(liberal egalitarianism)'이라는 틀 안에서 조화시키려는 거대한 시도였습니다.
• 윤리학적 관점:
롤스의 이론은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학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결과(최대 행복)를 중시하는 공리주의와 달리, 롤스는 결과와 무관하게 모든 인간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원칙, 즉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지의 베일'은 칸트의 '정언명령'(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을 절차적으로 구현한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 법철학 및 헌법학적 관점:
롤스의 '정의의 두 원칙'은 현대 복지국가 헌법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합니다. '평등한 자유의 원칙'은 기본권 보장의 근거가 되며, '차등의 원칙'과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은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 심리학적 관점: 인지 편향의 제거 장치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고 실험은, 인간의 도덕적 판단이 얼마나 자기 자신의 이익에 편향되는지(이기적 편향)를 극복하기 위한 천재적인 심리학적 장치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규칙을 정하게 함으로써, 롤스는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가장 강력한 동기를 오히려 가장 공정한 결과를 도출하는 에너지원으로 역이용했다." - 또한, 최소 수혜자의 처지를 최악의 경우로 상정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차등의 원칙'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악의 결과를 피하려는 인간의 '위험 회피(risk aversion)' 심리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 존 롤스 정의론 』거미인간(호모 넥서스)
존 롤스의 『정의론』은 세상을 복잡하게 연결된 그물로 감지하는 '거미인간(호모 넥서스)'에게, 어떻게 하면 가장 '공정하고 안정적인 그물(사회)'을 직조할 수 있는지 그 설계 원칙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거미인간은 '무지의 베일'이라는 장치를 통해, 자신이 그물의 어느 지점에서 태어날지(어떤 '연결'을 갖고 시작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물의 규칙을 짜야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이때 거미인간은, 자신이 가장 약하고 위태로운 가장자리의 '실'로 태어날 경우를 대비하여, 그물이 끊어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안전장치(제1원칙: 자유)와, 그물의 중심부에서 얻어지는 풍부한 영양분이 가장자리까지 흘러가도록 하는 분배 시스템(제2원칙: 차등의 원칙)을 설계할 것입니다. 롤스의 정의론은, 거미인간에게 진정으로 강한 그물이란 몇 개의 실만 굵고 튼튼한 그물이 아니라, 가장 약한 실 하나까지도 존중하고 배려하는, '연결' 그 자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그물임을 가르쳐줍니다.
『 존 롤스 정의론 』비판과 논쟁
• 자유지상주의의 비판 (로버트 노직): 노직은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를 통해 롤스를 비판합니다. 그는 개인이 자신의 재능을 통해 얻은 결과물에 대해 완전한 소유권을 가지며, '최소 수혜자'를 돕기 위해 부자에게 세금을 걷는 '차등의 원칙'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강제 노동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국가는 오직 개인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최소 국가'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 공동체주의의 비판 (마이클 샌델): 샌델은 『정의의 한계』를 통해, '무지의 베일' 뒤에 있는 고립된 개인이라는 롤스의 인간관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는 인간이 결코 자신의 공동체, 역사, 가치관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연고적 자아(encumbered self)'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공동체의 '좋음(the good)'에 대한 합의 없이, 중립적인 '정의(the right)'의 원칙을 먼저 도출할 수 있다는 롤스의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페미니즘의 비판: 많은 페미니스트 철학자들은 롤스의 이론이 '가족' 내부의 정의 문제나, 여성들이 역사적으로 겪어온 가부장적 억압의 문제를 간과했다고 비판합니다. '원초적 입장'의 합의 당사자들이 주로 '가장(head of household)'을 상정하고 있어, 여성의 특수한 경험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함께 읽어야 할 책
『정의론』 (존 롤스 저, 황경식 옮김, 이학사, 2003) 황경식 교수의 해설서와 함께, 롤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원전입니다. 난해하지만, 현대 정치철학의 가장 위대한 봉우리를 직접 등반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정의의 한계』 (마이클 샌델 저, 이양수 옮김, 로고스, 2008)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며 공동체주의 정치철학의 대표 주자로 떠오르게 된 그의 박사학위 논문입니다. 롤스에 대한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비판서입니다.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로버트 노직 저,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자유지상주의 진영의 가장 체계적인 응답입니다. 롤스와 같은 하버드 동료였던 노직이 왜 '차등의 원칙'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지를 논증하며, '최소 국가'의 정당성을 역설합니다.
『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저,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18) 롤스가 비판하며 넘어서고자 했던 '공리주의'란 무엇인지, 그 가장 세련된 형태를 보여주는 고전입니다. 롤스의 문제의식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