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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해석과 이해(구조와 에세이)/책 해석과 이해(생태, 순환)

[랩 걸]'호프 자런' 흙과 나무와 실험실에서 길어 올린 한 여성 과학자의 눈부신 삶과 우정!

by 유미 와 비안 2025. 10. 1.

 지구생물학자 '호프 자런'의 대표작 『랩 걸』. 

식물의 생애 주기와 과학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교차시키며, 과학에 대한 열정과 우정, 그리고 여성 과학자가 겪는 현실을 솔직하게 그려낸 감동적인 회고록.

 

 

'랩 걸' : 호프 자런, 흙과 나무와 실험실에서 길어 올린 삶의 노래
"사람들은 나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나무는 평생에 걸쳐 자라기 위해 분투한다. 나무의 삶은 기다림과 성장으로 이루어진 기나긴 싸움이다. 과학자의 삶도 그렇다."
세계적인 지구생물학자 호프 자런은,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그녀의 아름다운 회고록 『랩 걸(Lab Girl)』을 통해, 식물과 과학자의 삶이 얼마나 깊이 닮아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한 여성 과학자의 성공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밤마다 문을 열어두었던 실험실에서 과학의 꿈을 키운 한 소녀가, 척박한 학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분투기이자, 기이하고도 헌신적인 동료 빌과 함께 쌓아 올린 우정의 연대기이며, 무엇보다도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나무와 씨앗의 경이로운 생존 전략을 그려낸 한 편의 서정적인 자연 찬가입니다.

 

랩 걸 / 호프 자런 - 나무와 씨앗의 경이로운 생존

 

『랩 걸』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삶의 연대기와, 식물의 생애 주기를 다루는 짧은 장들이 아름답게 교차하는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책의 세 부분은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나는 과정을 따라가는 듯합니다.


• 1부 뿌리와 이파리: 과학자의 탄생

이야기는 저자가 미네소타의 시골 마을에서, 과묵한 물리학과 교수였던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성장한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시작됩니다. 그녀에게 실험실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세상의 모든 것을 분해하고 관찰하며 원리를 탐구할 수 있는 놀이터였습니다. 이 시기 그녀는 과학자라는 '뿌리'를 내립니다.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며 그녀는 본격적으로 과학자의 길을 걷지만, 곧 학계의 냉혹한 현실과 마주합니다. 여성이 드문 공학 분야에서 겪는 미묘한 차별, 그리고 빠듯한 생활비와 고독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연구에 매달립니다. 바로 이때,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괴짜 천재 '빌'을 만납니다. 빌은 그녀의 유일한 친구이자, 이후 20년 넘게 그녀의 모든 실험실을 함께 짓고, 그녀의 가장 헌신적인 동료가 되어주는 운명적인 파트너입니다. 이 시기, 그들은 함께 세상에 첫 '이파리'를 내밉니다.


• 2부 나무와 옹이: 살아남기 위한 분투

이 부분은 저자가 독립적인 과학자로서 자신의 실험실을 꾸리고 살아남기 위해 겪는 처절한 분투를 그립니다. 그녀는 조지아, 테네시, 하와이에 이르기까지, 세 번에 걸쳐 맨손으로 텅 빈 공간을 '실험실'로 만들어냅니다. 부족한 연구비, 낡은 장비, 그리고 언제 끊길지 모르는 계약직의 불안 속에서, 그녀와 빌은 밤낮없이 일하며 연구를 계속합니다.
이 시기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 온 조울증(양극성 장애)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광기와 우울의 극단을 오가는 자신의 병이 연구와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고통스러울 만큼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수없이 거절당하는 연구비 제안서, 학계의 치열한 경쟁, 그리고 정신 질환의 고통은 그녀의 삶에 깊은 상처, 즉 나무의 '옹이'를 남깁니다. 하지만 그녀는 빌과의 굳건한 우정과, 식물에 대한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이 모든 시련을 견뎌내고 자신만의 단단한 '나무'로 성장합니다.


• 3부 꽃과 열매: 생명의 순환

마침내 하와이 대학교에 안정적인 종신 교수직을 얻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그녀는 또 다른 과학자인 남편 클린트를 만나 결혼하고, 아들을 낳으며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이 평생 연구해 온 씨앗이 어떻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지, 그 생명의 순환을 자신의 아이를 통해 직접 경험합니다.
책의 마지막, 그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숲을 걸으며, 나무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이 거대한 생명의 일부인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삶을 넘어, 세대를 이어 지식과 사랑을 전달하는 모든 생명의 위대함에 대한 찬가로 마무리됩니다.

 

 

『랩 걸』구조적 해석

이 책은 회고록이지만, 그 내용은 과학, 문학, 사회학, 심리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 식물학(생태학)적 관점: 

이 책은 식물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중 과학서입니다. 자런은 씨앗이 어떻게 수십 년을 기다려 발아하는지, 나무가 어떻게 물을 꼭대기까지 끌어올리는지, 그리고 식물들이 어떻게 서로 소통하는지 그 경이로운 생존 전략을 시적인 언어로 풀어냅니다. 그녀는 식물을 단순히 연구 대상이 아닌, 자신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하나의 '생명'으로 묘사합니다.


• 문학(회고록/서사)적 관점: 

이 책의 가장 큰 문학적 성취는 두 개의 다른 서사를 교차시키는 독특한 구조에 있습니다. 저자의 개인적인 삶을 다루는 장과, 식물의 생애 주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짧은 장이 번갈아 나타납니다. 이 구조를 통해, 저자는 자신의 삶(가난, 성장, 시련, 결실)을 식물의 삶에 비유하며, 두 서사가 서로를 비추고 공명하게 만듭니다. 이는 독자가 과학적 사실을 감성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편적인 생명의 서사로 이해하게 만드는 탁월한 문학적 장치입니다.


• 사회학 및 페미미즘 과학 비평 관점: 

이 책은 여성 과학자가 학계에서 겪는 현실에 대한 가장 솔직하고 강력한 증언 중 하나입니다. "과학계에서 여성이라는 것은 매일 아침 남들보다 조금 더 무거운 돌을 들고 언덕을 오르는 것과 같다."- 그녀는 불안정한 연구 환경, 연구비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 그리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겪는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별과 고충을 생생하게 고발합니다.


• 심리학적 관점: 정신 질환과 파트너십

이 책은 정신 질환(조울증)을 가진 전문가가 자신의 경험을 고백한 용기 있는 기록입니다. 그녀는 조증 상태일 때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하는 창의적 에너지와, 울증 상태일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깊은 절망을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또한, 그녀와 빌의 관계는 사랑도 우정도 아닌, 오직 서로의 존재 자체를 지지하고 평생을 함께하는 독특한 '연구 파트너십'의 심리학을 보여줍니다. "빌은 내게 공기나 물과 같았다. 너무나 당연해서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 

 

 

『랩 걸』거미인간(호모 넥서스)


호프 자런의 『랩 걸』은 세상을 복잡하게 연결된 그물로 감지하는 '거미인간(호모 넥서스)'에게, 인간의 그물과 식물의 그물이 얼마나 깊고 아름답게 서로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거미인간은 이 책을 통해, 자런이 흙 속의 씨앗(과거)과 하늘을 향한 나뭇가지(미래)를 잇고, 땅속의 뿌리(보이지 않는 노동)와 햇빛을 받는 이파리(결과물)를 연결하는 과학자임을 봅니다. 그녀와 빌의 관계는, 다른 모든 연결이 위태로울 때조차 결코 끊어지지 않는, 그물 전체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중심 실'입니다. 이 책의 가장 위대한 점은, 자런의 개인적인 그물과 나무의 생태적인 그물을 번갈아 보여주며, 두 개의 다른 그물이 사실은 '생존을 위한 분투'와 '성장을 향한 열망'이라는 동일한 '진동'으로 공명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거미인간에게, 과학이란 분리된 대상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와 나 사이에 숨겨진 '연결'을 발견하고 그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랩 걸』비판과 논쟁


『랩 걸』은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작품이지만, 그 독특한 스타일과 내용에 대해 몇 가지 비판적 논의가 가능합니다.


• 과학자 삶의 낭만화: 저자는 과학자, 특히 기초 과학자의 삶이 겪는 재정적 어려움과 고된 노동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결국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는 '영웅 서사'의 구조를 따릅니다. 이로 인해 학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패하고 사라져 간 수많은 다른 과학자들의 현실을 가리고, 과학자의 힘든 삶을 다소 낭만화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 빌과의 관계에 대한 모호성: 저자와 빌의 관계는 이 책의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불편하고 논쟁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빌은 자신의 삶 전체를 그녀의 연구를 위해 헌신하는데, 이 관계는 위대한 우정으로도, 혹은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착취에 가까운 관계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관계의 복잡성과 모호성을 충분히 해명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 정신 질환 묘사의 특수성: 그녀가 자신의 조울증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은 매우 용기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 조증 상태가 연구에 대한 엄청난 몰입과 창의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정신 질환이 가진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다소 부각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조울증 환자의 경험을 대표하지는 않으며, 정신 질환을 천재성과 연결시키는 또 다른 신화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함께 읽어야 할 책


 『나무 수업』 (페터 볼레벤 저, 강영옥 옮김, 이마, 2016) 자런이 과학자의 시선으로 식물의 삶을 이야기했다면, 독일의 숲 관리인인 저자는 수십 년간 숲과 함께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나무들이 어떻게 서로 소통하고, 자식을 돌보며,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지 그 놀라운 비밀을 들려줍니다. 『랩 걸』의 식물학 버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저, 조석현 옮김, 알마, 2022) 자런처럼, 과학(신경학)과 인간의 삶을 문학적인 글쓰기로 결합한 또 다른 위대한 작가 올리버 색스의 대표작입니다. 뇌의 손상으로 기이한 증상을 겪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과학 에세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저, 황소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1) 자런이 '여성 과학자'로서 겪는 어려움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했다면, 이 책은 사회 전체의 데이터가 얼마나 남성 중심으로 설계되어 여성을 체계적으로 배제하고 위험에 빠뜨리는지 방대한 증거로 고발합니다. 자런의 개인적인 서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사회과학적 확장판입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저, 이종인 옮김, 흐름출판, 2016) 자런이 '삶'을 살아내는 과학자의 기록이라면, 이 책은 '죽음'을 마주한 의사의 기록입니다. 촉망받는 젊은 신경외과 의사가 말기 암 환자가 되어,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색하는 이 감동적인 회고록은, 『랩 걸』과 함께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가장 깊은 울림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