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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해석과 이해(구조와 에세이)/책 해석과 이해(경제,전략)

[다시 케인스- 1부] 15시간 노동의 시대, 케인스의 유토피아적 예언은 왜 빗나갔는가?

by 유미 와 비안 2025. 10. 18.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스'의 예언,

"인류는 주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다." 『다시 케인스』1부

우리 시대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이 예측이 왜 빗나갔는지 소비주의, 불평등, 노동의 의미 등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는 지적 향연이다.

 

'다시 케인스' : 15시간 노동의 시대, 케인스의 유토피아는 왜 오지 않았는가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진정한 영구적 문제-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여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1930년, 대공황의 어둠 속에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짧은 에세이를 통해 이처럼 놀랍도록 낙관적인 예언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기술 발전과 자본 축적 덕분에, 100년 뒤인 2030년경 인류는 '경제 문제'¹에서 해방되어 주 15시간만 일하며 풍요로운 여가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다시 케인스(Rethinking Keynes)』는, 케인스의 예측이 거의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부분(소득 증대)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여전히 그 어느 때보다 더 오래, 더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가? 라는 거대한 질문에 대해, 노벨상 수상자들을 포함한 우리 시대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각자의 시각으로 답하는 한 편의 지적인 응답서입니다.

 

 

다시 케인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외 - 1부 : 케인스의 유토피아

 

 

다시 케인스』1부

 

1부: 케인스의 예언은 왜 빗나갔는가? (1장 ~ 7장)


1부는 케인스의 원문을 시작으로, 그의 예언이 빗나간 이유를 세계화, 소비주의, 불평등, 그리고 노동의 의미라는 각기 다른 렌즈를 통해 분석합니다.


• 1장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 (존 메이너드 케인스): 모든 논의의 출발점입니다. 케인스는 기술 진보와 자본 축적 덕분에 생산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욕구를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① 생존에 필요한 '절대적 욕구'²와 

② 남들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상대적 욕구'²

그는 '절대적 욕구'는 곧 충족될 것이며, '상대적 욕구'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므로, 인류가 마침내 '아담의 저주'(노동)에서 벗어나 삶의 예술을 즐기는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 2장 75년 후 글로벌 관점에서 따져보기 (파브리지오 질리보티): 질리보티는 케인스의 예측이 '글로벌 관점'에서 빗나갔다고 지적합니다. 케인스는 서구 선진국만을 염두에 두었지만, 20세기 후반 중국과 인도의 부상이라는 거대한 변수가 등장했습니다. 선진국들은 자신들만 여유를 즐기는 대신, 이 새로운 경쟁자들과의 세계적인 경쟁에 뛰어들어야만 했습니다. 즉, '남들보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상대적 욕구'의 게임이 한 국가를 넘어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3장 소비주의의 일반이론을 향해 (조지프 스티글리츠): 노벨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는 케인스가 현대 자본주의의 속성, 즉 '소비주의'³의 힘을 과소평가했다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케인스는 인간의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대 자본주의는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욕구를 '창조'합니다. 기업들은 우리의 '상대적 욕구'를 집요하게 자극하여, 어제의 사치품을 오늘의 필수품으로 만듭니다. 결국 '충분함'의 기준선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우리는 이 무한한 소비의 쳇바퀴를 돌리기 위해 계속 일해야만 합니다.


• 4장 케인스가 말한 손자 손녀는 누구인가? (로버트 솔로):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인 솔로는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케인스가 말한 '우리' 손자 손녀가 과연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케인스의 예측대로 1인당 소득은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그 과실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소수의 부유층은 이미 주 15시간 노동의 유토피아를 넘어선 삶을 살고 있지만, 대다수의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치솟는 주거비와 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여전히 힘들게 일해야 합니다. 즉, 평균의 함정에 빠져 분배의 문제를 간과했다는 것입니다.


• 5장 협동조합주의와 케인스의 성장 철학 (에드먼드 펠프스): 펠프스는 문제의 초점을 '노동 시간'이 아닌 '노동의 의미'로 전환합니다. 그는 케인스가 '노동'을 단지 생계를 위한 고역으로만 보고, 일 자체가 주는 도전, 성취감, 그리고 자아실현의 가치를 간과했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통해 의미를 찾고 세상에 기여하기를 원합니다. 즉, 인류는 '여가'라는 미지의 영역 대신, '의미 있는 일'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 6장 케인스와 함께 백 투 더 퓨처 (리 오헤니언): 오헤니언은 정반대의 관점에서, 우리가 케인스의 예측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바로 '케인스주의적 정책' 그 자체 때문이라고 비판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 높은 세율, 그리고 경직된 노동 규제 등이 기업의 혁신과 투자를 저해하여, 생산성 증가를 가로막았다는 것입니다. 즉, 정부가 시장을 내버려 두었다면, 우리는 이미 케인스의 유토피아에 더 가까이 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 7.장 버터 위에 빵을 얇게 펴 바르기 (악셀 레이욘휘브드): 레이욘휘브드는 우리가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더 많은 소비'와 '조금 더 많은 여가' 사이에 '얇게 펴 발랐다'고 분석합니다. 즉, 주 15시간 노동이라는 급진적인 선택 대신, 주 5일 근무와 여름휴가, 그리고 더 많은 상품을 소비하는 길을 점진적으로 선택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여가'보다 '소비'를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음을 보여줍니다.

 

 

주석 (용어 해설)


¹ 경제 문제(The Economic Problem): 케인스가 사용한 용어로, 생존과 기본적인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인류의 오랜 과제. 그는 이것이 곧 해결될 것이라고 보았다.
² 절대적 욕구(Absolute Needs) vs. 상대적 욕구(Relative Needs): 케인스의 중요한 구분. '절대적 욕구'는 타인과 상관없이 느끼는 기본적인 필요(음식, 주거 등)이며, 언젠가는 충족될 수 있다. 반면, '상대적 욕구'는 남들보다 더 나아 보이고 싶은 욕구(과시적 소비 등)이며, 무한히 계속될 수 있다.
³ 소비주의(Consumerism):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행복과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는 믿음이나 가치 체계. 스티글리츠는 현대 자본주의가 이 소비주의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다시 케인스』1부 - 구조적 해석


• 경제학적 관점: 

 

이 책은 케인스주의와 현대 주류 경제학 사이의 대화 그 자체입니다. 스티글리츠와 프랭크(10장)는 '정보 비대칭'과 '상대 소득 가설' 같은 행동경제학적, 제도주의적 통찰을 통해 케인스의 심리학적 가설을 발전시킵니다. 반면, 오헤니언이나 베커(13장)는 합리적 선택과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신고전학파의 시각에서 케인스를 비판합니다. 솔로와 프리드먼(8장)은 분배와 불평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거시 경제를 분석합니다. 즉, 이 책 한 권으로 현대 경제학의 주요 학파들이 '노동, 여가, 성장'이라는 주제에 대해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는지 그 지형도를 볼 수 있습니다.


• 사회학적 관점: 

 

이 책은 소비 사회와 노동 사회학의 핵심 쟁점들을 다룹니다. 스티글리츠의 '소비주의' 비판은, 소비가 단순히 필요를 충족시키는 행위를 넘어,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적 행위임을 보여주는 소비 사회학의 통찰과 일치합니다(베블런의 '과시적 소비' 개념). 또한, 펠프스와 프리먼(9장)의 논의는, 노동이 단지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자아실현을 하는 '의미의 원천'임을 강조하는 노동 사회학의 관점을 반영합니다.


• 심리학적 관점: 

 

이 책의 근본적인 질문은 결국 "인간은 무엇으로 만족하는가?"라는 심리학적 질문입니다. 케인스는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처럼, 일단 기본적인 '절대적 욕구'가 충족되면 더 높은 차원의 욕구(여가를 통한 자아실현)로 나아갈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 하지만 스티글리츠는 인간의 '상대적 욕구'가 광고와 사회적 비교를 통해 무한히 자극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펠프스는 '일' 자체가 자아실현의 과정이 될 수 있음을, 프랭크는 '지위 경쟁'이라는 심리가 우리의 소비 패턴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인간의 동기 부여와 행복이 결코 단순한 물질적 충족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다시 케인스』 1부 - 거미인간(호모 넥서스)


『다시 케인스』는 '거미인간(호모 넥서스)'에게, 케인스가 꿈꿨던 미래와 우리가 마주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줍니다. 케인스는, 기술 발전 덕분에 우리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연결'(경제적 노동)의 그물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 학문, 인간관계와 같은 더 자유롭고 창조적인 '선택적 연결'의 그물을 짜며 살아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가 왜 여전히 낡은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물은 이제 국가 단위를 넘어 전 지구적으로 '글로벌하게 연결'(질리보티)되었고, 그물 안에는 '소비주의'라는 끝없이 새로운 먹잇감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스티글리츠)이 작동하고 있으며, 그물의 영양분이 '불평등하게 연결'(솔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많은 거미들이 그물 잣는 행위 자체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노동과의 연결'(펠프스)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낡은 그물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라, 더 크고, 더 복잡하며, 더 현란한 새로운 그물 속에 살게 된 것입니다.

 

 

다시 케인스』1부 - 비판과 논쟁


이 책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풍부한 통찰을 제공하지만, 그 형식과 내용에 대해 몇 가지 비판적 논의가 가능합니다.


• 앤솔러지의 본질적 한계: 여러 저자의 글을 모았기 때문에, 통일된 논증이나 일관된 결론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각 장의 주장들이 서로 충돌하거나(예: 펠프스 vs. 스티글리츠), 논의가 파편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서구 중심적, 엘리트주의적 시각: 대부분의 기고가들이 미국의 최고 엘리트 경제학자들입니다. 이로 인해 '과로'의 문제를 주로 선진국 중산층의 '선택'의 문제로 분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노동이나, 비정규직, 돌봄 노동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노동 문제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서구 중심적, 엘리트주의적 한계가 있습니다.


• '여가'에 대한 편협한 상상력: 많은 저자들이 케인스와 마찬가지로 '여가'를 단순히 '노동하지 않는 시간'으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사 노동, 돌봄 노동, 감정 노동 등, 임금은 받지 않지만 여전히 '노동'인 활동들이 존재합니다. 여성과 비정규직의 관점에서 '여가'의 의미를 더 깊이 탐구하지 못했다는 페미니즘적 비판이 가능합니다.


급진적 대안의 부재: 대부분의 저자들은 기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점진적인 개선을 이야기할 뿐, '기본소득'이나 '노동 시간의 급진적 단축'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대안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탐구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함께 읽어야 할 책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이 책의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 된 케인스의 주저입니다. 그가 어떻게 대공황을 분석하고 '유효수요'라는 개념을 통해 거시경제학의 시대를 열었는지, 그의 가장 깊은 사유를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피로사회』 (한병철 저,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2) 우리가 왜 더 풍요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지쳐가는지, 그 이유를 '성과사회'와 '자기 착취'라는 개념을 통해 분석한 책입니다. 케인스 시대의 '규율사회'와는 다른,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의 피로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불평등의 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저,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2013) 이 책의 기고자 중 한 명인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불평등' 문제가 어떻게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 심층 분석한 대표작입니다. 로버트 솔로가 제기한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듭니다.

『Bullshit Jobs(불쉿 잡)』 (데이비드 그레이버 저, 김리브 옮김, 민음사, 2021) 우리가 왜 이렇게 오래 일하는가에 대한 가장 급진적이고 도발적인 답변입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일자리가 사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쓰레기 같은 일'이며, 이것이 우리의 정신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고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