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의 대표작. 『 자유주의적 평등 』
'자원의 평등'과 '운 평등주의'라는 독창적인 이론을 통해,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선천적인 불운을 보상하는 정의로운 사회의 모델을 제시한다.
'자유주의적 평등' : 드워킨, 당신의 불운은 어디까지 당신의 책임인가
"정의로운 사회란, 시민들의 운명이 그들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도록 하고,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여건'에 따라 결정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이다."
20세기 최고의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로널드 드워킨은, 그의 저서 『자유주의적 평등(Sovereign Virtue: The Theory and Practice of Equality)』을 통해 이처럼 선언합니다. 이 책은 존 롤스의 『정의론』이 남긴 질문, 즉 '무엇을 평등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가장 정교하고도 독창적인 답변입니다. 드워킨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행복하게 만드는 '복지의 평등'을 비판하고, 대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인생 계획을 추구할 동등한 기회를 갖도록 '자원의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무인도 경매'와 '가상 보험 시장'이라는 천재적인 사고 실험을 통해, 개인의 '선택'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지게 하되,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선천적인 불운('여건')에 대해서는 공동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운 평등주의'¹라는 새로운 정의관을 제시합니다. 이는 현대 복지국가의 철학적 토대를 가장 정교하게 다듬은 우리 시대의 필독 고전입니다.

『 자유주의적 평등 』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전반부(1부)에서는 '자원의 평등'이라는 자신의 정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후반부(2부)에서는 그 이론을 의료, 소수자 우대 정책, 유전자 공학과 같은 현실의 구체적인 딜레마에 적용합니다.
• 1부 평등의 이론: 무엇을 평등하게 만들 것인가
ⓐ 1장 복지의 평등 비판: 드워킨은 먼저 사람들이 똑같이 '행복'하거나 '만족'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복지의 평등'² 개념을 비판하며 논의를 시작합니다. 이는 매우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값비싼 샴페인을 마셔야만 만족하는 '비싼 취향'을 가졌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단지 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주는 것은 불공평합니다.
ⓑ 2장 자원의 평등: 무인도 경매와 보험 시장: 드워킨은 자신의 대안인 '자원의 평등'²을 제시하며, 두 가지 유명한 사고 실험을 펼칩니다.
※ 무인도 경매와 선망 검사³: 난파선의 생존자들이 무인도에 도착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섬의 모든 자원을 어떻게 공평하게 나눌 수 있을까요? 드워킨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개수의 조개껍데기(화폐)를 나누어주고, 각자가 자신의 인생 계획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원(땅, 과일나무 등)을 '경매'를 통해 사도록 하자고 제안합니다. 경매가 끝난 후, 아무도 자신의 자원 묶음보다 다른 사람의 자원 묶음을 더 부러워하지 않을 때(선망 검사), 비로소 자원의 평등은 달성됩니다. 이 경매는 각자의 '선택'과 '취향'을 존중하는 평등의 모델입니다.
※ 가상 보험 시장: 하지만 이 경매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재능과 건강을 가졌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전제로 합니다. 만약 누군가 선천적인 장애를 가졌거나, 시장에서 가치 없는 재능을 타고났다면 어떨까요? 드워킨은 이 '타고난 불운'(여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매 전에 사람들이 '가상의 보험 시장'에 참여한다고 가정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재능이나 장애를 갖고 태어날지 모르는 '무지의 베일' 뒤에서, 만약 불리한 조건으로 태어날 경우를 대비해 자신의 조개껍데기 일부를 사용하여 보험에 가입할 것입니다. 바로 이 가상 보험 시장에서 사람들이 지불할 용의가 있는 '보험료'의 총액이, 현실 세계에서 장애인이나 저소득층을 돕기 위한 세금과 복지 제도의 정당한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 3장~7장 자유, 공동체, 그리고 좋은 삶: 이 이론적 토대 위에서, 드워킨은 자신의 평등 이론이 개인의 '자유'와 어떻게 양립하는지, 그리고 국가가 특정 '좋은 삶'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지 탐색합니다.
• 2부 평등의 실제: 현실 문제에 이론 적용하기
드워킨은 자신의 '선택 대 여건'⁴ 구분을 현실의 뜨거운 쟁점들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정책적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 의료, 정의, 그리고 운: 질병은 개인이 선택한 것이 아닌, 대표적인 '불운'입니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회는 모든 시민이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적극적 우대 조치(소수자 우대 정책): 드워킨은 소수자 우대 정책이 과거의 잘못을 보상하거나, 특정 인종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대학이나 사회가 '다양성'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종을 유용한 기준 중 하나로 사용하는 합리적인 정책이므로 공정하다고 옹호합니다.
ⓒ 신 노릇 하기 (유전자 공학): 유전자를 편집하여 아이의 특성을 바꾸는 것은 허용될 수 있는가? 그는 질병을 치료하는 목적의 유전자 치료는 정당하지만, 아이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목적의 유전자 강화는 평등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주석 (용어 해설)
¹ 운 평등주의(Luck Egalitarianism): 현대 평등주의의 한 흐름. 개인의 '선택'에서 비롯된 불평등은 정당하지만,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운'(선천적 재능, 장애, 가정 환경 등)에서 비롯된 불평등은 사회가 시정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보는 정의관.
² 복지의 평등 vs. 자원의 평등: '무엇을 평등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두 가지 다른 답변. '복지의 평등'은 결과적인 행복이나 만족의 수준을 같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원의 평등'은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수단(자원)을 동등하게 나누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³ 선망 검사(Envy Test): 자원 분배가 평등한지를 판별하는 드워킨의 기준. 분배가 끝난 후,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이 가진 자원의 묶음을 자신의 것보다 더 선호(선망)하지 않는다면, 그 분배는 평등한 것으로 간주된다.
⁴ 선택 대 여건(Choice vs. Circumstance): 드워킨 정의론의 핵심 구분. '선택'은 개인의 야망, 노력, 취향처럼 스스로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여건'은 개인이 선택하지 않은 선천적 재능, 장애, 사회적 환경처럼 공동체가 그 불평등을 보상해야 할 영역이다.
『 자유주의적 평등 』구조적 해석
• 정치철학적 관점:
이 책은 존 롤스 이후의 자유주의적 평등주의(liberal egalitarianism)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저작입니다. 드워킨은 롤스와 동일한 목표(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추구하지만, '기본재'가 아닌 '자원'의 평등을 주장하고, '차등의 원칙' 대신 '선택과 여건'⁴의 구분을 통해 재분배의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롤스와 차별화됩니다. 그의 '운 평등주의'¹는 롤스 이후 평등주의 논쟁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 법철학적 관점:
드워킨은 20세기 최고의 법철학자였으며, 그의 정의론은 그의 법철학과 깊이 연결됩니다. 그에게 법과 헌법을 해석하는 궁극적인 기준은, 그 법이 과연 모든 시민을 '평등한 관심과 존중(equal concern and respect)'으로 대우하는가 하는 도덕적 원칙입니다. 2부에서 그가 소수자 우대 정책이나 표현의 자유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추상적인 정의론이 어떻게 구체적인 헌법적 쟁점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 경제학적 관점:
'무인도 경매'와 '가상 보험 시장'이라는 사고 실험은, 드워킨이 경제학의 분석 도구(경매 이론, 보험 시장 이론)를 얼마나 정교하게 자신의 철학적 논증에 활용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철학적 공정성의 문제를, 합리적 행위자들이 가상의 시장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전환시킵니다. 이는 철학과 경제학의 경계를 허무는 독창적인 시도입니다.
• 심리학적 관점:
드워킨의 이론은 '책임'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도덕 심리와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운'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돕고 싶어 합니다. 드워킨의 '선택 대 여건'⁴ 구분은 바로 이 강력한 도덕 심리를 정교한 정치철학적 원리로 체계화한 것입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우리의 도덕적 직관과 일치해야 한다. 우리는 게으른 베짱이를 돕고 싶어 하지 않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한 개미는 돕고 싶어 한다."
『 자유주의적 평등 』거미인간(호모 넥서스)
로널드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은 '거미인간(호모 넥서스)'에게, 가장 공정한 그물(사회)을 직조하기 위한 가장 정교한 '설계도'를 제시합니다. '무인도 경매'는, 모든 거미들이 동등한 자원(조개껍데기)을 가지고, 각자의 고유한 삶의 계획에 따라 원하는 위치의 실들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최초의 그물을 짜는 과정입니다. '선망 검사'는 이 그물이 모든 거미의 '선택'을 평등하게 존중했음을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하지만 이 설계도의 가장 위대한 부분은 '가상 보험 시장'입니다. 이는 그물을 짜기 전, 모든 거미들이 자신이 어떤 종류의 거미로 태어날지(강한 실을 뽑는 재능, 약한 다리 등) 모르는 상태에서, 만약의 '불운'에 대비하여 자원의 일부를 공동의 '보험 기금'에 내놓는 합의입니다. 드워킨의 정의론은, '거미인간'에게 진정한 연결이란,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그물을 만들되, 그 어떤 거미도 '불운' 때문에 그물에서 떨어져 죽지 않도록, 서로의 안전망이 되어주는 '책임 있는 연결'임을 가르쳐줍니다.
『 자유주의적 평등 』비판과 논쟁
드워킨의 '운 평등주의'는 매우 영향력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날카로운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 가혹함과 낙인 효과 (엘리자베스 앤더슨의 비판): '운 평등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그것이 매우 가혹하고 비인간적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자신의 '부주의한 선택'(예: 헬멧 없이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를 당한 사람, 건강 관리를 소홀히 한 흡연자)으로 불행에 빠진 사람에 대해, 국가는 "그것은 당신의 책임"이라며 외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가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들의 불행이 '타고난 결함' 때문인지, 아니면 '어리석은 선택' 때문인지 모욕적인 방식으로 판정해야만 합니다. 이는 시민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비판입니다.
• '비싼 취향' 문제의 단순화: 드워킨은 '비싼 취향'을 가진 사람을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 '취향'과 '불운'의 경계는 매우 모호합니다. 예를 들어, 예술가나 철학자처럼 돈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한 열정은 과연 '자발적 선택'으로 치부되어야 하는가? 그의 이론이 시장에서 가치 있게 평가받는 삶의 방식만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입니다.
• 재능에 대한 징벌?: 그의 이론은 타고난 재능이 '불운'의 반대편에 있는 '행운'이므로, 재능 있는 사람에게 높은 세금을 거두어 재능 없는 사람을 돕는 것을 정당화합니다. 이는 마치 재능 자체를 징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개인의 고유한 능력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습니다(노직의 비판과 유사).
• 사고 실험의 비현실성: '무인도 경매'나 '가상 보험 시장'은 매우 지적으로 정교하지만, 너무나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현실 세계의 복잡한 세금 제도나 복지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입니다.
함께 읽어야 할 책
『정의론』 (존 롤스 저, 황경식 옮김, 이학사, 2003) 드워킨의 이론이 대결하고 넘어서려 했던 바로 그 책입니다. 롤스의 '기본재'와 '차등의 원칙'을 드워킨의 '자원'과 '보험 시장' 모델과 비교하며 읽으면, 현대 자유주의적 평등주의의 핵심적인 논쟁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로버트 노직 저,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 드워킨과 롤스 모두를 비판하는 자유지상주의의 대표작입니다. 노직은 재능 있는 사람에게 세금을 거두는 모든 행위가 '강제 노동'과 같다고 주장하며, 드워킨의 '운 평등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을 제시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저, 김명철 옮김, 와이즈베리, 2014) 드워킨과 롤스로 대표되는 '중립적' 자유주의에 반대하여, 정의가 '공동선'과 '미덕'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공동체주의의 대표적인 입문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