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월터 J. 옹 - 문자가 우리의 뇌를 어떻게 재배선했는가?
월터 J. 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통해 말에서 글로, 다시 디지털로 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인간의 사고방식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이해와 통찰. (인류 문명의 근원적 변화)
우리는 정보를 얻기 위해 스마트폰을 켜고,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복잡한 지식도 검색창에 몇 글자만 입력하면 순식간에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문자' 덕분이고, 나아가 '디지털 문자' 덕분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혹시, 우리가 '문자'를 사용하고 '글'을 읽고 쓰는 방식이 우리 뇌의 구조와 사고방식,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리고 지금, 디지털 기술이 다시금 우리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구술성'의 시대로 이끌고 있다면 어떨까요?
언어와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대가, 월터 J. 옹(Walter J. Ong)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기술화된 언어의 심성 변화』(임명진 옮김, 문예출판사, 2018)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심오하고도 흥미로운 답변을 제시합니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말'에서 '글'로, 그리고 다시 '디지털'로 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우리의 '심성(psyche)'과 '사고'를 어떻게 혁명적으로 바꾸어왔는지를 추적하며,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지식의 보고입니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 요약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인류의 지성과 문명이 '구술성(Orality)'에서 '문자성(Literacy)'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인간의 사고방식과 사회 구조에 얼마나 혁명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하는 책입니다. 월터 J. 옹은 단순히 언어의 형태가 바뀌었다는 것을 넘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변화가 우리의 '심성(psyche)', 즉 의식과 사고 과정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했다고 주장합니다.
1. 일차적 구술문화(Primary Orality): 문자를 전혀 모르는 순수한 구술문화 시대의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사고했습니다.
● 부가적, 집합적 사고: 문자는 문장을 분리하고 분석하게 하지만, 구술은 말을 이어서 연결하고 축적하는 '그리고… 그리고…' 식의 부가적 사고를 합니다. (예: "옛날 옛날에 그리고 또 옛날에…")
● 잉여적, 반복적 사고: 구술은 망각을 막기 위해 중요한 내용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잉여적인 표현을 사용합니다.
● 공감적, 참여적 사고: 구술 상황은 화자와 청자 사이의 즉각적인 상호작용과 공감을 요구하며, 개인은 공동체에 강하게 몰입합니다.
● 상황 의존적, 구체적 사고: 추상적이고 분석적인 개념보다는 실제 경험과 상황에 밀접하게 연결된 구체적인 사고를 합니다.
● 호흡과 리듬: 말은 호흡과 리듬에 의해 조직되며, 기억을 돕기 위해 운율과 정형화된 표현(formulaic expression)을 많이 사용합니다.
2. 문자문화(Literacy): 문자의 도입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 분석적, 추상적 사고: 문자는 언어를 공간에 고정시켜 분석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형성하며, 논리적이고 선형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합니다.
● 객관적 거리: 글은 화자와 청자를 분리하고, 텍스트 자체가 독립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합니다.
● 내면화된 언어: 글쓰기는 언어를 외부에 고정시키면서도, 동시에 사고 과정을 내면화시키고 '의식의 흐름'을 조직합니다. '사유하는 자아'의 개념이 발달합니다.
● 사전, 지도, 목록 등 '지식의 축적' 방식 변화: 문자는 지식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축적하며, 이는 과학적 탐구와 학문 발전의 기반이 됩니다.
3. 이차적 구술문화(Secondary Orality): 전자 미디어(라디오, 텔레비전, 전화 등)의 등장은 다시금 '구술적' 특성을 지닌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켰지만, 이는 문자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구술성'입니다. 즉, 연설문은 글로 쓰여지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스크립트에 의해 통제되는 등, 구술적 표현 이면에 문자적 사고가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옹'은 이 책을 통해 각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인간의 '지각', '기억', '사고', '표현', '사회 조직'에 미치는 심오한 영향을 분석하며, 문자가 인류 문명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 기술을 통해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 구조적 해석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언어학, 커뮤니케이션학, 심리학, 철학, 인류학, 교육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걸쳐 인류 문명의 근본적인 변화를 분석하고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커뮤니케이션학/미디어 이론적 관점: '매체'가 '메시지'이자 '사고'를 바꾼다
이 책은 마샬 맥루한의 "매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명제를 더욱 심층적으로 확장합니다. '옹'은 단순히 미디어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미디어 자체의 특성(말, 글)이 인간의 사고 구조와 인식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고 주장합니다. 구술 매체는 즉각적이고 참여적인 사고를, 문자 매체는 추상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문자는 언어를 시각적으로 고정시킴으로써, 인간이 언어를 마치 사물처럼 '분석'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는 구술문화에서는 불가능했던 사고 방식이다." -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인간의 의식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미디어 생태학(Media Ecology)의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인지 심리학/뇌과학적 관점: 뇌의 가소성과 사고 과정의 재배선
'옹'은 문자의 도입이 인간의 뇌를 물리적으로 '재배선'시킨다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읽기와 쓰기라는 행위는 뇌의 특정 영역을 활성화하고 신경 회로를 새롭게 구축함으로써, 구술문화에서는 발달하기 어려웠던 선형적 논리, 추상적 개념화, 자기 성찰 등의 인지 능력을 발달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 뇌과학의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 개념과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글쓰기는 말을 눈에 보이게 만듦으로써, 우리의 사고를 외부에 투사하고 다시 내면화하는 복잡한 과정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인간의 의식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 언어와 인지, 뇌 구조의 상호작용에 대한 심리학적, 뇌과학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인류학/사회학적 관점: 지식 보존과 사회 조직의 변화
구술문화에서는 지식이 주로 기억과 구전, 정형화된 서사(신화, 서사시)를 통해 보존되고 전승되었습니다. 이는 지식의 양과 복잡성에 한계를 가졌으며, 공동체 구성원 간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사회 조직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자의 도입은 지식을 외부 공간에 영구적으로 보존하고 대량으로 복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여, 방대한 지식의 축적과 학문의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문자는 기억의 부담을 덜어주고, 지식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대규모의 복잡한 사회 조직과 행정 시스템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 이러한 변화는 사회 구조, 권력 관계, 교육 시스템, 법률 시스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음을 인류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철학적 관점: '자아'와 '객관성' 개념의 형성
'옹'은 문자가 '자아(self)' 개념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합니다. 구술문화에서는 개인이 공동체에 강하게 통합되어 '집단적 자아'의 성격이 강했다면, 문자는 언어를 내면화하고 사고를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자아'의 의식을 발달시켰다는 것입니다. 또한, 문자는 언어를 화자로부터 분리된 '객관적인 텍스트'로 만듦으로써,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과 논리적 비판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문자는 주관적인 경험과 객관적인 사실을 분리하고, 사물에 대한 중립적인 시각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철학적, 과학적 사고의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 인식론, 존재론, 윤리학 등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들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변화와 연결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거미인간(호모 넥서스)'의 적용 해석
월터 J. 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인류의 사고방식이 '구술성'의 '유기적인 그물'에서 '문자성'의 '선형적이고 분석적인 직선'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줍니다.
'거미인간(호모 넥서스)' 는 "직선의 끝에서 스스로의 실로 의미를 엮는 존재"라는 현대인의 모습은, 옹이 말하는 '이차적 구술문화'를 넘어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구술성'을 통해 다시금 '그물'처럼 사고하려는 경향과 깊이 연결됩니다.
'직선'의 문자 사고를 넘어 '그물'의 디지털 구술성으로
'옹'은 문자가 인간의 사고를 선형적, 분석적, 추상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거미인간' 이 말하는 "선형적 사고의 기찻길"을 깔았던 핵심 기술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 특히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다시금 '이차적 구술성'을 넘어선 '새로운 구술성'을 촉발합니다. 하이퍼링크, 멀티미디어, 실시간 소통은 정보를 파편적으로 제시하고, 즉각적인 반응과 상호작용을 요구하며, 구술문화의 '집합적이고 참여적인' 특성을 다시금 부각시킵니다. '거미인간'은 이러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 파편화된 '실'들을 빠르게 연결하고, '직선'적인 논리보다는 '감각'과 '흐름'을 통해 '의미의 그물'을 엮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이는 문자에 의해 단련된 분석적 사고력 위에, 새로운 디지털 구술성으로 다시 강화된 '연결의 능력'이 더해지는 복합적인 양상입니다.
'감각의 흔들림'과 디지털 시대의 과부하
'옹'의 구술문화론은 이러한 '감각적'이고 '참여적' 사고가 인류에게 본원적으로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문자가 이 '감각'을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이성'으로 전환시켰다면, 디지털 시대는 다시금 '감각'을 자극하고 '느낌'을 중시하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에서 경고하듯이, 이러한 '감각의 흔들림'이 과도한 정보와 빠른 전환으로 인해 '정보 과부하'와 '집중력 저하'를 야기할 위험성도 내포합니다. '거미인간'은 이러한 양면성을 인지하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구술성 속에서 어떻게 의미 있는 '감각'을 유지하고 '깊은 사고'를 병행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미래를 '직조'하는 '거미인간'과 지식의 새로운 공동 생산
옹은 문자가 지식의 개인화와 '독립된 자아'의 발달에 기여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거미인간'은 웹 2.0 시대의 집단 지성, 오픈소스,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 등을 통해 다시금 지식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유'하는 '참여적' 구술성의 특성을 보입니다. "미래는 정답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결’"이라는 '거미인간'의 정의는, 지식을 고정된 텍스트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의미의 그물'을 '함께 직조'해나가는 과정으로 지식을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옹이 제시한 구술문화의 집합적 지식 생산 방식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고 있음을 시사하며, '거미인간'은 이러한 지식 생산의 새로운 흐름 속에서 어떤 '실'을 짜고 어떤 '결'을 만들어갈지에 대한 책임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함께 읽어야 할 책
• 『미디어의 이해』 (마샬 맥루한 저, 김성기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매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로 유명한 미디어 이론의 고전입니다. 월터 J. 옹의 주장을 맥루한의 미디어론과 비교하며 읽으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영향력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습니다.
•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저, 최지향 옮김, 청림출판): 인터넷 사용이 우리의 뇌 구조와 인지 방식, 특히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경고합니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과거의 변화를 다룬다면, 이 책은 현재 디지털 시대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 『프루스트와 오징어』 (메리앤 울프 저, 이희수 옮김, 어크로스): 읽고 쓰는 행위가 인간의 뇌 구조와 사고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신경과학적으로 탐구합니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주장을 뇌과학적 관점에서 심화할 수 있습니다.
•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저, 조현욱 옮김, 김영사):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조망하며, 언어와 상상력이 어떻게 인간 문명을 형성했는지 설명합니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다룬 언어 기술의 변화가 인류 역사에 미친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저, 조현욱 옮김, 김영사):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며, 과학 기술 발전이 인간의 인지 능력과 존재 자체에 미칠 영향을 탐구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인간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확장합니다.
• 『초연결 사회: 새로운 문명의 설계』 (최재붕 저, 다산북스): 스마트폰으로 인한 '초연결' 시대가 새로운 인류(포노 사피엔스)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하며, '관계'와 '소통'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구술성'과 연결되는 맥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지혜의 심리학』 (김경일 저, 진성북스):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다루며, 복잡한 세상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구술문화'에서 발달했던 직관적 감각과 '문자문화'에서 발달한 분석적 지식을 통합하는 '지혜'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