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
21세기는 역설의 시대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연결된 '초연결 사회'를 이룩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은 그 연결망 속에서 전례 없는 심리적, 사회적, 정치적 고립감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적인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는 그녀의 저서 『고립의 시대(The Lonely Century)』에서 이 현상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가속화되었을 뿐, 이미 그 이전부터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구조적 문제임을 역설하며 21세기를 '고립의 세기'로 명명한다.
허츠는 외로움을 단순히 개인의 정서적 결핍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외로움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기술의 발전, 도시화, 노동 환경의 변화 등 거시적인 사회 구조의 변화가 낳은 필연적 산물임을 방대한 사례와 데이터를 통해 입증한다. 또한, 이 만성적인 고립 상태가 개인의 건강을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공동체를 해체하는 심각한 사회적 질병임을 경고한다.

『고립의 시대』
1장. 지금은 고립의 시대다
1장은 현대 사회가 왜 '고립의 시대'가 되었는지 그 근본 원인을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에서 찾으며 책의 전체적인 문제의식을 제시한다. 저자는 1980년대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시대를 기점으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경쟁,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면서 공동체를 지탱해 온 연대, 상호보살핌, 친절과 같은 가치를 체계적으로 약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마거릿 대처의 "사회 같은 것은 없다. 오직 개인인 남자와 여자가 있을 뿐이다"라는 선언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고 모든 것을 시장 논리에 맡겼다. 이 과정에서 공공 서비스는 축소되고, 노동조합은 약화되었으며, 시민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닌 이익을 추구하는 '소비자'로 재정의되었다. 관계는 거래가 되었고, 이웃은 잠재적 경쟁자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극심한 불평등을 낳았다. 2018년 미국 CEO가 일반 노동자보다 278배 더 많은 보수를 받는 현실은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부의 격차를 벌리고 사회적 위계를 강화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 안전망의 해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스템으로부터 버려졌다는 소외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했고, 이는 곧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졌다.
허츠는 이 장에서 '외로움'의 개념을 확장한다. 그녀가 말하는 외로움은 단순히 친구가 없는 심리적 상태를 넘어, 자신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사회와 정부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정치·경제적 소외감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확장된 정의는 외로움이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문제임을 명확히 한다. 일본의 노년 여성들이 교도소를 "인생의 오아시스"라 부르며 교류와 보살핌을 찾아 일부러 경범죄를 저지르는 충격적인 사례는, 공동체가 붕괴된 사회에서 개인이 얼마나 극단적인 고립 상태에 내몰릴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2장. 죽음에 이르는 병, 외로움
2장은 외로움이 개인의 감정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공중 보건 위기'임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논증한다. 저자는 만성적인 외로움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높이고 면역 체계를 약화시켜, 심장 질환, 뇌졸중, 치매, 우울증 등 각종 질병의 발병률을 높인다고 설명한다.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은 조기 사망 위험을 26%에서 32%까지 높일 수 있으며, 이는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거나 알코올 중독에 빠진 것과 맞먹는 수준의 건강 위협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이스라엘의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인 '하레디(Haredim)'의 사례를 제시한다. 하레디 공동체는 소득 수준이 낮고 비만율이 높으며 건강에 해로운 식습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내 다른 집단에 비해 평균 기대 수명이 더 높다. 허츠는 그 비결이 바로 끈끈한 공동체적 유대에 있다고 분석한다. 그들은 함께 기도하고, 일하며, 서로의 자녀를 돌보고 경제적 어려움을 돕는 등 삶의 모든 영역을 공유한다. 이 사례는 사회적 연결망이 건강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더 나아가 허츠는 외로움을 인간의 '진화적 특성'으로 해석한다. 원시 시대 인류에게 무리로부터의 고립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사회적 고립을 생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고통과 불안이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도록 진화했다. 즉,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연결을 갈망하는 생존 본능의 외침인 것이다. 이 관점은 외로움 문제를 개인의 나약함이 아닌, 인간의 근본적인 필요가 충족되지 못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타인을 돕는 행위가 주는 긍정적 효과인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를 소개한다. 남을 도울 때 뇌에서는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면역력이 강화된다. 이는 이타적 행위와 공동체에 대한 기여가 외로움을 극복하고 개인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강력한 치유책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3장. 그들은 왜 히틀러와 트럼프를 지지했는가
3장은 1장에서 확장된 '정치·경제적 소외로서의 외로움'이 어떻게 극우 포퓰리즘의 확산으로 이어지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는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소외되며, 자신의 목소리가 정치 시스템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제공하는 단순한 메시지와 강력한 소속감에 쉽게 매료된다고 주장한다.
허츠는 역사적으로 나치즘의 부상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경제적 혼란과 사회적 분열 속에서 극심한 고립감에 시달리던 독일 대중에게, 히틀러는 '위대한 독일 민족'이라는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제공하고 유대인이라는 공동의 적을 설정함으로써 그들의 분노와 불안을 결집시켰다.
이러한 역사적 패턴은 현대에도 반복된다. 저자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다른 후보의 지지자들에 비해 지역 사회 단체(학부모회, 스포츠팀 등) 참여율이 현저히 낮았으며, "도움을 청할 친구나 친척이 거의 없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들은 대부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과정에서 제조업 일자리를 잃고 경제적 지위와 자긍심을 상실한 노동자 계층이었다.
허츠는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은 인과 사슬로 설명한다.
1. 신자유주의는 전통적인 산업 공동체를 해체하고 노동자들을 경제적 불안과 고립 상태로 내몬다.
2.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상실하며 깊은 소외감(외로움)과 무력감을 느낀다.
3. 이들의 분노와 불신은 기존 정치 엘리트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진다.
4. 포퓰리스트는 이들의 분노를 포착하여 "부패한 엘리트"와 "외부의 적(이민자, 소수자 등)"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집회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배타적 소속감을 제공한다.
5. 결국, 사회로부터 고립되었던 개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준다고 믿는 리더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내며 극단주의 정치에 동조하게 된다.
이 분석을 통해 허츠는 포퓰리즘의 부상이 단순히 몇몇 정치인의 선동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만연한 고립과 소외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임을 역설한다.
4장.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4장에서는 거시적인 정치·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서 어떻게 연결이 단절되고 있는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현대 도시 생활의 빠른 속도와 익명성이 사람들 사이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비공식적 상호작용, 즉 사회학자 마크 그래노베터가 말한 '약한 유대(weak ties)'를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동네 가게 주인, 버스 운전사, 이웃과의 가벼운 인사가 일상적인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했다. 특히 저자는 '바리스타와의 담소'를 상징적인 예로 들며, 이러한 짧은 교류가 우리에게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고 사회 전체의 신뢰 자본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인간적 접촉의 기회를 급격히 감소시켰다. 아마존 고(Amazon Go)와 같은 무인 상점, 셀프 계산대, 음식 주문 키오스크, 배달 앱 등 비대면 서비스의 확산은 효율성과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타인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1인 가구의 급증과 '혼밥' 문화의 보편화 역시 이러한 단절을 심화시킨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사회적 고립에 빠질 위험이 더 크며, 함께 식사하는 행위가 주는 유대감 형성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허츠는 이러한 일상적 상호작용의 부재가 심각한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서로 다른 배경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우연히 마주치고 대화하는 경험은,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하고 타협하며 공통점을 찾아가는 '민주주의의 기술'을 연마하는 훈련장이다. 이러한 기회가 사라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교류하게 되고, 이는 사회적 양극화와 불신을 심화시킨다. 결국, 아무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는 사회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5장. 도시는 어떻게 그들을 배제하는가
5장은 도시의 물리적 환경이 어떻게 사회적 배제와 고립을 조장하는지를 '적대적 건축(Hostile Architecture)'이라는 개념을 통해 분석한다. 적대적 건축이란, 공공장소에서 노숙인이나 청소년 등 특정 집단이 머무르거나 특정 행동을 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설계된 도시 디자인을 의미한다.
저자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한다. 런던의 '캠든 벤치(Camden Bench)'는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기울어져 있어 눕거나 오래 앉아 있기 어렵게 설계되었다. 많은 도시의 벤치에는 노숙인이 눕지 못하도록 중간에 팔걸이가 설치되어 있다. 건물 입구나 창틀 아래에는 사람들이 앉지 못하도록 뾰족한 스파이크가 박혀있고, 특정 시간이 되면 노숙인을 쫓아내기 위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디자인은 '안전'과 '질서'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지만, 그 본질은 사회적 약자를 공공 공간에서 보이지 않게 '제거'하려는 시도다. 이는 특정 집단을 잠재적 문제 유발자로 낙인찍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폭력적인 방식이다.
더 나아가 허츠는 공원, 도서관, 광장과 같은 진정한 의미의 공공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상업화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러한 공간들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만나고, 쉬고, 교류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예산 삭감으로 공공 도서관과 청소년 클럽이 문을 닫고, 공공장소는 카페나 쇼핑몰로 대체되면서, 돈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머무를 곳을 잃게 된다. 결국 도시는 모두를 위한 포용의 공간이 아니라, 특정 계층만을 환영하고 나머지는 배제하는 분리의 공간이 되어가며, 이는 사회적 고립을 더욱 심화시킨다.
6장. 스마트폰에 봉쇄된 사람들
6장은 현대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우리를 역설적으로 고립시키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우리가 '늘 함께 있지만 늘 혼자인(alone together)' 상태에 놓여있다고 진단한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 스마트폰 화면에 몰두하는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사회성 발달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대면 상호작용을 통해 미묘한 표정, 몸짓, 목소리 톤을 읽어내는 공감 능력은 사회적 관계의 핵심인데, 스크린을 통한 소통은 이러한 비언어적 단서들을 대부분 차단한다. 그 결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허츠는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표정을 읽는 방법'을 가르치는 강의가 생겨난 현실을 그 충격적인 증거로 제시한다.
소셜 미디어의 설계 자체가 우리의 심리적 취약점을 파고들어 중독을 유발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좋아요'와 새로운 알림은 예측할 수 없는 간헐적 보상을 제공하며, 이는 우리의 뇌를 '디지털 슬롯머신'에 빠진 것처럼 만든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갈망하며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또한 소셜 미디어는 잔인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이 되기도 한다. 메시지를 읽고도 답하지 않는 '읽씹'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공개적인 거절'이며, '좋아요'를 받지 못하거나 팔로우가 끊기는 것은 실시간으로 경험하는 따돌림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완벽하게 편집된 삶을 보며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고, 나만 뒤처지거나 인기가 없는 것 같다는 두려움, 즉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를 넘어 '봄프(BOMP, Belief that Others are More Popular)'에 시달린다. 이는 끝없는 자기 검열과 불안을 낳으며, 결국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리고 아바타 뒤에 숨게 만든다.
7장. 세기의 노동은 외롭다
7장은 현대의 노동 환경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고립시키고 소외감을 증폭시키는지 분석한다. 저자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인간적인 상호작용과 공동체적 유대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오픈플랜식 사무실'을 든다. 칸막이를 없애고 개방된 공간을 만드는 이 디자인은 본래 직원 간의 소통과 협업을 증진시키기 위해 도입되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보여준다. 소음과 사생활 부재로 인해 직원들은 오히려 대화를 피하게 되고, 헤드폰을 낀 채 각자의 스크린에 몰두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오픈플랜 사무실 도입 후 직원들의 대면 상호작용은 70%나 감소했으며, 이메일과 메신저 사용량은 급증했다. 결국 물리적 장벽은 사라졌지만 심리적 장벽은 더 높아진 셈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원격 근무의 확산 역시 노동의 고립을 심화시킨다. 화상 회의와 업무용 메신저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비공식적인 대화나 우연한 마주침에서 오는 유대감을 대체할 수는 없다. 또한 '언제나 온라인' 상태를 강요받는 노동자들은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소진(burnout)을 경험한다.
허츠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프랑스에서 법제화된 '연결되지 않을 권리(the right to disconnect)'를 소개한다. 이는 근무 시간 외에 업무 관련 이메일이나 연락에 응답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노동자의 휴식권과 사생활을 보호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저자는 기업이 단기적인 생산성 지표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다정함과 협력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인간적인 유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 문화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8장. 감시 자본주의와 조작된 경제
8장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가 정립한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 개념을 통해 현대 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고립을 심화시키는지를 분석한다. 감시 자본주의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술 기업들이 사용자의 모든 온라인 활동 데이터를 수집하여 그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나아가 특정 행동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의미한다.
이 시스템 하에서 노동자들은 전례 없는 수준의 감시를 받는다. 아마존 물류센터에서는 직원들의 모든 움직임을 추적하는 팔목 밴드를 개발했고, 일부 기업은 직원들의 동의 하에 몸속에 마이크로칩을 삽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은 생산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도입되지만, 실제로는 노동자의 자율성을 박탈하고 인간을 기계의 부품처럼 취급하며 극심한 소외감을 유발한다.
특히 '긱 이코노미(Gig Economy)'는 감시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버 운전사나 배달 앱 라이더와 같은 긱 노동자들은 독립 계약자라는 이름 아래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플랫폼이 설계한 알고리즘과 고객의 '별점 평가'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을 통제받는다. 이들은 동료 없이 홀로 일하며 모든 위험을 개인이 감수해야 하고, 낮은 별점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디지털 채찍'을 맞으며 일한다. 고객과의 대면 접촉은 최소화되고, 모든 상호작용은 평점이라는 차가운 숫자로 환원된다.
허츠는 이러한 감시와 평가 시스템이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하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더욱 고립시킨다고 비판한다. 또한, 자동화와 로봇의 도입이 인간 노동자를 대체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사회적으로 배제될 위험에 처해있음을 경고하며, 이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한다.
9장. 알렉사와 섹스 로봇만이 웃게 한다
9장에서는 인간관계의 부재와 깊어지는 외로움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기술을 통해 위안을 찾으려 하는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AI 스피커, 소셜 로봇, 심지어 섹스 로봇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려는 다양한 기술들의 등장을 조명한다.
외로운 노인들은 아마존의 '알렉사'나 구글 어시스턴트와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고, 일본의 요양 시설에서는 물개 모양의 돌봄 로봇 '파로(Paro)'가 노인들의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준다. 어떤 사람들은 AI 챗봇과 깊은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고, 심지어 무생물인 로봇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포옹'을 시간당 요금을 받고 판매하는 '커들러(cuddler)'와 같은 새로운 직업의 등장은 인간의 접촉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준다.
허츠는 이러한 기술들이 단기적으로 외로움을 완화하는 데 일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특히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로봇은 판단이나 거절의 두려움 없이 관계를 연습할 수 있는 안전한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근본적인 우려를 제기한다. 로봇과의 상호작용이 진정한 인간관계가 주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을 대체할 수 있는가? 프로그래밍된 친절함과 공감에 익숙해진 우리가, 갈등과 오해, 화해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실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을 점점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결국 기술에 대한 의존이 우리를 더욱 인간적인 관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전하고 쉬운 가상 관계 속에 안주하게 만들어 고립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허츠는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더 인간다워지도록 돕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도전 과제를 남긴다.
10장. 외로움 경제, 접촉하고 연결하라
10장은 자본주의가 현대인의 '외로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어떻게 새로운 시장으로 포착하고 상품화하는지를 분석한다. 이를 '외로움 경제(Loneliness Economy)'라고 명명하며, 이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겨냥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앞서 언급된 '친구 대여 서비스'나 '포옹 서비스'는 관계와 접촉을 직접적으로 판매하는 극단적인 예시다. 또한, 공동 주거 공간(Co-living), 공유 오피스(Co-working), 각종 소셜 클럽 등 '공동체'를 표방하는 상업적 공간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느슨한 공동체 의식과 네트워킹의 기회를 제공하며 고립감을 느끼는 도시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허츠는 이러한 '상업화된 공동체'가 가진 한계를 지적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공동체는 충분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특정 계층에게만 열려 있으며,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배제된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 분리를 낳을 수 있다.
또한, 저자는 '공유 경제(Sharing Economy)'의 허상을 비판한다. 에어비앤비나 우버와 같은 플랫폼들은 '공유'와 '연결'이라는 가치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개인들을 원자화된 서비스 제공자로 만들고, 전통적인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며, 이윤은 거대 플랫폼 기업이 독점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아닌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진정한 공동체 의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허츠는 진정한 공동체는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시간과 노력을 들여 관계를 맺고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상업화된 관계는 일시적인 위안을 줄 수 있지만, 고립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11장. 흩어지는 세계를 하나로 모으다
마지막 11장은 이 책의 결론으로, '고립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해결책을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의 차원에서 제시한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효율성과 이윤 극대화가 아닌 '돌봄, 온정, 협력'의 가치를 사회 운영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 정부의 역할:
• 계산법 바꾸기: 국가의 성공을 측정하는 지표를 국내총생산(GDP)에서 국민의 웰빙, 행복, 지속가능성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뉴질랜드의 '웰빙 예산'을 모범 사례로 제시한다.
• 사회 안전망 강화: 불평등을 완화하고 경제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보편적 기본소득, 양질의 공교육, 저렴한 의료 서비스 등 강력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 공동체 인프라 투자: 사람들이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도서관, 공원, 청소년 센터, 커뮤니티 가든 등 공공 공간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
• 빅테크 규제: 감시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고, 시민의 데이터를 보호하며, 소셜 미디어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 기업의 역할:
•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주주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대신, 노동자, 고객, 협력업체, 지역 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하는 경영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 인간적인 일터 조성: 노동자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고립을 조장하는 업무 환경을 개선하며, 직원 간의 협력과 다정함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연결을 촉진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 개인의 역할:
• 일상 속 연결 연습: 거창한 변화가 아니더라도, 매일 마주치는 바리스타나 가게 점원에게 말을 거는 작은 행동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 디지털 디톡스: 의식적으로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 대면 만남의 시간을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공동체 참여: 지역 사회의 자원봉사, 동호회 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민주주의의 기술'을 연마하고 사회적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
허츠는 이러한 다층적인 노력을 통해 흩어지고 분열된 세계를 다시 하나로 모으고,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회를 재건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 용어 )
•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경제 이데올로기로,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규제 완화), 공기업을 민영화하며, 복지를 축소하는 정책을 옹호한다. 개인의 책임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반면, 공동체적 가치나 사회적 연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 헬퍼스 하이(Helper's High): 타인을 돕는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 느끼는 심리적 포만감과 행복감을 뜻하는 용어. 뇌에서 엔도르핀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스트레스가 감소하고 면역력이 증진되는 등 긍정적인 신체적, 정신적 효과를 동반한다.
• 포퓰리즘(Populism): 일반 대중(the people)의 뜻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부패한 엘리트나 기득권층에 맞서는 정치 이데올로기. 종종 대중의 불안과 분노를 자극하고,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배타적인 방식을 사용한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계층이 포퓰리즘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 적대적 건축(Hostile Architecture): 도시의 공공 공간에서 노숙이나 장시간 머무는 행위 등 특정 행동을 물리적으로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설계된 건축이나 디자인. 예를 들어, 눕지 못하게 팔걸이가 설치된 벤치, 바닥의 스파이크 등이 있다. '배제적 디자인'이라고도 불린다.
•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쇼샤나 주보프 교수가 제시한 개념.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사용자의 온라인 활동 데이터를 무상으로 수집하고, 이를 분석하여 사용자의 미래 행동을 예측하는 '예측 상품'을 만들어 광고주 등에게 판매하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사용자의 경험이 이윤 창출의 원재료가 된다.
• 긱 이코노미(Gig Economy): 필요에 따라 임시적으로 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경제 형태. 우버 운전사, 배달 라이더처럼 플랫폼을 통해 단기적인 일(gig)을 얻는 노동 방식이 대표적이다. 노동자의 자율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고용 불안정성, 사회보장제도 부재, 플랫폼의 통제와 감시 등의 문제가 지적된다.
•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고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드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 사회적 관계망의 총체. 로버트 퍼트넘은 『나 홀로 볼링』에서 미국 사회의 사회적 자본이 쇠퇴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사회적 자본이 풍부할수록 사회는 더 건강하고 발전할 수 있다.
•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제시한 개념. 과거의 견고하고 안정적이었던 사회 구조(가족, 직업, 국가 등)가 해체되고,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동적으로 변하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설명한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지만, 동시에 극심한 불안과 불확실성을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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