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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해석과 이해(구조와 에세이)/책 해석과 이해(인문학)

[설탕] '윌버 보스마' - 달콤함에 가려진 2500년의 세계사

by 유미 와 비안 2025. 11. 4.

'윌버 보스마'의 『설탕

달콤함의 무게, 설탕으로 다시 읽는 세계

 

총평: 달콤함의 연대기를 넘어, 현재를 비추는 거울


윌버 보스마의 『설탕』은 한 상품의 일대기를 넘어, 지난 수 세기 동안 세계를 움직여 온 자본, 권력, 노동, 욕망의 복잡한 관계망을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저자의 경이로운 학문적 성실함과 전 지구적 시각은 이 책을 단순한 교양서를 넘어 깊이 있는 학술적 성취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설탕의 달콤한 맛 뒤에 숨겨진 노예들의 신음, 자본가들의 탐욕, 제국주의의 폭력,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생생하게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과거를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비추는 서늘한 거울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들은 설탕의 역사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전 세계를 휩쓰는 비만당뇨병팬데믹가공식품에 무분별하게 첨가된 설탕의 역사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경제 격차와 불공정한 무역 구조는 설탕 플랜테이션에서 시작된 신식민주의적 착취의 연장선에 있다. 단일 작물 재배로 인한 토양 황폐화와 삼림 파괴, 그리고 기후 변화의 위기 역시 설탕 산업이 남긴 깊은 상흔이다.
따라서 윌버 보스마의 『설탕』을 읽는 행위는 단순히 잊힌 과거를 탐험하는 지적 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 구조적 모순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를 이해하는 성찰의 과정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단기적인 달콤함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파괴를 외면해왔는가? 그리고 이 중독의 연쇄를 끊어내고 더 건강하고 정의로우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설탕 / 윌버 보스마 - 자본,권력, 노동, 욕망

 

 『설탕

 

우리가 매일 무심코 마주하는 작은 설탕 한 알에는 지난 2500년간의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서사가 담겨 있다. 윌버 보스마(Ulbe Bosma)의 역작 『설탕』은 이 작고 하얀 결정체가 단순한 감미료를 넘어, 어떻게 세계의 정치 지형을 바꾸고, 자본주의의 엔진을 가동시켰으며, 수백만 명의 삶을 파괴하고, 현대인의 식탁과 건강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기념비적인 탐사이다. 이 책은 설탕을 하나의 '프리즘'으로 삼아, 그 빛을 통과하며 드러나는 제국주의의 폭력, 노예제의 참상, 산업혁명의 동력, 그리고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까지 다채롭게 분광(分光)하여 보여준다.

윌버 보스마의 『설탕』은 총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설탕의 기원에서부터 현대 사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2500년의 역사를 연대기적 흐름과 주제별 분석을 결합하여 서술한다. 각 장은 설탕의 역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단면들을 보여주며, 이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파노라마를 완성한다.

 

 

1. 아시아의 설탕 세계


설탕의 역사는 유럽이 아닌 아시아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기원전 인도에서 사탕수수 즙을 끓여 만든 갈색 설탕 덩어리 '구르(gur)'가 종교 의식과 약용으로 사용된 사실을 조명하며, 설탕의 기원에 대한 유럽 중심적 시각을 교정한다. 이 시기 설탕은 신에게 바치는 귀한 제물이자 기력을 회복시키는 약이었으며, 이후 이슬람 상인들을 통해 페르시아와 지중해 세계로 전파되었다. 이 장은 설탕이 처음부터 폭력과 착취의 산물이 아니었으며, 그 문화적 가치가 식민주의 이전에 이미 존재했음을 명확히 함으로써 전체 서사의 중요한 출발점을 제시한다.


2. 서양으로 간 설탕


설탕이 본격적으로 서양 역사에 등장한 계기는 십자군 전쟁이다. 중동 지역을 침략한 유럽인들은 그곳에서 설탕을 처음 맛보고 그 매력에 빠진다. 이후 베네치아와 제노바 상인들이 지중해 무역을 통해 설탕을 유럽으로 들여오면서, 설탕은 왕과 귀족들 사이에서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극소수의 사치품으로 자리 잡는다. 이 시기 설탕은 향신료나 약품처럼 무게를 달아 금처럼 비싸게 거래되었다. '달콤함'에 대한 유럽 상류층의 폭발적인 욕망은 이후 대서양을 건너 더 넓은 생산지를 찾아 나서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고, 이는 곧 닥쳐올 비극의 서막이었다.


3. 전쟁과 노예제


"설탕 있는 곳에 노예 있다(Where there is sugar, there are slaves)." 이 장은 설탕에 대한 유럽의 갈망이 어떻게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비극 중 하나인 대서양 노예무역과 직결되었는지를 고발한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시작으로 유럽 열강들은 브라질과 카리브해의 섬들에 거대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건설했고, 그곳에서의 살인적인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대서양을 건넌 1250만 명의 아프리카인 중 약 3분의 2가 사탕수수 농장으로 끌려갔으며, 그들은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채찍질과 굶주림, 질병에 시달리며 죽어갔다. 설탕 자본주의는 노예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것이었으며, 달콤한 설탕의 이면에는 수백만 명의 고통과 눈물이 서려 있었다.


4. 과학과 증기 기관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은 설탕 산업에도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사탕수수를 으깨는 압착기의 효율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화학 지식의 발전은 설탕즙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도를 높이는 정제 기술의 혁신을 이끌었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설탕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술의 진보는 노예들의 노동 강도를 완화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더 많은 사탕수수를 더 빨리 처리해야 했기에, 수확과 운반 과정에서의 노동 착취는 더욱 극심해졌다. 기술은 생산성을 높였지만, 그 혜택은 자본가에게 돌아갔고 노예들의 고통은 가중되었다.


5. 국가와 산업


설탕 산업의 성장은 단순히 자본가들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각국의 정부는 설탕 산업을 국가의 부를 증대시키고 국제적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핵심 전략 산업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자국 식민지에서 생산된 설탕에 낮은 관세를 부과하고, 타국 설탕에는 높은 관세를 매기는 보호무역 정책을 통해 자국의 설탕 자본가들을 보호했다. 설탕 재벌들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이끌어냈다. 이처럼 설탕은 자유 시장의 논리가 아닌, 국가 권력과 자본이 결탁한 중상주의 정책의 핵심 상품이었다.


6. 노예제가 지속되다


19세기 초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각국에서 노예제가 법적으로 폐지되기 시작했지만, 설탕을 향한 욕망은 노예제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노예제가 폐지된 영국 식민지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생산량 감소로 위기에 처했고, 영국 소비자들은 더 값싼 설탕을 원했다. 그 결과 영국은 자국에서는 노예제를 폐지하면서도, 여전히 노예 노동을 통해 설탕을 생산하던 쿠바나 브라질로부터 막대한 양의 설탕을 수입하는 위선적인 정책을 펼쳤다.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서는 노예무역이 더욱 기승을 부렸고, 노예들의 삶은 더욱 참혹해졌다. 설탕의 달콤함은 도덕과 인권을 압도했다.


7. 위기, 그리고 기적의 사탕수수


19세기 후반, 수십 년간 이어진 단일 작물 재배로 카리브해의 플랜테이션 농장들은 토양 고갈과 사탕수수 질병이라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다. 생산량은 급감했고 설탕 산업 전체가 흔들렸다. 이 위기를 극복한 것은 새로운 품종 개발과 과학적 농법의 도입이었다. 네덜란드령 자바의 농업 시험장을 중심으로, 병충해에 강하고 당도가 높은 '기적의 사탕수수' 품종이 개발되었다. 이는 유전학과 식물학의 발전이 설탕 산업을 어떻게 구원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노예제 폐지 이후의 노동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인도 등지에서 계약 노동자(indentured laborers)를 데려오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 착취가 시작되었다.


8. 세계적 설탕, 국가적 정체성


19세기에 이르러 설탕은 더 이상 귀족의 사치품이 아니었다. 산업혁명으로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 계급에게 설탕은 저렴하게 열량을 보충할 수 있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었다. 특히 영국에서는 홍차에 설탕을 넣어 마시는 문화가 노동자 계층까지 확산되면서 설탕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티타임(Tea time)'은 고된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에게 잠시의 위안을 주었고, 이는 영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 자리 잡았다. 설탕은 이제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어 대중의 삶과 문화를 재편하는 강력한 힘이 되었다.


9. 미국의 설탕 왕국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 설탕 산업의 패권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간다. 미국은 하와이를 합병하고,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을 사실상 지배하며 거대한 '설탕 제국'을 구축했다.

아메리칸 슈거(American Sugar Refining Company)와 같은 거대 설탕 기업들은 이 지역의 플랜테이션을 장악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들 '설탕 왕(Sugar Barons)'들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미국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여 상원의원을 매수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관세 정책을 유지하며 제국의 이익을 극대화했다.


10. 보호무역주의가 등장하다


사탕수수 설탕이 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동안, 유럽에서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다. 바로 사탕무(sugar beet)였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대륙 봉쇄령으로 사탕수수 수입이 막히자,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사탕무에서 설탕을 추출하는 기술이 발전했다. 이후 각국 정부는 자국의 사탕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보호무역주의¹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유럽 시장은 값싼 사탕무 설탕으로 넘쳐났고, 이는 카리브해의 사탕수수 생산자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설탕 시장은 이제 국가 간의 치열한 무역 전쟁터가 되었다.


11. 프롤레타리아트


이 장은 설탕이 산업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도시 노동자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²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에게 설탕이 든 차나 커피, 잼 바른 빵은 빠르고 값싸게 열량을 보충하고 잠시나마 고된 현실을 잊게 해주는 위안이었다. 자본가들은 설탕이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유지하고 사회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적인 수단임을 간파했다. 이처럼 설탕의 달콤함은 노동자들을 자본주의 시스템에 순응하게 만드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했으며, 동시에 그들의 건강을 서서히 파괴하는 독이 되기도 했다.


12. 실패한 탈식민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카리브해의 수많은 식민지들이 정치적 독립을 쟁취하는 탈식민화³의 물결이 일었다. 그러나 정치적 독립이 곧 경제적 자립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새로 독립한 국가들은 여전히 과거 식민 모국의 거대 설탕 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었다. 이들 기업은 토지와 자본,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었고, 신생 독립국들은 불리한 조건으로 원당을 수출할 수밖에 없는 신식민주의적 착취 구조에 갇혔다. '탈식민화'결국 정치적 수사에 그쳤을 뿐, 설탕 산업을 둘러싼 불평등한 국제 경제 질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13. 주식회사 설탕


현대 세계에서 설탕 산업은 소수의 거대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지배된다. 카길(Cargill), 테이트앤라일(Tate & Lyle)과 같은 기업들은 전 세계의 사탕수수 및 사탕무 재배, 원당 생산, 정제, 유통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수직적으로 통합하여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행사한다. 이들 '주식회사 설탕'은 강력한 로비력을 동원해 각국 정부의 보건 및 무역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가격 담합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한다. 소비자는 수많은 브랜드의 설탕 제품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소수 거대 자본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다.


14. 천연 식품보다 더 달게


20세기 후반, 옥수수 시럽에서 추출한 액상과당(HFCS)의 개발은 설탕 산업에 또 다른 혁명을 가져왔다. 액상과당은 설탕보다 저렴하고 사용이 편리하여 탄산음료, 과자, 소스 등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무분별하게 첨가되기 시작했다. 식품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입맛을 더욱 자극적인 단맛에 길들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당 함량을 높였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양의 '첨가당'을 섭취하게 되었다. 이는 전 세계적인 비만 인구의 급증과 당뇨병, 심혈관 질환 등 만성 질환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1845년 의학 저널 『랜싯』에 이미 설탕이 비만과 당뇨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음에도 , 설탕 산업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그 위험성은 오랫동안 축소되거나 은폐되어 왔다. 설탕의 역사는 이제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거대한 공중 보건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 용어 )

 

¹ 보호무역주의(Protectionism):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관세나 수입 할당제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통해 수입을 제한하고 무역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제 정책. 자유무역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²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계급 중 하나. 생산수단(공장, 토지 등)을 소유하지 못하고,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임금 노동자 계급을 의미한다.
³ 탈식민화(Decolonization):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식민지가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에서 벗어나 정치적 독립을 획득한 역사적 과정. 이 책에서는 정치적 독립 이후에도 경제적 종속이 지속되는 '실패한' 측면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설탕』구조적 해석


윌버 보스마의 『설탕』은 단선적인 역사 서술을 넘어, 다양한 학문 분야의 관점을 통해 입체적으로 독해될 수 있는 풍부한 텍스트이다. 설탕이라는 하나의 상품을 축으로 역사학, 정치경제학, 사회문화, 심리학의 영역이 복잡하게 교차하며 거대한 지적 태피스트리를 형성한다.


역사학적 관점 (Historical Perspective)


무엇보다 이 책은 '진정한 세계사(Global History)'를 지향하고 그에 걸맞은 성취를 보여준다. 기존의 많은 설탕 관련 저작들이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노예제와 플랜테이션 경제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보스마는 설탕의 기원지인 아시아의 역할을 비중 있게 다루고, 네덜란드령 자바(Java)나 인도의 소농 생산 방식, 그리고 유럽과 미국의 사탕무 산업까지 포괄함으로써 대서양 중심주의(Atlantic-centric)의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한다. 이는 세계사를 유럽의 팽창사로만 간주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각 지역의 고유한 역사적 동학과 상호작용을 동등하게 조명하려는 최근 세계사 연구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또한, 2500년이라는 방대한 시간을 다루는 '장기지속(Longue Durée)'적 접근을 통해, 단기적인 사건의 변화보다는 설탕을 둘러싼 노동 체제, 자본의 흐름, 국가 권력의 역할과 같은 구조적인 변화를 심도 있게 추적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설탕이라는 상품이 어떻게 시대를 관통하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해왔는지 거시적인 통찰을 얻게 된다.


정치경제학적 관점 (Political-Economic Perspective)


『설탕』은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을 정치경제학적으로 해부하는 탁월한 사례 연구이다. 특히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자 스벤 베커트(Sven Beckert)가 『면화의 제국』에서 제시한 '전쟁 자본주의(War Capitalism)' 개념을 설탕의 역사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전쟁 자본주의란 국가의 군사적 폭력(전쟁, 노예 약탈, 식민지 점령)과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가 결합하여 자본주의의 초기 축적을 가능하게 했다는 이론이다. 설탕 제국의 역사는 바로 이 전쟁 자본주의의 가장 적나라한 증거이다. 유럽 국가들은 군사력을 동원해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고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만들었으며, 자본가들은 그 위에서 플랜테이션 농장을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또한, 이 책은 설탕 산업의 역사가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유 시장의 결과물이 아님을 명백히 보여준다. 오히려 각국 정부의 노골적인 개입, 즉 관세, 보조금, 식민지 독점 정책과 같은 보호무역주의가 설탕 자본주의를 키워낸 핵심 동력이었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설파하는 자유무역의 신화를 역사적으로 해체하고, 자본주의의 발전이 항상 국가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음을 폭로한다.


사회문화적 관점 (Socio-Cultural Perspective)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설탕은 시대와 계급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하는 강력한 상징물이었다. 초기 유럽에서 설탕은 왕과 귀족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사치품이었으며, 정교한 설탕 공예품은 연회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설탕은 도시 노동자 계급의 고된 삶을 위로하는 값싼 에너지원이자 일상의 필수품으로 변모했다. 이처럼 설탕의 소비 방식과 문화적 의미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은 각 시대의 사회 계급 구조와 문화적 욕망을 읽어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더 나아가, 설탕 플랜테이션은 근대적 인종주의가 형성되고 제도화되는 핵심적인 공간이었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고, 그들에 대한 잔혹한 착취와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동원되었다. 설탕의 달콤함은 흑인 노예의 비참한 현실을 은폐하고, 백인 지배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가속화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다.


심리학적 관점 (Psychological Interpretation)


거대한 역사적 구조의 이면에는 인간의 미시적인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설탕』의 역사는 단맛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이고 생물학적인 끌림, 즉 '욕망'이 어떻게 거대한 문명사적 동력이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심리학적 텍스트이기도 하다. 개인의 혀끝에서 느끼는 쾌락에 대한 욕구가 자본주의 시스템과 만나 증폭되면서, 수백만 명을 노예로 만드는 거시적 비극을 낳았다. 이는 개인의 미시적 심리가 어떻게 사회적, 경제적 구조와 상호작용하며 역사를 추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사회의 '중독'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책의 후반부에서 지적하듯, 설탕은 이제 개인의 건강을 파괴하는 '중독' 물질이 되었다. 하지만 이를 넘어, 설탕의 역사는 우리 사회 전체가 '무한 성장 중독'과 '과잉 소비 중독'에 빠져 있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단기적인 달콤함(경제 성장, 물질적 풍요)을 위해 장기적인 파국(환경 파괴, 사회적 불평등, 건강 위기)을 외면하는 현대 문명의 모습은 설탕 중독자의 자기 파괴적인 행동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결국, 설탕의 역사 인간의 욕망과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거대한 중독의 연대기라 할 수 있다.

 

 

 『설탕』거미인간(호모 넥서스)


전통적인 역사 서술, 즉 '호모 사피엔스'의 선형적(linear) 사고방식으로 볼 때, 설탕의 역사는 하나의 명확한 발전 서사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아시아의 약품 → 유럽의 사치품 → 전 세계의 대중 상품'으로 이어지는 진보의 연대기이며, 생산의 중심지가 '지중해 → 대서양 → 아메리카'로 이동하는 지정학적 발전사이다. 이 관점은 기술 혁신이 생산량 증가를 가져오고, 자본 축적이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이어진다는 명확한 원인과 결과의 사슬에 주목한다. 역사는 마치 잘 닦인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예측 가능한 경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호모 넥서스', 즉 '거미인간'의 비선형적(non-linear) 시선으로 이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설탕의 역사는 단일한 직선이 아니라, 수많은 행위자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거대한 '거미줄(Web)' 이다. 이 거미줄에는 설탕 자본가, 노예, 계약 노동자, 과학자, 정치인과 같은 인간 행위자뿐만 아니라, 사탕수수와 사탕무라는 생물, 이들을 위협하는 바이러스와 해충, 생산성을 높인 증기기관, 그리고 인간의 뇌를 자극하는 '단맛'이라는 화학적 욕망까지,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들이 '노드(node)'로 연결되어 있다.


거대한 관계망 속에서는 단선적인 인과관계가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거미줄의 한 부분에서 일어난 미세한 '진동(vibration)'이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전체 시스템에 파장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아이티에서 일어난 노예들의 봉기(노동의 진동)는 런던의 설탕 가격을 폭등시키고(자본의 진동) 프랑스 혁명의 급진화에 영향을 미친다(정치의 진동). 유럽에서 개발된 사탕무 정제 기술(기술의 진동)은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카리브해 플랜테이션 경제(생산의 진동)를 순식간에 붕괴시킨다. 역사는 계획된 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무수한 진동들이 서로 간섭하고 증폭하며 창발적(emergent)으로 전개되는 과정이다. '호모 넥서스'는 이러한 복잡한 상호작용의 '흐름(flow)'과 '패턴(pattern)'을 논리적 분석 이전에 직관적으로 '감지(sensing)'한다.


이 관점에서 설탕은 더 이상 고정된 속성을 가진 '객체'가 아니다. 그것은 이 관계망 속에서 다양한 '의미의 그물(web of meaning)'을 직조하는 매개체, 즉 '실'이다. 어떤 이에게 설탕은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황금 실이었고, 노예에게는 고통과 죽음을 의미하는 피 묻은 실이었으며, 노동자에게는 고된 삶을 버티게 하는 값싼 에너지의 실이었다. 설탕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처럼 다양한 실들이 어떻게 얽히고설켜 현재 우리의 세계라는 복잡한 태피스트리를 만들어냈는지, 그 관계의 총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호모 넥서스'에게 설탕의 역사는 진보의 연대기가 아니라, 수많은 존재들이 서로의 운명을 엮으며 만들어낸 예측 불가능하고 다층적인 관계의 드라마다.

 

 

 『설탕』비평


윌버 보스마의 『설탕』은 그 방대한 스케일과 학술적 깊이로 인해 출간과 동시에 상품사 및 세계사 연구 분야에서 중요한 성취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기념비적인 저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몇 가지 비판적 검토의 지점을 남긴다.


성과: 거시사의 기념비적 성취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단연 압도적인 시공간적 스케일과 그를 뒷받침하는 치밀한 연구에 있다. 저자는 2500년에 걸친 설탕의 역사를 추적하기 위해 다국어 자료와 방대한 1차 사료를 섭렵했으며, 이를 통해 생산, 노동, 소비, 금융, 정치를 하나의 유기적인 서사로 엮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생산(플랜테이션, 공장), 노동(노예, 계약노동자, 소농), 소비(귀족, 노동자), 정치(제국, 국가)라는 각기 다른 영역들이 설탕이라는 매개를 통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형성했는지 총체적으로 그려낸 점은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는 설탕의 역사를 넘어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비판 1: 여전히 남아있는 유럽 중심성의 그림자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의도적으로 유럽 중심주의를 탈피하여 '진정한 세계사'를 쓰겠다고 공언하며, 실제로 아시아의 역할을 비중 있게 다루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비평가들은 서사의 구조와 사료의 선택에 있어 여전히 유럽과 북미(Global North)의 관점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분석의 많은 부분이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과 미국 기업들의 아카이브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지배자의 시각과 우선순위를 반영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는 저자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역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가진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역사 연구의 기반이 되는 아카이브 자체가 식민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보존되었기 때문에, 온전히 피지배자(subaltern)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그 결과, 책에서는 노예들의 저항이나 현지 농민들의 주체적인 움직임이 거대한 경제 구조와 제도의 변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게 그려지는 아쉬움을 남긴다.


비판 2: 거대 서사 속 서사적 호흡의 부재 


이 책은 방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연대기적 서술과 주제별 분석을 병행한다. 각 장은 설탕 역사의 특정 단면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독립적인 에세이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러한 구성은 복잡한 주제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적인 변화의 '서사적 흐름(narrative arc)'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즉, 독자들은 수많은 사실과 통계, 사건들의 나열 속에서 길을 잃고, 각 사건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더 큰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냈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200-300년에 걸친 설탕 관련 정책의 변화나 특정 지역의 노동 체제 변동 과정이 파편적으로 제시되어, 그 전체적인 궤적과 인과관계를 독자 스스로 재구성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비판 3: 기술 결정론의 위험성 


보스마는 증기기관, 화학 정제 기술, 품종 개량 등 기술 혁신이 설탕 산업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러나 일부 비평가들은 이러한 서술이 자칫 '기술 결정론'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술 결정론이란 기술이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발전하며 사회 변화를 이끈다고 보는 관점이다. 책에서 기술 혁신이 종종 북반구(Global North)의 영역으로, 남반구(Global South)는 기술적으로 종속된 존재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기술 발전의 이면에 있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와 권력의 역학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다. 기술은 진공상태에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정치적 요구, 자본의 이해관계, 노동 조건 등과 상호작용하며 특정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채택된다는 점이 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

 

 

함께 읽어야 할 책들


. 설탕과 권력 /시드니 민츠 / 김문호 지호 / 1998 (인류학적 접근) - 음식인류학의 고전. 설탕이 단순한 식품을 넘어, 영국 노동자 계급의 일상과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어떤 문화적, 상징적 역할을 했는지 심층 분석한다. 보스마의 거시적 '생산'의 역사와 민츠의 미시적 '소비'의 역사를 비교하며 읽으면, 설탕이 어떻게 세계를 양쪽에서 동시에 재편했는지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면화의 제국 / 스벤 베커트 / 김지혜 / 휴머니스트/2018 - 면화라는 상품을 통해 '전쟁 자본주의'의 역사를 분석한 명저. 설탕과 면화는 노예제, 식민주의, 산업혁명을 이끈 쌍두마차였다. 두 책을 비교하며 읽으면, 단일 상품의 역사를 넘어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폭력적이고 전 지구적인 작동 방식을 더욱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다. 


소금/ 마크 쿨란스키 / 이창신/세종서적 /2003 - 인류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소금이 어떻게 문명의 교역로를 열고, 전쟁의 원인이 되었으며, 국가 재정의 기반이 되었는지 흥미롭게 풀어낸다. 보스마의 『설탕』이 자본주의의 거대하고 어두운 측면을 조명한다면, 『소금』은 일상적 물질이 인류 문명 전반에 미친 다채로운 영향을 보여주며 상품사 독해의 폭과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