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인간(호모 넥서스Homo Nexus) Part 3-2, 동시성, 유동성
감정은 더 이상 단선적이지 않고, 하나의 이름으로 정의되지 않으며, 복합적이고 겹겹이 교차되는 다중성의 형태로 드러난다. 정체성 역시 고정된 역할이나 직업으로 설명되지 않고, 관계와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유동적 자아로 변화하고 있다. 리더십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던 명령 체계가 아니라, 연결과 공감의 기반 위에 형성되는 네트워크형 리더십으로 진화하며, 조직 역시 수직적 구조에서 벗어나 ‘애자일(Agile)’한 흐름과 자율성의 단위로 작동하고 있다.
거미인간(호모 넥서스Homo Nexus)
비선형구조의 사고, 관계와 연결로 사고 하는 인간
인류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 '호모 넥서스'
Part 3. 균열 – 비선형성이 솟아오르는 시대
3.2 감정, 정체성, 리더십, 조직, 교육의 구조가 무너지는 방식
우리는 지금 거대한 해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명확하고 분명했던 것들 감정, 정체성, 조직, 리더십, 교육이 더 이상 그 이전의 모습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 구조들이 붕괴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그것들이 설계된 ‘선형적 틀’이 더 이상 지금의 현실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장에서는 선형적 구조 위에 세워졌던 인간 내면의 감정 시스템부터 사회 시스템의 근간인 교육과 조직 구조까지, 그 붕괴의 방식과 원인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균열이 비선형성의 부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냅니다.
감정은 더 이상 단선적이지 않다
감정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슬픔 속에 기쁨이 있고, 분노 속에 사랑이 있으며, 공감과 피로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우리는 감정을 ‘선형적 단계’로 이해하려 했습니다.
심리학의 초기 이론들 특히 행동주의나 합리주의 심리학은 감정을 자극과 반응의 연쇄로 다뤘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감정이 순차적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한 화면에서 분노, 유머, 슬픔, 경악이 섞인 콘텐츠가 동시에 노출되고, 우리는 단 몇 초 안에 수많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오가게 됩니다. 이것은 감정의 ‘비선형화’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감정을 분절하거나 단일하게 경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복합적으로, 병렬적으로, 때로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경험합니다. 이는 기존의 정서 이론, 인간 이해, 심리 상담 체계 전반을 다시 설계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정체성은 고정되지 않는다
20세기 초, 정체성은 ‘하나의 자아’를 전제로 이해되었습니다. 성별, 직업, 나이, 국적 등이 ‘정체성의 항목’이었고, 그 틀에서 개인은 자신의 위치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SNS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여러 개의 자아를 동시에 갖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에서는 조용한 관리자, 온라인에서는 유쾌한 밈 크리에이터, 인스타그램에서는 감각적인 여행자, 트위터에서는 냉소적 관찰자. 정체성은 이제 고정된 프로필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스스로 설계하는 연결의 모듈’이 되었습니다. 이는 선형적 정체성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사고를 해체하고, 비선형적 정체성 “나는 이런 사람도 될 수 있다”는 유동적 자기설계로 전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현대의 정체성’ (지그문트 바우만 / 새물결 / 2006)은 이러한 유동성의 사회를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라 표현하며, 고정된 자아의 붕괴와 함께 오는 불안과 자유의 공존을 지적했습니다.
리더십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
선형 질서에서 리더십은 명확했습니다. ‘위’에 있는 자가 ‘아래’에 지시하고,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구조였습니다. 군대, 기업, 정당, 국가가 모두 이런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평적 네트워크가 일상화된 지금, 리더는 더 이상 명령자가 아니라 ‘조율자’, ‘촉진자’, ‘감정의 통역자’가 되었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혹은 BTS를 이끄는 방시혁의 리더십은 모두 ‘비선형적 연결’을 조직하는 방식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이제 리더십은 ‘하향식 순서’가 아니라, ‘다중 피드백 기반의 감응’에서 발휘됩니다. 이는 기존의 승진제도, 직급, 조직 구조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조직은 선형에서 네트워크로
20세기 기업 조직은 기획→실행→평가→보상이라는 단계적 구조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애자일(Agile), 린(Lean), 셀(Teal)과 같은 새로운 조직 운영 방식은 순차적 구조를 해체하고, 빠른 반응과 유연한 조정, 자율적 실험을 전제로 작동합니다. 일의 구조 자체가 이제는 ‘흐름(flow)’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문제 해결은 프로젝트 단위의 임시 네트워크로 이뤄지고, 의사결정은 직급이 아닌 데이터 흐름과 관계 기반 신뢰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는 선형 조직이 갖는 가장 큰 한계 예측과 계획 중심의 구조를 디지털 사회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교육은 더 이상 ‘진도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교육은 오랫동안 ‘A부터 Z까지’를 학습하는 체계였습니다. 교과 과정, 시간표, 커리큘럼, 진도표. 이 모든 것은 학생을 ‘선형적 지식 습득자’로 규정하고, 지식을 입력하고 출력하는 시스템으로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유튜브와 틱톡, 위키백과, AI 챗봇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점프’하며 획득하고, 다양한 경로로 창작하고, 관심 기반으로 연결합니다. 이는 단순한 ‘미디어의 변화’가 아닙니다. 사고의 방식, 학습의 구조, 인지의 경로가 완전히 재편되고 있는 것입니다.
용어 주석
유동 정체성(fluid identity) - 정체성을 고정된 속성으로 보지 않고, 관계와 맥락에 따라 변하는 가변적 특성으로 이해하는 개념.
애자일 조직(Agile Organization) - 빠른 실행과 피드백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변화에 대응하는 조직 운영 방식.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 지그문트 바우만이 제시한 개념으로, 고정되고 안정된 구조가 사라진 현대사회의 특성을 설명함.
네트워크 기반 리더십 - 위계적 지시보다 연결과 감응, 관계 중심의 조율이 중심이 되는 리더십 유형.
다중 감정 혼합(mixed emotions) - 여러 감정을 동시에 병렬적으로 경험하는 감성 구조. 디지털 환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성.
참고문헌
지그문트 바우만 / 현대의 정체성 / 새물결 / 2006
사이먼 사이넥 / Start With Why / 한국경제신문 / 2012
프레드릭 라루 / 리인벤팅 오거나이제이션 / 생각의나무 / 2015
존 시리얼 / 감정의 논리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
정지훈 /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 메디치미디어 / 2020