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인간'(호모넥서스Homo Nexus)
비선형구조의 사고, 관계와 연결로 사고 하는 인간
인류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 '호모 넥서스'

Part 1. 사피엔스, 선을 따라 걷다
1.7 선형적 문명의 불안에 의해 발생되는 문제들
모든 것이 질서 속에 있을 때, 인간은 안심합니다. 그러나 그 질서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지나치게 강제적일 때, 오히려 인간은 안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선형적 문명은 분명 우리에게 명료함과 예측 가능성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것이 인간의 내면에 어떤 균열을 만들어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이야말로 문명화된 인간 안에서 억압되고 숨겨진 감정과 충동이 응축된 지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문명 속의 불만’ (Sigmund Freud, ‘문명 속의 불만, 열린책들, 2013) 에서 “문명은 인간에게 일정 수준의 억제를 요구하며, 이는 곧 불만과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즉, 규범과 질서로 정돈된 사회는 외형적으로는 아름답지만, 내면적으로는 억압된 감정들이 점점 쌓이는 구조입니다. 인간은 문명을 만들어 놓고, 그 문명이 만들어낸 규칙 속에서 오히려 질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일상적인 예로 ‘시간’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선형 문명은 시간을 철저하게 직선화하고, 이를 기준으로 삶을 계획하고 평가합니다. 우리는 언제 태어났고, 몇 살에 무엇을 해야 하며, 몇 년 후에는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타임라인’을 요구 받습니다. 그러나 감정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상실감은 하루 만에 사라지지 않고, 창의력은 정해진 시간에만 발현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시간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매 순간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인간의 ‘불안’은 시작됩니다.

칼 구스타프 융은 이러한 내면의 갈등을 ‘자아(Self)’와 ‘페르소나(Persona)’의 긴장으로 설명합니다. ‘분석심리학 강의’에서 그는 “사회적 자아는 무의식의 그림자를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쓴다”고 말합니다. (칼 융, ‘분석심리학 강의’, 동서문화사, 2007). 이 말은 현대인들이 SNS나 직장에서 수행하는 ‘정체성’이 진정한 자신이 아닐 수 있으며, 그 이면에 억압된 자아가 있다는 뜻입니다. 즉, 선형적 문명이 만든 고정된 역할은 인간에게 통제력을 주는 대신, 진정한 자기 이해와 자율성을 제한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 집단적 불안입니다. ‘표준화된 인간’이 되기 위한 경쟁은 현대 사회에서 매우 강한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학교에서는 학습 진도와 등급, 기업에서는 KPI와 성과지표가 인간을 수치로 변환시킵니다. 이처럼 선형 구조가 인간을 측정 가능한 존재로 바꾸어놓았을 때,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바로 ‘존재의 감각’입니다. 존재는 평가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비효율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느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문명은 이러한 여유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존재보다 성과가 우선되는 세계에서는 결국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감이 끊임없이 증식합니다.
이러한 구조적 불안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는 현대인의 수면 장애, 우울증, 공황장애 등의 정신 질환입니다. ‘자아와 방어기제’에서 ‘안나 프로이트’는 인간의 방어기제가 외부의 압력에서 자아를 보호하는 장치로 작동하지만, 과도한 억압은 결국 병리적인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안나 프로이트, ‘자아와 방어기제’, 동서문화사, 2011). 사회 구조 자체가 지나치게 선형적이고 경쟁 중심적이라면, 인간은 끊임없이 방어기제를 동원하게 되고, 그 끝에는 결국 심리적 붕괴가 따라오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장자"의 비선형 철학을 다시 불러올 필요가 있습니다. 장자는 삶을 흐름으로 보며, 경계를 해체하고 고정된 자아를 해방시키려 했습니다. “참된 인간은 일정한 자아가 없다. 그는 변화에 따라 응하고, 고정된 자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강남, ‘장자, 도를 묻다’, 현암사, 2020 ) 장자의 이 말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불안이 고정된 시간, 고정된 역할, 고정된 정체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비선형적 사고야말로 새로운 질서를 설계할 수 있는 감각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구조입니다. 기술이나 경제, 정책은 표면일 뿐이며, 진짜 문제는 사고의 틀, 그 틀이 만들어낸 사회적 설계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오랫동안 ‘기찻길’ 위를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기찻길이 만든 문명은 이제 우리를 데려갈 새로운 목적지를 잃었습니다. 이제는 방향이 아닌, 감각의 시대입니다. 그 감각은 거미처럼 연결을 만들고, 흔들림을 감지하며, 의미를 직조하는 존재에서 시작됩니다.
용어 해설
• 선형 문명(linear civilization) - 시간, 질서, 인과, 위계에 기반한 문명 구조. 농업, 산업, 교육, 법률 시스템의 기본 구조임.
• 무의식(Unconscious) - 인간의 의식 밖에 있지만 감정과 행동을 결정짓는 심리적 구조.
• 페르소나(Persona) - 사회적 역할 수행을 위한 자아의 ‘가면’으로, 융의 이론에서 자아의 한 구성 요소.
• 자아방어기제(defense mechanisms) - 인간이 외부의 위협에 심리적으로 반응하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의식적 전략.
• 고맥락/저맥락 문화(high/low context culture) - 에드워드 홀의 개념. 고맥락 문화는 비언어적 신호와 관계 중심이고, 저맥락 문화는 명시적 언어를 중심으로 함.
참고문헌
• 지그문트 프로이트 / 문명 속의 불만 / 열린책들, 2013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정신분석 강의 / 현대지성, 2021
• 칼 융 / 분석심리학 강의 / 동서문화사, 2007
• 안나 프로이트 / 자아와 방어기제 / 동서문화사, 2011
• 오강남 / 장자, 도를 묻다 / 현암사, 2020
• 김경일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심리학 / arte, 2022
• 조너선 하이트 / 불안세대 / 어크로스 / 2021
• 서은국 / 행복의 기원 / 21세기북스 / 2014
• 로버트 치알디니 / 설득의 심리학 / 21세기북스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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