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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해석과 이해(구조와 에세이)/책 해석과 이해(경제,전략)

[격차] '제이슨 히켈' - 만들어진 빈곤'의 역사와 탈성장의 정치경제학

by 유미 와 비안 2025. 11. 13.

'제이슨 히켈'(Jason Hickel)의 『격차(The Divide)

신식민주의의 작동 방식, 핑커/로슬링 논쟁 팩트체크, 그리고 '호모 넥서스'로 본 불평등의 미래

 

 

총평


제이슨 히켈의 『격차』"세계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주류의 안일한 낙관론에 맞서, 글로벌 불평등의 '역사적 기원'과 '현재적 메커니즘'을 통렬하게 고발하는 강력한 '반-내러티브(counter-narrative)'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기여는, 흩어져 있던 종속 이론, 신식민주의 비판, 그리고 탈성장론을 '격차'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집대성하여,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만들어' 왔는지 그 작동 원리를 폭로한 것입니다. 특히 '원조'의 위선을 폭로하고 '정의'라는 근본적 해결책을 요구하는 저자의 도덕적 명료함은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물론, 이 책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히켈은 '무엇(What)'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탁월한 '진단'을 내리지만, '어떻게(How)'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처방'은 상대적으로 빈약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탈성장'과 'IMF의 민주화' 같은 대안들은, 그가 책 전반에 걸쳐 그토록 강력하게 묘사한 기존 권력 구조(가상 원로원)의 저항을 이겨낼 구체적인 정치적 로드맵이 부재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차』는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계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토대 위에 서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풍요가 누구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는지를 직시하게 만드는 '불편한 진실'의 교과서입니다. 홍기빈 교수의 해제처럼, 이 책은 자본주의의 민낯과 불평등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표준적인 저작'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격차 / 제이슨 히켈 - 빈곤의 역사와 탈성장

 

격차(The Divide)

 

제이슨 히켈(Jason Hickel)의 『격차(The Divide)』는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우리가 상식처럼 받아들여온 통념을 송두리째 뒤집는 도발적인 진단서입니다. 이 책은 현재의 불평등이 자연 발생적이거나 역사적 필연이 아니라, 지난 500년간의 식민주의와 현재 작동 중인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격차'임을 방대한 데이터와 역사적 사실을 통해 고발합니다.


들어가며 | 만들어진 격차


히켈은 서문에서부터 우리가 '개발(development)' 또는 '원조(aid)'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거대한 산업의 위선을 지적합니다. 1949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취임 연설에서 처음 등장한 '저개발(underdeveloped)'이라는 용어는, 사실상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이하 '글로벌 사우스')를 서구의 개입이 필요한 대상으로 규정짓는 정치적 발명이었습니다.
히켈은 이 '개발'이라는 신화가 어떻게 현실을 왜곡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가장 널리 알려진 통계의 착시부터 해체합니다.


[팩트체크 1: 빈곤선의 통계 조작]


세계은행(World Bank)과 같은 국제기구는 '극단적 빈곤'이 극적으로 감소했다고 선전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기준선은 하루 $1.90 (약 2,500원)입니다. 히켈은 이 기준선이 인간이 기본적인 영양을 섭취하고 정상적인 기대 수명을 유지하는 데 터무니없이 부족한, 사실상 '기아선'에 가깝다고 비판합니다. 그는 더 현실적인 '윤리적 빈곤선'으로 최소 $5 혹은 $10를 제시하며,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세계 빈곤 인구는 지난 수십 년간 전혀 줄지 않았거나, 오히려 $10 기준으로는 10억 명 이상 증가했음을 폭로합니다.
즉, 히켈은 "빈곤이 줄었다"는 주장이 빈곤을 측정하는 '자'의 길이를 인위적으로 줄였기 때문에 가능한 통계적 착시일 뿐이며, 진짜 문제는 빈곤의 절대 수치가 아니라 '격차' 그 자체라고 선언합니다.


1부. 거대한 격차


1부에서 히켈은 '개발'이라는 신화가 어떻게 글로벌 사우스의 현실을 은폐하는지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논증합니다.


• 1장. 개발이라는 이름의 속임수: '개발'은 자선 사업이 아니라, 식민주의 종식 이후에도 글로벌 사우스를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시키고 통제하기 위한 지정학적 프로젝트였습니다. 
• 2장. 빈곤의 종식은… 연기되었다: 저자는 '빈곤 감소'의 성과로 포장되는 MDGs(새천년개발목표)나 SDGs(지속가능발전목표)의 허상을 지적합니다. 빈곤 '비율'이 일부 감소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대부분 '중국'의 독자적인 국가 주도 발전의 결과일 뿐입니다. 정작 '격차'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1960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의 1인당 소득 격차는 32배였으나, 2000년대에 들어 이 격차는 134배로 벌어졌습니다.


2부. 폭력의 역사


2부에서 히켈은 이 거대한 격차가 "언제부터, 왜" 시작되었는지 그 역사적 기원을 추적합니다. 그는 격차의 기원이 기술이나 문화의 차이가 아닌, 명백한 '폭력'과 '약탈'에 있음을 단언합니다.


• 3장. 빈곤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1500년대, 즉 식민주의 시대가 열리기 직전까지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간의 생활 수준이나 기대 수명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일부 지표(기대 수명 등)는 오히려 아시아가 유럽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 4장. 식민주의에서 쿠데타로: '격차'는 1500년대 이후 시작된 유럽의 식민지 팽창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o 아메리카 대륙: 유럽인의 유입과 강제 노동으로 원주민 인구가 7,500만에서 350만으로 급감하는 '대량 학살'이 발생했습니다.
o 아프리카: 노예 무역을 통해 약 1,500만 명의 노동력이 강제로 이동했으며, 이들이 창출한 강제 노동의 가치는 현재 가치로 환산 시 약 97조 달러에 달합니다.
o 아시아: 영국은 인도에서 수조 달러에 달하는 부를 유출시켰으며, 중국과의 '아편 전쟁'을 통해 강제로 시장을 개방하고 부를 약탈했습니다.


히켈은 유럽의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의 '발명' 덕분이 아니라, 식민지에서 약탈한 막대한 자본과 '생태학적 횡재(ecological windfalls)' 덕분에 가능했다고 재해석합니다. 즉, 글로벌 노스(North)의 '발전'은 글로벌 사우스(South)의 '저발전'을 대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3부. 새로운 식민주의 (Neocolonialism)


이 책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식적인 식민주의는 종식되었지만, '격차'는 어떻게 더욱 심화되었는가? 히켈은 '신식민주의'라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음을 폭로합니다.


• 5장. 부채, 그리고 계획된 비참함의 경제학: 1970~80년대, 글로벌 노스의 은행들은 오일 쇼크 등으로 넘쳐나는 자본을 글로벌 사우스의 독재 정권 등에게 무분별하게 대출해 주었습니다. 이후 1980년대 초 미국이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자,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연쇄적으로 '부채 위기'에 빠집니다. 이 '부채'는 글로벌 사우스를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족쇄가 되었습니다.  1980년 이후 사우스가 노스에 지불한 '이자' 총액만 4조 2천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원금을 훨씬 초과하는 금액입니다.


• 6장. 자유무역과 가상 원로원의 부상: 부채를 갚기 위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IMF와 세계은행(히켈은 이들을 '가상 원로원'이라 부름)의 '구조조정 프로그램(SAPs)'을 강제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SAPs의 내용명확했습니다. 공공자산(물, 전기, 통신 등)의 민영화, 의료 및 교육 예산 삭감, 그리고 '자유무역'을 위한 시장 전면 개방이었습니다. 
이 '자유무역'의 실체는 '불평등 교환(Unequal Exchange)'입니다. 글로벌 노스는 강력한 기술력과 지적 재산권을 무기로 비싼 공산품을 수출하는 반면, 글로벌 사우스는 SAPs로 인해 자국의 산업 기반이 무너진 채 저임금 노동력과 값싼 원자재를 헐값에 수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팩트체크 2: 불평등 교환의 규모]


히켈은 1990년대 중반, 이러한 불평등 교환으로 인해 글로벌 사우스가 입은 손실(저평가된 노동력과 자원의 가치)이 연간 2조 6,600억 달러에 달했다고 추산합니다.


• 7장. 21세기의 약탈: '격차'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은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글로벌 노스의 다국적 기업들은 조세 도피처를 통해 글로벌 사우스에서 벌어들인 수익의 세금을 회피하며, 이를 통해 발생하는 '불법 자금 유출(Illicit outflows)' 규모는 막대합니다. 또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광활한 토지가 식량 생산이 아닌 바이오 연료나 부유국의 식량 안보를 위해 헐값에 '토지 수탈(Land grabbing)'되고 있습니다.
히켈이 3부에서 최종적으로 폭로하는 것은 '원조의 위선'입니다. 글로벌 노스가 '원조'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사우스에 보내는 금액(연간 약 1,300억 달러)은, 부채 이자, 불법 자금 유출, 불평등 교환 등을 통해 사우스에서 노스로 흘러 들어가는 막대한 부(연간 수조 달러)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결론적으로, 가난한 나라가 부유한 나라를 원조하는 '역(逆)원조(Reverse Aid)'가 현실이며, '원조'는 이 거대한 '약탈'의 흐름을 가리기 위한 연막에 불과합니다.


4부. 격차를 닫기


히켈은 이 절망적인 '만들어진 격차'를 닫기 위한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 8장. 자선에서 정의로: 그는 더 이상 '자선(Charity)'이 아니라 '정의(Justice)'가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가난한 나라들에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그들이 빼앗긴 것을 되돌려줄 '배상'과 '정의'입니다.
• 9장. 상상력을 발휘하려면 조금은 미쳐야 한다: 히켈은 현재의 시스템을 수선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합니다.


1. 부채 탕감: 글로벌 사우스의 모든 부당한 부채를 즉각 탕감해야 합니다.
2. 국제기구 민주화: IMF와 세계은행을 소수 부국이 지배하는 '가상 원로원'이 아니라, 모든 국가가 1국 1표를 행사하는 민주적 기구로 재편해야 합니다.
3. 정의로운 무역: '불평등 교환'을 끝내기 위해 '글로벌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자본 통제를 허용해야 합니다.
4. 탈성장(Degrowth): 이것이 히켈의 가장 급진적이고 궁극적인 제안입니다.

 

히켈은 GDP 성장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불평등과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따라서 그는 글로벌 노스(선진국)가 불필요한 과잉 소비와 생산을 줄이는 '탈성장'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모두가 가난해지자는 것이 아니라, 노스의 '탈성장'을 통해 확보된 생태학적 여력과 자원을 글로벌 사우스가 인간의 기본적 필요(의료, 교육, 주거)를 충족하는 데 사용하도록 '공정하게 재분배'하자는 것입니다.

 

 

(용어)


• 글로벌 사우스 (Global South): 지리적 '남쪽'이라기보다는 정치경제학적 용어입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식민주의를 경험했거나 현재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경제적 불이익을 겪는 국가(과거 '제3세계' 또는 '개발도상국')들을 통칭합니다.
• 신식민주의 (Neocolonialism): (3부 핵심) 국가가 공식적으로는 독립했으나, 경제적(부채, 무역), 정치적(IMF/WB 개입) 수단을 통해 과거 식민 종주국이나 강대국에게 여전히 실질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 신낙관주의 (New Optimism): (논점 1 핵심) 스티븐 핑커, 한스 로슬링 등이 주도하는 사상입니다. 데이터(수명, $1.90 빈곤율 등)를 근거로 "세상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나아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현 자본주의와 세계화 시스템을 옹호하는 입장입니다.
• 탈성장 (Degrowth): (4부 핵심) GDP 성장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경제 모델이 불평등과 생태 위기를 초래한다고 보고, 특히 선진국(글로벌 노스)이 물질적 생산과 소비를 의도적으로 줄여(탈성장), 확보된 자원을 글로벌 사우스와 공정하게 재분배하고 생태적 균형을 회복하자는 경제 철학입니다.
• 구조조정 프로그램 (SAPs; Structural Adjustment Programs): (3부, 5-6장 핵심) 1980년대 IMF와 세계은행이 부채 위기를 겪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강요한 신자유주의 정책 패키지입니다. 공공부문 민영화, 복지 축소, 무역 자유화, 자본 시장 개방 등을 강제했습니다.
• 불평등 교환 (Unequal Exchange): (3부, 6장 핵심)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수출하는 상품(주로 원자재나 저임금 노동력으로 생산된 공산품)의 가치가 글로벌 노스 국가들의 상품(주로 기술 집약적 공산품)에 비해 구조적으로 저평가되어, 무역을 할수록 부(가치)가 사우스에서 노스로 이전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 종속 이론 (Dependency Theory): (4부 핵심) 글로벌 경제가 '중심부'(선진국)와 '주변부'(개발도상국)로 나뉘어 있으며, 주변부는 중심부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당하기 때문에 '저개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 호모 넥서스 (Homo Nexus): (5부 핵심) '선형적 사고'(인과, 위계, 성장, 통제)를 하는 '호모 사피엔스'와 대비되며, '비선형적 사고'(관계, 연결, 감지, 순환, 지속가능성)를 통해 '의미의 그물'을 짜는 새로운 인간형을 지칭합니다. '거미인간'으로 비유됩니다.

 

 

격차(The Divide)』구조적 해석


제이슨 히켈의 『격차』는 표면적으로 정치경제학적 고발서이지만, 그 기저에는 역사학적 재해석과 심리학적 통찰이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적 해석: '신-종속 이론(Neo-Dependency Theory)'의 현대적 재구성


히켈의 논리는 1960~70년대 라틴 아메리카에서 태동한 '종속 이론(Dependency Theory)'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종속 이론은 글로벌 경제가 '중심부(Core, 선진국)'와 '주변부(Periphery, 개발도상국)'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주변부가 중심부에 원료와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며 영구히 종속(착취)된다고 봅니다.
히켈은 이 고전적 이론을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에 맞게 탁월하게 업데이트합니다.


1. '불평등 교환(Unequal Exchange)'의 정교화: 히켈은 단순히 원자재와 공산품의 교환 문제를 넘어, 글로벌 사우스의 '저임금 노동력'이 어떻게 저가 상품에 응축되어 글로벌 노스로 이전되는지를 데이터(연간 $2.66조)로 증명합니다.
2. 새로운 착취 경로의 추가: 그는 고전적 종속 이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부채'라는 금융 메커니즘과 '조세 도피처를 통한 불법 자금 유출'이라는 새로운 약탈의 경로를 추가함으로써, 신식민주의가 얼마나 더 교묘하고 강력하게 작동하는지 입증합니다.


역사학적 해석: '개발' 신화의 해체와 수정주의 역사관


주류 경제사(예: 월트 로스토우)는 '개발'을 모든 국가가 거쳐야 할 보편적, 선형적 단계(전통사회 → 도약 → 성숙)로 그립니다. 그러나 히켈은 이러한 역사관이 식민주의라는 '폭력'을 삭제한 승자의 기록일 뿐이라고 일축합니다.
그는 선진국의 '발전'과 후진국의 '저개발'은 별개의 현상이 아니라, 정확히 동전의 양면임을 주장합니다. 즉, 글로벌 사우스는 '아직(yet)'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노스에 의해 '적극적으로 저지당하고 착취당했기 때문에(actively under-developed)' 현재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강력한 수정주의 역사관을 제시합니다.


심리학적 해석: 격차, 부채, 그리고 박탈의 심리학


이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하는 지점은 히켈의 경제 분석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의 심리와 깊이 연결되는지입니다.


• 부채의 심리학 (The Psychology of Debt):
히켈이 5장에서 묘사하는 국가 부채는 단순한 경제적 장부가 아닙니다. 이는 심리학적 '억압' 기제입니다. '수면 부채(Sleep Debt)'가 만성적으로 쌓이면 신체의 호르몬과 대사 시스템이 망가지는 것처럼 , 국가 부채는 해당 국가의 사회 시스템(교육, 의료, 복지)을 우선적으로 파괴합니다.


더 나아가, 이 부채는 채무국 국민들에게 만성적인 '심리적 스트레스'와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을 유발합니다. '구조조정 프로그램(SAPs)'은 바로 이 스트레스를 이용한 '길들이기' 전술입니다. 채권국(IMF, WB)은 부채 상환을 유예해주는 대가로 국가의 주권을 포기하도록(민영화, 복지 축소) 요구하며, 채무국은 심리적 무력감 속에서 이 부당한 요구에 순응하게 됩니다.


•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의 심리학 (The Psychology of Relative Deprivation):
히켈이 스티븐 핑커 등의 '신낙관주의'를 비판하며 $1.90라는 '절대적 빈곤선'보다 '격차(Divide)' 자체를 강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심리학 및 사회복지학 연구는 개인의 정신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절대적 소득(빈곤선)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박탈(deprivation)', 즉 타인과 비교했을 때 느끼는 '상대적 격차'임을 명확히 증명합니다. 사회경제적 박탈감이 높을수록 우울증, 불안, 고립감은 급격히 증가합니다.


히켈은 '핑커'와 '로슬링'이 '절대적 빈곤' 수치 개선을 내세우며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때, 그 이면에서 '상대적 박탈감'의 폭발적 증가로 인한 전 지구적 정신 건강의 위기가 발생하고 있음을 간과했다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히켈에게 '격차'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51억 명(하루 $10 미만 기준)의 불안과 우울을 야기하는 거대한 '심리적 폭력'입니다.

 

 

격차(The Divide)거미인간(호모 넥서스)


'호모 넥서스(거미인간)'인류 문명을 지배해온 '선형적 사고(Linear Thinking)'와 새롭게 도래할 '비선형적 사고(Non-linear Thinking)'를 대비시킵니다. 제이슨 히켈의 『격차』는 이 두 사고방식이 충돌하는 지점을 정치경제학적으로 가장 날카롭게 포착한 저작입니다. 히켈이 고발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선형적 사고'의 가장 파괴적인 구현체이며, 그가 제시하는 '탈성장'의 비전은 '호모 넥서스'의 철학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1. 히켈이 비판한 자본주의: '선형적 사고'의 파국


'호모 넥서스'는 '선형적 사고'를 "순차적, 인과적"이며, "권력, 위계, 성장, 통제, 환경 파괴"를 특징으로 한다고 정의합니다. 히켈이 『격차』에서 묘사하는 글로벌 경제 시스템은 이 정의에 완벽하게 부합합니다.
• 무한 '성장'과 '통제': 히켈이 비판하는 자본주의의 핵심은 '성장(Growth)' 그 자체를 맹목적인 목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는 '호모 넥서스'가 지적한 "성장은 멈출 수 없는 유일한 목표"라는 선형적 강박과 동일합니다. 이 무한한 직선적 성장을 위해 IMF와 세계은행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사우스를 '통제'합니다.
• '위계'와 '권력': 히켈의 '격차'는 '중심부(노스)'와 '주변부(사우스)'라는 명확한 '위계(Hierarchy)'를 전제로 합니다. '불평등 교환'과 '부채'는 이 위계를 통해 작동하는 '불균형 권력'의 산물입니다.
• '환경 파괴': 히켈은 '격차'가 식민지 시대의 '생태학적 횡재'에서 시작되었으며, 현재의 '기후 위기'로 이어지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는 "채굴→생산→소비→폐기"로 이어지는 '선형 소비 모델'이 낳은 "환경 파괴"의 전형입니다.


2. 히켈의 대안: '호모 넥서스'의 비선형적 설계


히켈이 4부에서 제시하는 대안은 '선형 문명'의 모순을 넘어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려는 '호모 넥서스(거미인간)'의 철학적 지향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호모 넥서스'는 '관계와 연결'로 사고하며, 이는 히켈의 대안에 그대로 투영됩니다.
• '성장'에서 '지속 가능성'으로: 히켈의 핵심 대안인 '탈성장(Degrowth)'은 '호모 넥서스'의 "경제의 재편: 소유에서 순환으로, 성장에서 지속 가능성으로"와 정확히 같은 목표를 제시합니다. 이는 무한한 직선적 성장이 아닌, 지구 생태계와 조화되는 순환적 모델을 요구합니다.
• '서열'에서 '생태(공진화)'로: 히켈이 '자선'이 아닌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주는 자'와 '받는 자'라는 수직적 '서열'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는 '호모 넥서스'의 "서열에서 생태로: 경쟁 → 공진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즉, 불평등한 관계를 해체하고 상호 호혜적인 '생태'를 복원하자는 것입니다.
• '권력'의 재구조화: 히켈이 요구하는 '세계은행/IMF의 민주화'는 '호모 넥서스'의 "권력의 재구조화 - 중앙집중 → 탈중앙 네트워크"와 동일한 맥락입니다. 이는 소수 엘리트(가상 원로원)가 통제하는 선형적 권력을 해체하고, 1국 1표의 분산된 네트워크 권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 '관계의 책임': 히켈의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의'의 요구는, '호모 넥서스'의 윤리인 "존재의 상호성과 관계의 책임"의 실천적 표현입니다. 현재의 부(富)가 과거의 착취에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그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이슨 히켈의 『격차』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선형적 사고' 시스템이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고 격차를 '만들어' 왔는지 고발하는 진단서입니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탈성장'과 '정의'는, '호모 넥서스'가 지향하는 '관계 중심의 비선형적 사고'로 문명을 재설계하자는 근본적인 제안입니다.

 

 

격차(The Divide)』비평


제이슨 히켈의 『격차』는 강력한 고발과 명료한 데이터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의 핵심 주장은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 주장을 두 가지 핵심 논점으로 나누어 논리적으로 검증합니다.


논점 1 (검증):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 (핑커/로슬링) 주장에 대한 히켈의 반박은 타당한가?


결론: 히켈의 반박은 통계적, 역사적, 철학적 맥락에서 매우 타당하며 강력하다.
한스 로슬링(『팩트풀니스』)과 스티븐 핑커(『지금 다시 계몽』)로 대표되는 '신낙관주의(New Optimism)' 진영은 절대적 빈곤율, 기대 수명, 교육률 등의 지표가 극적으로 개선되었으며, 이는 계몽주의, 과학, 그리고 '시장과 세계화'의 승리라고 주장합니다. 히켈은 이 주장이 현실을 호도하는 '신화'라고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반박 근거 1: '빈곤선'이라는 통계의 착시
핑커와 로슬링의 주장은 세계은행의 '극단적 빈곤선'(하루 $1.90)을 기준으로 합니다. 히켈은 이 기준선이 인간의 기본적 생존(최소 칼로리 섭취, 주거 등)조차 불가능한 비현실적 수치임을 지적합니다. 히켈은 더 현실적인 기준인 $5 또는 $10를 적용할 경우, 빈곤 인구는 수십 년간 정체되거나 오히려 증가했음을 폭로합니다. 즉, 핑커 진영은 "세상이 나아졌다"고 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인 측정 기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반박 근거 2: 그래프의 시각적 왜곡
로슬링이 제시하는 유명한 '두 개의 혹' 그래프(세계 소득 분포가 하나의 혹으로 수렴된다는)는 X축(소득)을 선형(Linear)이 아닌 '로그 스케일(Logarithmic scale)'로 표시했습니다.  로그 스케일은 $100와 $1,000의 차이, 그리고 $1,000와 $10,000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동일하게 압축합니다. 이는 부유층의 막대한 소득 증가를 시각적으로 축소시켜, 빈곤층과의 실질적인 '격차'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통계적 착시입니다. 


반박 근거 3: '중국'의 성과를 오독(誤讀)함
핑커와 로슬링은 지난 40년간 빈곤 감소의 가장 큰 성과가 '중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세계화'와 '자유 시장'의 승리로 해석합니다. 히켈은 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중국의 성공은 IMF와 세계은행이 강요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SAPs)'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고 강력한 '국가 주도'의 산업 정책과 점진적 개방을 추진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반박 근거 4: 역사와 생태의 비용을 삭제함
핑커와 로슬링의 데이터는 현재의 부(富)가 어떤 '비용'을 치르고 얻어졌는지 의도적으로 삭제합니다. 히켈은 그들이 식민주의 시대의 폭력적 자본 축적과 현재의 기후 위기라는 '생태학적 파급 효과'를 계산에서 제외한다고 비판합니다.


검증 결론: 이 논쟁은 단순한 '데이터'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이 시스템을 유지해도 괜찮은가?"라는 '도덕적 프레임'의 싸움입니다. 핑커와 로슬링은 현상 유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맥락(역사, 생태)을 제거하고 비현실적인 통계 기준을 사용합니다. 반면 히켈은 역사와 생태라는 더 넓고 정직한 맥락을 포함시키기에 그의 반박은 논리적으로 더 설득력이 높습니다.


논점 2 (비판): 히켈의 대안 '탈성장'은 실현 가능한가?


결론: 히켈의 '진단'은 혁명적이지만, '처방'은 정치적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히켈은 '격차'의 근본 원인이 '자본주의' 그 자체의 성장 강박에 있다고 정확히 진단합니다. 그러나 그가 4부에서 제시하는 대안(부채 탕감, IMF 민주화, 탈성장)은 '어떻게(How)'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치적 로드맵이 부재합니다.


비판 근거 1: 자본주의 시스템의 본질적 속성
비평가들은 히켈이 자본주의의 본질을 간과했다고 지적합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 동력은 '이윤을 위한 무한 성장'입니다. "성장 없는 자본주의"는 사실상 형용모순에 가깝습니다. 히켈은 '더 나은 자본주의' 혹은 '재분배가 강화된 자본주의'를 제안하지만, '성장'을 포기하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비판 근거 2: 정치적 권력의 저항
히켈의 대안이 실현되려면, 현재 시스템의 최대 수혜자인 글로벌 노스의 엘리트들(그가 6장에서 '가상 원로원'이라 부른)이 스스로의 권력을 포기해야 합니다. 히켈은 "부자들의 권력에 맞서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가 책 전반에 걸쳐 그토록 강력하게 묘사한 '가상 원로원'(IMF, WB, G7)이 스스로의 권력 기반(부채, 불평등 교환)을 포기하도록 만들 정치적 전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합니다. 


비판 결론: 히켈의 책은 혁명적인 진단서이지만, 개혁주의적인 처방전을 제시하는 데 그칩니다. 그는 시스템의 '병의 근원'(자본주의의 성장 강박)을 정확히 밝혔지만, 그 '병'을 제거(자본주의 폐지)하는 대신 '증상'(격차, 부채)을 완화하는 처방(탈성장, 재분배)을 제시합니다. 진정한 '탈성장'은 IMF 개혁과 같은 위로부터의 변화가 아니라, '더 간소한 삶(The Simpler Way)'을 지향하는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문화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으며, 히켈은 이 지점까지는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단은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함께 읽어야 할 책


 [지지/확장] 장하준, 『사다리 걷어차기』- 히켈이 6장에서 '자유무역'을 신식민주의의 핵심 도구로 비판하는 지점을 강력한 역사적 사례로 뒷받침하는 저작입니다. 장하준 교수는 현재의 선진국(영국, 미국 등)들이 과거 자신들이 발전할 때는 강력한 보호무역과 국가 개입(관세, 보조금, 산업 정책)을 사용했으면서, 이제 와서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자유무역'이라는 엄격한 규칙을 강요한다고 비판합니다. 이는 마치 자신들이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행위와 같다는 것입니다. 히켈의 '불평등 교환'이 현재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면,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그 메커니즘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정당화되고 강요되었는지 보여줍니다.

 [비판/반론] 스티븐 핑커, 『지금 다시 계몽』- 이 책은 『격차』가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신낙관주의'의 핵심 저작입니다. 핑커는 수명, 건강, 빈곤($1.90 기준), 교육, 평화, 민주주의 등 75개의 그래프를 제시하며, 인류가 이성, 과학, 휴머니즘(즉, 계몽주의)의 힘으로 역사상 가장 진보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역설합니다. 히켈의 『격차』는 바로 이 책에 대한 응답이자 반박서의 성격을 갖습니다. 히켈이 핑커를 비판하는 핵심 근거(빈곤선 통계의 착시, 식민주의와 생태 비용의 삭제 등)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핑커의 원본 주장을 직접 읽어보는 것은 '격차' 논쟁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비교/보완]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히켈과 피케티는 '불평등'의 근원을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서 찾는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하지만 두 저자의 초점은 다릅니다. 히켈이 '글로벌 사우스 vs 노스'라는 국가 간의 격차와 그 역사적 기원(식민주의), 그리고 '생산/착취' 과정(불평등 교환)에 집중한다면, 피케티는 주로 '선진국 내부'의 계급 간 격차(노동소득 vs 자본소득)와 '분배'의 메커니즘(특히 자본수익률 r > 경제성장률 g)에 집중합니다. 히켈이 불평등의 '역사적 기원'을 다룬다면, 피케티는 불평등의 '미래적 매커니즘'(세습 자본주의)을 데이터로 증명합니다.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자본주의가 국내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지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