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 고전, '존 롤스'의 『정의론』 제3부 목적론
'정의로운 삶'과 개인의 '좋은 삶'이 어떻게 일치할 수 있는지, 도덕 심리학과 합리적 선택 이론을 통해 증명하며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정의론 제3부 목적론' : 존 롤스, 정의로운 삶은 어떻게 좋은 삶이 되는가
제1부 "원리론"에서 정의로운 사회의 청사진(정의의 두 원칙)을 그렸고, 제2부 "제도론"에서 그 청사진으로 헌법과 경제, 시민 사회라는 집을 지었다면, 마지막 제3부 "목적론"에서 존 롤스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답합니다. "과연 사람들은 이 정의로운 집에서 살고 싶어 할까? 그리고 그 집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 개인의 '좋은 삶'과 과연 일치할 수 있을까?"
제3부는 롤스의 이론이 단지 이상적인 제도 설계에 그치지 않고, 인간 본성과 심리에 깊이 부합하는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공동체임을 증명하려는, 그의 철학적 여정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그는 '정의로운 것(the Right)'과 '좋은 것(the Good)'이 서로 일치함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정의론이 어떻게 인간의 합리성과 도덕성을 모두 만족시키는지를 논증합니다

『 정의론 』 제3부 목적론
제3부 목적론은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정의하고(7장), 사람들이 어떻게 '정의감'을 배우게 되는지 그 심리적 과정을 설명하며(8장), 최종적으로 '정의로운 삶'이 곧 '좋은 삶'임을 증명(9장)합니다.
• 제7장 합리성으로서의 선: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롤스는 먼저 '좋음(good)'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만의 이론을 제시합니다. 그에게 '좋은 삶'이란, 한 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환경을 고려하여 세운 '합리적인 인생 계획(rational plan of life)'을 성공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심리학적 원리로 '아리스토텔레스적 원칙(Aristotelian Principle)'을 제시합니다. 이는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숙달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그 능력이 더 복잡하고 정교해질수록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모든 '좋은 삶'의 가장 필수적인 전제 조건으로, 자기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자신의 인생 계획을 추구할 자신감을 갖는 것, 즉 '자존감(self-respect)'을 가장 중요한 '기본 가치'로 꼽습니다.
• 제8장 정의감: 우리는 어떻게 정의를 배우는가
이 장에서 롤스는 심리학자가 되어,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회('질서 정연한 사회')에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정의감(a sense of justice)'을 학습하고 내면화하는지 그 과정을 3단계의 도덕 발달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1. 권위에 의한 도덕: 어린아이가 자신을 사랑해 주는 부모를 신뢰하고 그들의 명령을 따르면서 최초의 도덕 감정을 배웁니다.
2. 공동체에 의한 도덕: 아이가 성장하여 학교나 동아리와 같은 여러 공동체에 참여하면서, 동료들과의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훌륭한 학생', '좋은 팀원'으로서의 역할 규범을 배웁니다.
3. 원리에 의한 도덕: 마지막으로, 시민들은 자신과 동료 시민들이 정의로운 제도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음을 깨닫고, 그 제도 자체와 그 기저에 있는 '정의의 원칙'에 대한 애착과 충성심을 발달시킵니다. 이제 사람들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 아니라, 추상적인 '정의의 원리'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게 됩니다.
• 제9장 정의는 선인가: 정의와 좋음의 일치
마지막 장에서 롤스는 이 책의 최종적인 논증, 즉 '정의로운 것'과 '좋은 것'의 일치(congruence)를 증명합니다.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합리적인 개인에게, '정의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과연 자신의 '좋은 삶'에도 부합하는가?
롤스의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왜냐하면, 정의로운 사회('사회적 연합') 속에서 타인과 협력하고 정의의 원칙을 실현하며 사는 것은, 고립된 개인이 결코 누릴 수 없는 더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원칙'의 가장 완전한 실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의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우리가 '무지의 베일' 뒤에서 스스로 선택했던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므로, 우리의 본성인 '자유롭고 평등한 합리적 존재'로서의 자율성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하는 길입니다. 따라서 정의로운 삶은 우리의 '좋은 삶'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일부가 됩니다.
『 정의론 』 제3부 목적론 - 구조적 해석
• 도덕 심리학 및 발달 심리학적 관점:
제3부, 특히 8장은 도덕 심리학의 중요한 기여입니다. 롤스가 제시하는 3단계 도덕 발달 이론은 피아제나 콜버그의 도덕 발달 이론과 직접적으로 대화하며, 사회계약론적 관점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하고 '정의감'을 형성하는지 그 심리적 과정을 정교하게 설명합니다.
• 정치철학적 관점:
이 부분은 롤스 이론의 '안정성(stability)' 문제를 다루는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아무리 이상적인 제도라도, 사람들이 그 제도를 따를 내적인 동기가 없다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정의와 좋음의 일치' 논증은, 롤스의 정의로운 사회가 단지 철학적으로 정당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심리적 지지를 통해 현실적으로도 안정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 시도입니다.
• 사회학적 관점:
롤스가 제시하는 '질서정연한 사회'와 '사회적 연합들의 사회적 연합'이라는 개념은 사회학의 중요한 이상형(ideal type)입니다. 이는 단순한 이익 집단을 넘어, 공유된 정의의 원칙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어떻게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사회적 연대가 가능한지 그 모델을 제시합니다.
• 심리학적 관점:
'아리스토텔레스적 원칙'은 인간의 동기 부여에 대한 중요한 심리학적 가설입니다. 이는 인간이 단순히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복잡한 과제를 숙달하는 과정에서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는 '자기실현'의 욕구를 강조합니다. 또한, '자존감'을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본 가치로 설정한 것은, 현대 심리학이 강조하는 자존감의 중요성을 철학적으로 예견한 것입니다.
『 정의론 』 제3부 목적론 - 거미인간(호모 넥서스)
존 롤스의 『정의론』 제3부는 '거미인간(호모 넥서스)'에게, 공정하게 짜인 그물(정의로운 사회)이 어떻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별 거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왜 거미들이 자발적으로 그 그물을 유지하려 하는지 그 내면의 동력을 설명합니다. '정의감'은 거미인간이 그물 전체의 건강과 안녕을 자신의 안녕처럼 느끼게 되는, '연결'의 내면화된 감각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원칙'은, 거미가 더 복잡하고 정교한 그물을 짜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본성을 의미합니다. 롤스의 최종적인 '일치 논증'은, 거미인간에게 그물 전체의 규칙(정의)을 지키며 다른 거미들과 협력하는 것이, 고립된 상태에서는 결코 펼칠 수 없었던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가장 아름다운 그물을 짜는 길(좋은 삶)임을 보여줍니다. 즉, 건강한 그물과 건강한 거미는 분리될 수 없다는 '호모 넥서스'의 궁극적인 시너지입니다.
『 정의론 』 제3부 목적론 - 비판과 논쟁
제3부의 '일치 논증'은 롤스 이론의 완성을 위한 중요한 부분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일치 논증'의 실패 가능성: 많은 비평가들은 롤스가 '정의로운 것'과 개인의 '좋은 것'이 항상 일치한다고 증명하는 데 궁극적으로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정의로운 사회라 할지라도, 개인의 합리적인 인생 계획이 때로는 정의의 요구와 충돌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왜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고 정의를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완벽한 답변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롤스 자신도 훗날 이 논증의 한계를 인정하고,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이 부분을 수정합니다.
• 이상적인 도덕 심리학: 롤스가 제시하는 3단계 도덕 발달 이론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상적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의 도덕적 태도는 이처럼 깔끔한 단계를 따르기보다, 감정, 편견, 소속 집단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같은 비합리적인 요인에 의해 훨씬 더 크게 좌우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조너선 하이트 등).
• '질서정연한 사회'라는 비현실적인 가정: 제3부의 모든 논증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이미 롤스의 정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질서 정연한 사회'를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가치관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다원주의 사회'입니다. 이 비현실적인 가정 때문에 그의 안정성 논증이 현실 설명력을 잃는다는 비판입니다.
함께 읽어야 할 책
『정치적 자유주의』 (존 롤스 저, 장동진 옮김, 동명사, 2004) 롤스 자신이 『정의론』, 특히 제3부의 한계를 인정하고, '질서정연한 사회'가 아닌 '다원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안정적인 합의가 가능한지 그 논리를 수정한 후기 대표작입니다. 『정의론』 이후의 롤스를 만나기 위한 필수 코스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저, 김명철 옮김, 와이즈베리, 2014)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비판(공동체주의)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샌델은 롤스의 사고 실험을 비판하며, 정의는 공동체의 '좋음(선)'과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로버트 노직 저,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자유지상주의 진영의 가장 체계적인 응답입니다. 롤스와 같은 하버드 동료였던 노직이 왜 '차등의 원칙'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지를 논증하며, '최소 국가'의 정당성을 역설합니다.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저, 왕수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4) 롤스의 합리주의적 도덕 심리학에 대한 가장 강력한 현대적 도전입니다. 사회심리학자인 하이트는 도덕적 판단이 이성이 아닌 '직관'과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수많은 실험을 통해 증명하며, 롤스와는 전혀 다른 그림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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