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흐름을 감지하고, 의미를 조율하며, 관계의 반응성을 관리해야 합니다. 거미인간은 바로 이런 ‘인지적 공명자’이며, 앞으로의 시대에는 이 감지력과 흐름 읽기 능력이 새로운 형태의 지능, 즉 ‘네트워크형 지능’이 될 것입니다.
거미인간(호모 넥서스Homo Nexus)
비선형구조의 사고, 관계와 연결로 사고 하는 인간 - 다중 정체성, 맥락적 자아
인류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 '호모 넥서스'
Part 4. 호모 넥서스 – 거미인간의 출현
4.3 다중 정체성과 맥락적 자아의 탄생
“지금 당신은 누구인가요?”
이 질문에 우리는 예전처럼 ‘하나의 정체성’으로 답하기가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팀장’이고, 집에서는 ‘아빠’이며, SNS에서는 ‘고양이 덕후’이고,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완전히 다른 말투와 관심사를 가진 누군가입니다. 예전에는 ‘본질적인 나’라는 것이 있었고, 그 위에 여러 역할이 얹혀지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정체성이 생성되고, 그것이 서로 모순됨 없이 공존합니다. 이제 자아란 하나의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다중적이고, 유동적이며, 맥락적으로 생성되는 네트워크’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중 정체성과 맥락적 자아(contextual self)”의 탄생이며, 거미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특성 중 하나입니다.
‘정체성은 하나여야 한다’는 명제의 붕괴
과거의 자아는 통합성과 일관성을 중시했습니다. 이는 종교, 도덕, 교육, 국가 정체성의 뿌리와 연결되어 있었고, “너는 어떤 사람이니?”라는 질문에 ‘한 문장’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은 이 관점을 반박합니다. 사회심리학자 ‘케네스 거겐’(Kenneth Gergen)은 ‘다중 자아의 시대’(학지사 / 2011)에서 현대인은 단일한 자아 대신,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서로 다른 정체성을 생성하는 ‘관계적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의 자아’를 유지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각 맥락에서 필요한 정체성을 유동적으로 생성하고 관리합니다. SNS는 자아의 실험실이다. 특히 SNS는 현대인의 다중 정체성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여행하는 자유로운 나를, 링크드인에서는 전문성과 조직 소속감을 강조하는 나를, 트위터나 블로그에서는 날카로운 시사 의식을 드러내는 나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정체성은 ‘거짓’이 아닙니다. 그 맥락에서는 모두 ‘진짜’입니다. 이는 단순한 위선이나 위장이 아니라, 자아가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는 것 즉 자아의 비선형적 탄생을 보여줍니다. 거미인간은 바로 이 다중적 정체성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맥락적 자아 – 거미줄 위의 유동적 중심
거미인간은 한 지점에 고정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아를 거미줄처럼 뻗어나간 관계 속에서 구성합니다. 직장에서의 나, 연애에서의 나, 가족 내에서의 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나, 디지털 페르소나로서의 나 이 정체성들은 모순되지 않고, 동시에 존재하며, 필요에 따라 우선순위를 바꾸거나 연결을 재조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맥락적 자아’의 구조입니다. 정체성은 중심이 아니라, ‘관계망 위에 떠 있는 매듭’에 가깝습니다. 정체성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자 네트워크입니다.
철학과 심리학에서 본 다중 자아
'프로이트'는 자아를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으로 보았고, '칼 융'은 개인무의식뿐 아니라 집단무의식과 원형(archetype)으로 자아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자아를 ‘내면의 구조’로 보았던 반면,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Deleuze)’는 ‘차이와 반복’(새물결 / 2010)에서 자아는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 “되기의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들뢰즈'는 자아를 주체(subject)가 아니라, ‘흐름 속의 사건(event)’으로 보며, 정체성은 정지된 성질이 아니라 끊임없는 차이의 운동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철학은 SNS 시대, 멀티플랫폼 시대의 자아 이해와 깊이 연결됩니다.
왜 다중 자아는 위협이 아니라 진화인가?
전통적 시선에서는 “자아가 많다”는 것은 불안정함이나 위선, 자기 분열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는 하나의 자아만을 고수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기준, 하나의 가치관, 하나의 사고방식에만 고정된 자아는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려우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유연하지 못합니다. 반면, 거미인간은 다중 자아를 통해 공감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며 상황에 따라 자신을 재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 “심리적 유연성(Psychological Flexibility)”의 본질이며, 비선형 사고를 하는 인간이 갖춰야 할 핵심 역량입니다.
용어 주석
다중 자아(Multiple Self) - 개인이 다양한 맥락과 사회적 역할에 따라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상태.
맥락적 자아(Contextual Self) - 자아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와 상황에 따라 구성되는 동적 존재.
페르소나(Persona) - 사회적으로 수행하는 가면이나 역할. 칼 융이 제시한 개념.
심리적 유연성(Psychological Flexibility) -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수용할 수 있는 심리적 역량.
되기(Devenir) - 들뢰즈 철학에서 존재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운동 그 자체를 의미.
참고문헌
케네스 거겐 / 다중 자아의 시대 / 학지사 / 2011
칼 융 / 심리학과 종교 / 문예출판사 / 2021
질 들뢰즈, / 차이와 반복 / 새물결 / 2010
김경일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심리학 / arte / 2022
조한혜정 / 사이보그가 되다 / 문학과지성사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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