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나는 나를 너무 밀어붙인다
[ 말이멈춘자리 ] - 감성과 이성이 교차하는 사유의 기록 / 유미와 비안의 문장
자아실현의 역설: 성장이라는 강박에 관하여
유미
“나를 나답게 만들기 위한 일들이 자꾸만 나를 덜 나답게 만든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를 자주 밀어붙였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하고,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조금 더 빠르게 살아야만 한다고 믿었다.
하루는 자기계발서에 나온
‘아침 5시 기상법’을 실천했고,
다른 하루는
‘시간관리형 인간’으로 나를 정리했다.
좋아 보이는 목표를 향해
나를 쥐어짜며 달렸고,
그럴수록
‘진짜 나’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증명되기 위해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아실현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문득
나는 멈추어 보기로 했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대로의 나를
그저 알아보기 위해서.
비안
“성장은 자기실현의 또 다른 이름일까, 혹은 통제된 자기 포획일까.”
1. 왜 우리는 자아실현을 해야만 하는 일로 여기는가?
자아실현’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욕구라고 여겨진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더 나은 방향으로 확장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자아실현’이라는 단어는
삶의 동기라기보다, 성과 중심 자기계발 담론의 핵심 도구로 사용된다.
성장은 이제 자발적 희망이 아니라
비교에 의한 위기감,
정체에 대한 공포,
속도에 대한 강박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를 실현하라”는 말은,
어느새 “스스로를 넘어서지 않으면 무너질 것”이라는
압박의 언어로 변질되었다.
2. 자기실현이라는 강박, 그 이면의 불안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을
인간 내면의 본질적인 성장 욕구로 보았다.
그러나 로저스조차 이 욕구가
환경적 위협, 타인의 시선, 사회적 기대에 의해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Rogers, 1951)
정신분석가 에리히 프롬 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에서
“현대인은 자유롭게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대신,
끊임없는 불안에 노출되어
스스로를 ‘시장에 팔릴 만한 상품’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썼다.
이러한 시선은 곧,
성장이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소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즉,
자아실현은 ‘진짜 나’에 대한 충실이 아니라,
‘팔릴 수 있는 나’에 대한 스펙터클한 연출이 되는 것이다.
3. 성장 담론의 경제적 의도와 신념 편향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결정을 할 때 ‘합리적 동기’보다
사회적 신념과 기대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성장해야 한다’는 전제가 고정되면,
우리는 이를 검증하기보다는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수집하게 된다.
이를‘신념편향(confirmation bias)’라 한다.
(Nickerson, 1998)
더욱이
철학자 질 들뢰즈는
자본주의 사회가
‘욕망마저도 시스템에 흡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Deleuze & Guattari, 1980)
자아실현이 자유의 증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원하는 인간형으로 ‘셀프 브랜딩’하는 메커니즘일 수 있다.
4. 현실 적용: 자기실현이라는 이상이, 오히려 인간을 고립시키고 있다
현실 | 대안 |
자기계발 과잉 → 자기비교 중독 | 비계획적 무목적 시간 허용 |
성장 지상주의 → 정체 불안 | ‘존재 기반의 자아 회복’ 훈련 |
브랜드화된 자기실현 → 인간관계의 도구화 | 실패를 허용하는 관계성 회복 구조 |
예시:
30대 중반의 ‘E’는
IT 회사에서 인정받는 디자이너였다.
그는 매년 새로운 자격증을 땄고,
스스로를 ‘브랜딩’하는 데 누구보다 익숙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자신이 “한 번도 스스로를 좋아한 적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가 좋아할 것 같은 나를 매일 만들고 있었어요.”
이 고백은
현대 자아실현 담론이 품고 있는 내면의 공허를 말해준다.
참고문헌
[1] Rogers, C. (1951). Client-Centered Therapy. [인간중심 상담]-(원제: On Becoming a Person)
[2] Fromm, E. (1941). Escape from Freedom. [자유로부터의 도피]
[3] Nickerson, R. S. (1998). Confirmation Bias: A Ubiquitous Phenomenon. [확증 편향']
[4] Deleuze, G. & Guattari, F. (1980). A Thousand Plateaus.[ 천 개의 고원]
외 ...
유미
나는 오늘도 나를 실현하려 애쓰지만,
어쩌면 진짜 필요한 건
실현이 아니라 회복일지도 모른다.
더 나아지기보다,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될 수 있는 나’보다
‘이미 있는 나’를 받아들이는 일.
그게 나를
덜 아프게 하는 방법일지도...
오늘의 질문
당신은 지금,
진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나요?
아니면
누군가의 기대 속에
나를 포장하고 있지는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