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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해석과 이해(구조와 에세이)/책 해석과 이해(경제,전략)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제이슨 W. 무어 세계생태론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근본적 한계

by 유미 와 비안 2025. 11. 9.

'제이슨 W. 무어'의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총평 (General Assessment)


제이슨 W. 무어의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는 '인류세' 담론이 주류가 된 시대에, 생태 위기의 역사적, 정치경제학적 책임을 '자본주의'라는 체제로 다시금 정조준한 "대단히 논쟁적인" 역작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학술적 기여는 '사회/자연'이라는 서구 근대의 이원론을 철학적으로 해체하고, 그동안 분리되어 논의되던 생태 맑스주의와 세계체계론을 '세계생태론'이라는 거대하고 통일적인 분석 틀로 통합하려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저렴한 자연' 과 '전유' 개념은, 자본 축적이 어떻게 페미니즘의 핵심 문제(여성의 무급 돌봄 노동) 및 탈식민주의의 문제(주변부 착취)와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탁월하게 밝혔습니다.
물론, 그의 '일원론'적 접근 방식은 '물질대사 균열' 진영으로부터 '맑스주의 가치론의 분석적 엄밀함을 모호하게 만든다'는 타당한 비판을 받고 있으며, 여전히 치열한 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 자신의 규정처럼 "냉정한 정치경제학에 철학이 약간 섞인" 독특한 텍스트로서, 우리 시대의 가장 절박한 문제인 기후 위기가 결국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철학)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음을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실증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생태 위기를 '환경 문제'라는 기술적 영역으로 축소하거나 '인류'의 탐욕이라는 추상적 도덕 문제로 환원하는 모든 시도를 거부합니다. 대신, 생태 위기를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자연 조직 방식'의 총체적 위기로 재정의함으로써, '기후 정의(Climate Justice)' 운동에 가장 강력하고 근본적인 역사적,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는 필독서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그믈 속 자본주의 / 제이슨 W 무어 - 생테위기와 자본제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서론: 이중 내부성 : 자연을 중시하는 역사


무어는 책의 서론에서부터 현대 생태 위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근본적인 '인식론적 오류'를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그 오류란 바로 '사회'와 '자연'을 분리하는 데카르트적 이원론(Cartesian Dualism)입니다.
근대적 사고방식은 자연을 인간 사회의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으로 설정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자연은 자본주의적 생산을 위해 자원을 무한정 공급하는 '수도꼭지(faucet)'이자,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과 폐기물을 흡수하는 '개수대(sink)' 역할로 전락했습니다. 무어는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자신의 재생산 비용(환경 파괴, 자원 고갈)을 '외부화'하고 무한 축적을 정당화할 수 있었던 철학적 토대라고 비판합니다.


이러한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해 무어는 '이중 내부성(Double Internality)'이라는 핵심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는 더 이상 세계를 "자연 및 인류" 또는 "자본주의 와 자연"이라는 분리된 두 실체로 보지 말자는 선언입니다. 대신 그는 "자연-속-인류 / 인류-속-자연" 그리고 "자연을 통한 자본주의 / 자본주의를 통한 자연"으로 사유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 서론은 단순한 머리말이 아니라,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선전포고'입니다. 무어는 생태 위기가 단순히 기술이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존재론(Ontology)'의 문제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실체' 중심의 존재론이 아닌, 모든 것이 관계 맺고 변화하는 '과정' 중심의 존재론을 제안하며, '자본주의'란 '생명의 그물' 속에서 벌어지는 특정한 역사적 '과정'임을 선언합니다.


1부: 이원론에서 변증법으로 : 세계생태로서의 자본주의


1부에서 무어는 서론에서 제기한 이원론 비판을 구체화하여,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자신만의 새로운 이론적 틀인 '세계생태론'을 정립합니다.


• 1장 (대상에서 오이케이오스로): 무어는 데카르트적 '자연'(대상) 개념을 대체할 용어로 '오이케이오스(Oikeios)'를 제시합니다. 이는 그리스어로 '호의적인 장소'를 뜻하며, "인간 자연과 비인간 자연 사이에 맺어지는... 창조적이고 역사적이며 변증법적인 관계"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즉, '오이케이오스'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분리 불가능하게 얽혀 있는 '생명의 그물' 자체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 2장 (생명의 그물 속 가치): 맑스주의의 핵심인 '가치 법칙'을 '생명의 그물(오이케이오스)' 속으로 가져옵니다. 전통적인 맑스주의가 '인간 노동'에서 가치(노동생산성)의 원천을 찾았다면, 무어는 이 노동생산성 자체가 '생명의 그물' 전체가 제공하는 '무급 노동/에너지(unpaid work/energy)'를 '전유(appropriation)'함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음을 논증합니다. 즉, 자본의 가치 축적은 공장에서 지불되는 임금 노동(착취)뿐만 아니라, 가치를 지불하지 않는 자연(원료, 에너지)과 여성(재생산 노동), 식민지(무급 노동)의 막대한 기여(전유)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 3.장 (단일한 신진대사를 향하여): 1부의 결론부입니다. 무어는 '사회'의 신진대사와 '자연'의 신진대사라는 두 개의 분리된 신진대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 등이 주장하는 '물질대사 균열' 이론을 비판하는 대목입니다. '균열(rift)'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사회'와 '자연'이라는 두 개의 분리된 실체를 전제한다는 것입니다. 무어는 오직 '자본주의적 세계생태'라는 '단일한 신진대사(a single metabolism)'만이 존재한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1부는 독자에게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경을 씌우는 과정입니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단순한 '경제 체제'가 아니라, '생명의 그물(Oikeios)'을 특정한 방식(가치 법칙)으로 조직하는 '자연을 조직하는 방법' 으로 재정의됩니다.


2부: 역사적 자본주의, 역사적 자연


2부에서 무어는 1부에서 정립한 '세계생태론'이라는 렌즈를 가지고 지난 500여 년의 자본주의 역사를 다시 읽어냅니다.


• 4장 (생태잉여의 저하 경향): 이 장은 맑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생태학적으로 탁월하게 재해석한 부분입니다. 자본이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노동 착취를 강화하듯, 자본주의는 '생태 잉여(Ecological Surplus)'의 저하 경향을 만회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자연(프런티어)을 찾아 전유해야만 했습니다.


• 5장 (자연의 자본화) & 6장 (세계생태혁명들): 5장과 6장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명의 그물'(Oikeios)을 가치 측정과 축적의 대상으로 '자본화'했는지, 그리고 이 과정이 단선적인 역사가 아니라 주기적인 위기와 혁신을 통해 진행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무어는 네덜란드, 영국, 미국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헤게모니의 교체를 단순한 경제적 순환이 아니라, 기존의 '생태 잉여'가 고갈될 때마다 새로운 '저렴한 자연'을 조직하는 방식을 찾아내는 '세계생태혁명'의 과정이었다고 분석합니다.


3부: 역사적 자연과 자본의 기원


3부는 현 생태 위기의 '시작점'을 규명하며, 이 책의 가장 도발적이고 유명한 주장인 '자본세'를 제시합니다.


• 7장 (인류세인가 자본세인가?): 무어는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용어를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인류세'기후 위기의 책임을 '인류' 전체에게 무차별적으로 돌림으로써, 실제 역사적 책임자인 '자본'과 자본주의 체제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는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최상위 10% 부자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지만, 최하위 10%의 영향은 미미합니다).
무어는 위기의 진정한 시작점이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18세기 후반)이 아니라, 1450년경(장기 16세기) 자본주의가 '자연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발흥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현 지질 시대는 '인류세'가 아니라 '자본세(Capitalocene)'라고 불려야 마땅합니다.


• 8장 (추상적인 사회적 자연과 자본의 한계): '자본세'가 작동하는 핵심 방식이 이 장에서 설명됩니다. 맑스가 자본주의 가치의 핵심으로 '추상적인 사회적 노동'(노동의 질적 차이를 제거하고 '시간'으로 환원)을 제시했다면, 무어는 그 파트너로서 '추상적인 사회적 자연(Abstract Social Nature)'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는 자본이 자연(Oikeios)의 복잡성을 무시하고, 정복, 측량, 지도화, 단순화, 표준화하여 가치 축적에 동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편하는 과정입니다. 자연을 '추상화'해야만 '자본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부: 저렴한 자연의 발흥과 죽음


4부는 자본주의 500년 역사를 지탱해 온 핵심 전략인 '저렴한 자연'이 무엇이며, 이것이 왜 지금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지를 분석합니다.


• 9장 (저렴한 노동?): 자본주의는 '네 가지 저렴한 것(The Four Cheaps)'을 끊임없이 공급받아야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저렴한 노동력, 저렴한 식량, 저렴한 에너지, 저렴한 원료입니다.


9장은 이 중 첫 번째인 '저렴한 노동'을 다룹니다. 무어는 자본이 '저렴한 노동'을 확보하는 방식이 단순히 공장에서의 임금 노동(착취)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자본은 임금을 받지 않는 여성의 '재생산 노동'(가사, 돌봄)과 식민지 및 주변부의 '전유된 노동'을 통해 노동력 자체를 '저렴하게' 유지해왔음을 폭로합니다.


• 10장 (장기 녹색혁명): 두 번째 요소인 '저렴한 식량'의 역사를 다룹니다. 20세기의 '녹색혁명'으로 대표되는 근대 농업토지생산성이 아닌 노동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토양, 물, 화석 에너지 등 막대한 '생태 잉여'를 고갈시키는 방식이었으며 , '저렴한 식량' 전략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결론: 저렴한 자연의 종언? : 자본의 세계생태적 한계는 자본 자체다


무어의 최종 결론은 충격적일 만큼 명료합니다. 21세기에 우리가 목도하는 다층적 위기(금융 위기, 기후 위기, 식량 위기, 고용 위기)는 서로 분리된 개별적 위기가 아닙니다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의 핵심 전략이었던 '저렴한 자연(Cheap Nature)'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종언'의 징후입니다.


과거 자본주의는 생태 잉여가 고갈되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새로운 프런티어(신대륙 발견, 식민지 개척, 기술 혁신)를 개척하여 새로운 '저렴한 자연'을 확보함으로써 위기를 '외부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현재, 지구상에는 더 이상 자본이 착취하고 전유할 '외부'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자본의 진정한 한계는 '유한한 자연'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저렴한 자연'을 요구하며 생명의 그물 전체를 파괴하는 '자본 자체'가 바로 자본의 한계입니다.

 

 

(용어)


. 오이케이오스 (Oikeios): '생명의 그물'. 인간 자연과 비인간 자연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 창조적, 역사적, 변증법적 관계를 맺고 있는 '관계적 장(field)' 또는 그 과정 자체를 의미하는 무어의 핵심 개념.
. 세계생태론 (World-Ecology): 자본주의를 단순한 경제 체제나 사회 체계가 아니라, 자본-권력-자연을 하나의 통일체로 조직하는 '방식'이자 '과정'으로 보는 이론적 관점.
. 이중 내부성 (Double Internality): '사회 속 자연, 자연 속 사회'처럼, 두 실체가 서로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서로의 내부에 존재함을 나타내는 철학적 관점.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한 개념.
. 자본세 (Capitalocene): '인류세(Anthropocene)'를 비판하는 용어. 현 생태 위기의 원인이 '인류' 전체가 아니라 1450년대 이후 발흥한 '자본주의'라는 특정 역사적 체제에 있음을 강조.
. 저렴한 자연 (Cheap Nature): 자본주의가 축적을 지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확보해야 하는 '네 가지 저렴한 것'(노동, 식량, 에너지, 원료). 이는 단순히 '저렴한 가격'이 아니라, 자본이 가치를 지불하지 않고 '전유(appropriation)'하는 자연과 인간(특히 여성, 식민지)의 무급 노동/에너지를 총칭.
. 추상적인 사회적 자연 (Abstract Social Nature): 맑스의 '추상적인 사회적 노동'(가치의 척도로서의 '시간')에 대응하는 무어의 개념. 자본이 자연의 복잡성을 무시하고, 지도화, 측량, 표준화, 단순화하여 자본 축적에 동원할 수 있도록 재편하는 '공간'의 추상화 과정.
. 생태잉여 (Ecological Surplus): 특정 시점에 자본주의 체제가 전유할 수 있는 무급 노동/에너지(저렴한 자연)의 총량. 자본은 이 잉여가 고갈될수록(저하 경향) 위기에 처하며, 새로운 프런티어를 통해 잉여를 확보해야 함.
. 물질대사 균열 (Metabolic Rift): (무어의 비판 대상) 존 벨라미 포스터의 핵심 개념. 자본주의적 농업(도시/농촌 분리)이 토양의 영양분을 도시로 가져간 뒤 다시 농촌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아,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 순환(신진대사)에 회복 불가능한 '균열'을 일으킨다는 이론.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구조적 해석 


제이슨 W. 무어의 이 저작은 단일 학문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층적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사회학 및 정치경제학적 해석: 세계체계 분석의 생태학적 확장


무어는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세계체계 분석(World-Systems Analysis)'이 배태된 빙엄턴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 그의 이론은 월러스틴의 분석틀을 근본적으로 계승하고 생태학적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월러스틴자본주의를 '중심부-주변부'의 위계적 구조로 파악하고, 중심부가 주변부의 '노동'을 착취하여 부를 축적하는 '세계-경제(world-economy)'로 분석했다면, 무어는 여기에 '생태'라는 빠진 고리를 주입합니다. 무어에게 '중심부-주변부'의 위계는 곧 '생태적 위계'입니다. 중심부는 주변부의 '저렴한 자연'(노동력, 식량, 에너지, 원료) 전체를 '전유(appropriation)'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세계-경제'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세계-생태(World-Ecology)'입니다.


2. 철학적 해석: 데카르트 비판과 '과정의 존재론'


저자 자신이 이 책을 "냉정한 정치경제학에 철학이 약간 섞여 있는" 텍스트로 규정했듯이, 이 책의 근간에는 강력한 철학적 비판이 자리합니다. 그 핵심은 '사회/자연'이라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의 타파입니다.
무어는 '자연'과 '사회'가 두 개의 분리된 '실체(substance)'가 아니라, '오이케이오스(Oikeios)'라는 단일한 '과정(process)' 속에서 관계적으로 구성된다고 봅니다. 이는 서구 철학의 주류였던 '실체의 존재론'에서 '과정의 존재론'으로의 급진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인간과 비인간의 '하이브리드(hybrid)'적 구성을 강조하는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나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같은 현대 철학자들의 사유와도 깊이 공명합니다.


3. 심리학적 해석: '자연으로부터의 소외'와 인식론적 치유


데카르트의 이원론("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은 '생각하는 나'(주체)와 '사유 대상이 되는 세계'(객체)를 심리적으로 분리시켰습니다. 이러한 인식론적 분리는 자연을 '나'의 일부, 즉 '생명의 그물'의 일부가 아닌, 정복하고 통제하며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이는 생태심리학(Ecopsychology) 분야에서 지적하는 '자연으로부터의 소외(alienation from nature)' 의 근본적인 인식론적 기원입니다. 자본주의는 바로 이러한 '소외된 심리'를 전제로 작동합니다. 자연을 '어머니'나 '그물'이 아닌 '자원'으로 볼 때만, 그것을 '저렴한 자연' 으로 착취하고 파괴하는 데 아무런 심리적 저항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무어가 '오이케이오스'와 '이중 내부성'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학술적 개념 정의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는 자연 속에 있으며, 자연이 우리 속에 있다"는 본래적 연결성(책의 서론 제목: '자연을 중시하는 역사')을 회복하려는 '인식론적 치료'이자 '심리적 치유'의 시도입니다.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거미인간(호모 넥서스)


제이슨 W. 무어가 제시한 '생명의 그물(Web of Life)' 이라는 은유는, 현대 사회의 네트워크화된 인간을 상징하는 '거미인간(호모 넥서스, Homo Nexus)' 의 개념과 조우할 때, '자본세'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주체성의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생명의 그물'은 모든 존재가 분리 불가능하게 연결된 '오이케이오스' 의 세계입니다. 마찬가지로, '호모 넥서스'가 살아가는 세계는 고립된 개별자들의 총합이 아니라, 모든 것이 연결된 '네트워크(거미줄)' 그 자체입니다. 이 두 개념은 '관계가 존재에 앞선다'는 동일한 존재론적 전제를 공유합니다.


거미는 시각이 퇴화한 대신, 거미줄 전체를 자신의 '확장된 인지(extended cognition)' 영역으로 삼아, 그물에 닿는 미세한 '진동'으로 세계를 파악합니다. 호모 넥서스 역시 고정된 단일 자아가 아니라, 네트워크의 '흐름을 감지하고', '관계를 조율'하며, '맥락적 자아'를 실현하는 '네트워크형 지능'을 소유합니다. 거미에게 거미줄이 그러하듯, 호모 넥서스에게는 네트워크가 곧 감각이자 존재의 확장입니다.


무어가 신랄하게 비판하는 자본주의적 인간, 즉 '데카르트적 주체'는 이 '그물' 밖에 서서 그물을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물을 찢어 '자원'을 획득하면서도(자연의 자본화), 그물이 찢어질 때 발생하는 고통의 진동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심리 상태이며, '자본세'를 가능케 한 파괴적 주체입니다.
반면, 호모 넥서스는 그물 밖에 선 관찰자가 아니라, 스피노자가 말한 것처럼 그물 자체와 동일시되는 '거미' 입니다. 이 주체에게 기후 위기, 부의 불평등, 팬데믹은 '외부'의 환경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거미줄'이 찢어질 때 실시간으로 감지되는 '고통의 진동' 그 자체입니다.


자본주의는 이 복잡다단한 '생명의 그물'을 '추상적인 사회적 자연' 이라는 획일적인 격자(grid)로 표준화하고, '저렴한 자연' 으로 환원하여 착취하려 합니다. 호모 넥서스는 바로 이 '추상화'와 '단순화'에 저항하는 주체입니다. 호모 넥서스는 '단일한 정체성'이 아닌 '다중 정체성' 을 통해, 자본주의가 이원론적으로 분리하려 했던(여성/남성, 원주민/문명인, 자연/사회, 중심부/주변부) 경계들을 끊임없이 가로지르고 재연결합니다.
따라서 호모 넥서스는 무어가 철학적으로 제안한 '이중 내부성'과 '오이케이오스'를 살아내는 실천적 존재입니다. 그들은 '생명의 그물'이 훼손될 때 가장 먼저 그 진동을 감지하고, 끊어진 연결을 복원하려 시도하는, '자본세'를 종식시킬 '그물-수리자'이자 새로운 '네트워크형 지능'의 담지자입니다.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비평


제이슨 W. 무어의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는 기념비적인 저작이지만, 동시에 생태맑스주의 및 비판 이론 내에서 격렬한 학술적 논쟁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 책의 논리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이 핵심 논쟁 지점들을 명확히 짚어야 합니다.


1. 핵심 논쟁: '세계생태론(Moore)' vs. '물질대사 균열론(Foster)'


현대 생태맑스주의는 크게 제이슨 W. 무어의 '세계생태론(World-Ecology)'과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의 '물질대사 균열(Metabolic Rift)' 이론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 무어의 비판: 무어는 포스터의 '균열(Rift)' 개념이 여전히 '사회'와 '자연'을 분리된 두 실체로 전제하는, '데카르트적 맑스주의'에 빠져있다고 비판합니다. '균열'이란 두 개의 분리된 것이 있어야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어는 이를 '녹색 산술(green arithmetic)' 이라 부르며, 이원론적 한계를 지적합니다.
• 포스터 진영의 반비판: 반면, 포스터와 그의 동료인 사이토 고헤이 등은 무어의 '세계생태론'(혹은 '오이케이오스')이 모든 것을 '하나의 그물'로 묶어버리는 '일원론(Monism)'에 빠져있다고 비판합니다. 이렇게 자연과 사회를 하나로 융합해버리면, 특정한 사회 형태(자본주의)가 특정한 물질적 토대(자연)에 어떻게 구체적인 모순(예: 토양 고갈)을 일으키는지 분석하는 유물론적 날카로움이 무뎌진다는 것입니다. 즉, 무어의 이론이 '구성주의적'이고 '인간중심주의적 일원론'으로 흘러, 맑스의 엄격한 '가치 법칙'과 자연의 '물질성'을 흐리게 만든다고 비판합니다.


# 이 복잡한 학술 논쟁은 다음 표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비교 항목 제이슨 W. 무어 (세계생태론) 존 벨라미 포스터 (물질대사 균열론)
핵심 진단 자본주의는 '자연을 조직하는 방법'  자본주의는 '물질대사 균열'을 일으키는 체제 
철학적 기반 관계적 일원론 (오이케이오스, 이중 내부성)  변증법적 유물론 (상호작용적 이원론) 
자본/자연 관계 "자본주의를 통한 자연 / 자연을 통한 자본주의"  "자본주의 자연" 간의 균열 (Rift) 
위기의 핵심 '저렴한 자연(Cheap Nature)'의 종언 '토양 고갈' 등 물질대사의 회복 불가능한 파괴
위기의 시작 '자본세' (1450년대)  산업혁명, 자본주의적 농업 (19세기) 
주요 개념 추상적인 사회적 자연 , 전유(Appropriation) 생태 제국주의, 소외(Alienation) 

 

2. '저렴한 자연' 개념의 분석적 모호성 (비판적 검증)


무어의 '저렴한 자연'  개념자본 축적이 공장 내의 착취(Exploitation)(임금노동)뿐만 아니라, 공장 밖의 '전유(Appropriation)(여성, 자연, 식민지의 무급 노동/에너지) 에 근본적으로 의존함을 밝혀낸 획기적인 공헌입니다.
하지만 이 '저렴한(cheap)'이라는 용어는 분석적이기보다는 묘사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무엇이 '저렴한' 상태이고, '저렴함'이 '비싸짐'으로 바뀌는 임계점은 정확히 무엇인지, 그 *기제(mechanism)*가 다소 모호합니다.
맑스의 '가치 법칙'이 '사회적 평균 필요 노동시간'이라는 명확한 척도를 제시한 것과 달리, '저렴한 자연'은 여성의 돌봄 노동, 토양의 영양분, 식민지의 원료 등 이질적인 '무급 노동/에너지'를 '전유'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포괄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핵심 동력인 '가치 생산'(착취)과 그 전제 조건인 '가치 전유' 사이의 분석적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이는 포스터 진영이 '가치 법칙을 흐린다'고 비판하는 지점과도 연결됩니다 ).

 

 

함께 읽어야 할 책


• 사이토 고헤이,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 : 존 벨라미 포스터의 제자인 사이토 고헤이가 맑스의 후기 노트(생태학 연구)를 바탕으로 '물질대사 균열' 이론을 대중적으로 심화시킨 베스트셀러입니다. 무어의 '세계생태론'이 왜 '일원론'적 한계를 갖는지, 그리고 맑스의 생태 사상이 어떻게 '탈성장 코뮤니즘'으로 연결되는지 비교하며 읽을 수 있는 최고의 텍스트입니다.

• 안드레아스 말름, 『화석 자본: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 : 무어가 '자본세'의 기원을 1450년대로 보는 것과 달리, 말름은 '화석 자본'(석탄/증기)이 도입된 19세기 영국을 집중 분석하며 기후 위기의 기원을 탐구합니다. '자본세' 논쟁과 관련하여, 왜 자본이 수력(재생에너지)이 아닌 석탄(화석연료)을 선택했는지 치밀하게 논증하는 필독서입니다.

•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 무어의 '자본세'(1450년대) 주장과 '저렴한 노동' 분석은 페데리치의 연구에 막대하게 빚지고 있습니다. 페데리치는 자본주의의 '시초축적'이 신대륙 정복뿐 아니라, 유럽에서의 '마녀사냥'을 통해 여성의 신체와 재생산 노동(무급 노동)을 '전유'하는 폭력적 과정이었음을 실증합니다.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무어가 '전유' 개념을 설명하며 인용하는 "여성, 자연, 식민지" 라는 구절의 원저자입니다. 자본주의(중심부)가 가부장제(남성)와 결탁하여 어떻게 여성과 식민지(주변부)의 무급 노동을 착취/전유하는지 '빙산 모델'을 통해 설명한 에코페미니즘의 고전입니다.

• 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멸종 시대에 함께 살아가기』 : 무어가 '오이케이오스' 를 통해 '인간/자연' 이원론을 넘어서려 했다면,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나 '반려종' 개념을 통해 '인간/기계/동물'의 경계를 허뭅니다. '자본세'라는 파국적 시대에 어떻게 '트러블과 함께하며' 대안적 '함께-살아가기'를 모색할 수 있는지 철학적, 실천적 영감을 줍니다.

• 조너선 닐, 『기후위기와 자본주의: 체제를 바꿔야 기후변화를 멈춘다』: 무어의 분석이 매우 학술적이고 복잡하다면, 닐의 책은 '기후정의' 운동의 관점에서 '왜 자본주의 체제 변화 없이는' 기후 위기 해결이 불가능한지 명료하고 직설적으로 설명합니다. 무어의 이론을 현실 운동의 차원에서 보완해 주는 텍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