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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멈춘 자리(구조와 에세이)/거미인간 - 연결과 확산 언어의 시대

'거미인간' (호모 넥서스) Part 1-3

by 유미 와 비안 2025. 5. 20.

'거미인간'(호모넥서스 Homo Nexus) 

비선형구조의 사고, 관계와 연결로 사고 하는 인간

거미인간(호모넥서스) - 사고의구조와 문명

 

Part 1. 사피엔스, 선을 따라 걷다 – 선형 사고의 탄생과 문명

3. 사고의 구조는 어떻게 문명을 만들었는가


우리는 흔히 ‘문명’을 기술의 산물이나 제도의 진화로 이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문명의 출발점에는 그보다 훨씬 깊고 보이지 않는 구조가 존재합니다. 바로 ‘사고의 방식’입니다.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정보를 어떻게 조직하고, 의미를 어떻게 연결하는가 - 이 보이지 않는 틀이 바로 문명의 모양을 결정짓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과 구별되기 시작한 것도 이 사고 구조의 형성 덕분이었습니다. 약 7만 년 전 인지 혁명 이후 인간은 서로 협력하고 복잡한 규칙과 서사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언어와 도구, 규범과 제도를 가능케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고 방식에는 명확한 ‘방향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앞에서 뒤로’, ‘원인에서 결과로’,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선형적 구조였습니다.

 

선형성은 마치 기찻길과 같습니다. 출발점이 있고, 이정표가 있으며, 목표지점이 존재합니다. 인간은 이 사고 구조를 통해 계획을 세우고, 기억을 조직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직선적인 사고는 명확하고, 단순하며, 통제가 가능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이로 인해 인간은 점점 더 복잡한 질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문명은 이 선형적 구조를 기반으로 진화했습니다. 농업 사회에서는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주기가 철저히 시간의 선형적 흐름에 따라 이루어졌고,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왕조의 계보와 연대기를 기록하며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와 같은 세계 종교도 인간의 삶을 직선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창조에서 타락, 구원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직선은 인간의 도덕적 책임과 종말에 대한 사고를 낳았습니다.

 

근대 과학도 이 사고 구조를 전제로 작동했습니다. 뉴턴 역학의 기본은 ‘원인-결과’의 명확한 연쇄이며, ‘시간’이라는 절대 좌표 위에서 사건들을 측정하고 예측하는 방식은 산업 혁명 이후의 생산성 중심 사회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이러한 선형 사고는 학교의 교육 시스템(진도, 시험, 졸업), 법률 제도(조문, 선례), 기업 조직(위계와 직무, 연차)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모든 구조에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직선으로 사고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직선은 점점 더 길어지고, 빨라졌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질주했고, 시간은 항상 부족하며, 성장은 멈출 수 없는 목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선이 점점 팽팽해질수록, 우리는 피로해졌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과 목표, 일정으로 조율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불안해졌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는 무력해졌고, 복잡한 관계 속에서는 ‘정답’을 찾는 사고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질문합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왜 나의 삶은 정답을 맞추는 시험처럼 느껴지는가?”

 

우리는 지금, 사고 구조의 모순과 피로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스트레스나 적응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명을 지탱해온 인지적 질서, 그 ‘선형적 사고의 구조’가 지금의 시대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글은 바로 그 구조의 해체와 전환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이제 ‘기찻길’이 아닌 ‘거미줄’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미줄은 중심이 없고, 방향이 없습니다. 그것은 감지의 구조이며, 흔들림과 반응의 패턴을 중심으로 작동합니다. 복잡하고 유기적인 세계를 이해하려면, 이제 우리는 사고의 틀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선형 사고가 문명을 만들었다면, 비선형 사고는 새로운 인간을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문턱 위에 서 있습니다.

 

용어 주석


• 선형적 사고(linear thinking): 시간이나 인과를 순차적으로 나열하여, 명확한 시작과 끝, 논리적 흐름을 중시하는 사고 방식.
• 비선형적 사고(non-linear thinking): 병렬적이고 맥락 중심적이며, 다양한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고 구조. 예측보다는 감지와 반응에 초점을 둠.

 

참고문헌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 김영사 / 2015
•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 김영사 / 2012
• 김상욱, 김상욱의 과학공부 / 김상욱 / 동아시아 / 2020
• 최재붕, CHANGE 9 / 최재붕 / 북스톤 / 2021
• 김경일, 지금, 다시, 나에게 집중할 시간 / 김경일 / 진성북스 /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